22.11.19(토)
시윤이와 데이트를 했다. 지난 수요일과 목요일에 크게 상심했던 시윤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데이트를 약속했다.
“시윤아 아빠랑 데이트 하자. 꼭 하자”
라는 나의 말에 시윤이는 더 구체적인 약속을 하자고 했다.
“아빠. 그럼 지금 딱 정하자여”
이번 주말로 못을 박았다. 평소에 시윤이가 하고 싶었던 걸 하기로 했다. 우선 시내에 나가서 관람차를 타기로 했다. 굉장히 이색적으로 시내 한복판, 백화점 옥상에 관람차가 있다. 시윤이는 그게 꼭 타고 싶다고 했다. 농구장도 가기로 했다. 원래 축구장에 가기로 했었는데 약속을 못 지킨 채로 이번 시즌이 끝났다. 축구장 대신 농구장에 가기로 했다. 시윤이에게 이런 계획을 미리 알렸고, 시윤이는 어제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내일이 너무 기대가 돼여”
먹고 싶은 것도 시윤이에게 정하라고 했다. 당연히 탕수육을 고를 줄 알았는데 피자를 얘기했다.
시윤이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언제 나갈 건지 물어봤다. 아침에 꽤 늦게 일어난 덕분에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 나왔다. 시윤이와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가게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시윤이가 원하는 피자 가게 중에 문을 연 곳이 있기는 했다. 맛도 괜찮아 보였다. 시윤이는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면서 피자를 맛있게 입에 넣었다. 시윤이는 두 조각을 먹더니 더는 못 먹겠다고 했다.
“너무 배불러?”
“아, 배가 부른 건 아닌데 이제 안 먹을래여”
약간 질린 듯했다. 두 조각이어도 꽤 두툼했으니 실제로 배가 차기도 했을 거다.
바로 관람차를 타러 갔다. 지난 번에 서울에 갔을 때도 시윤이와 데이트를 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결혼식에 간 김에 데이트를 한 거였고, 데이트를 위해서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시윤이가 여섯 살이니까 숱하게 미뤄지고 밀린 셈이다. 손을 잡고 다녔는데 시윤이도 손이 따뜻하고 나도 손이 따뜻하니 금세 땀이 찼다.
시윤이는 아직 꼬맹이였다. 관람차 요금을 받지 않는 ‘미취학아동’이었다. 시윤이가 그렇기 고대하던 관람차를 드디어 탔다. 난 신혼시절에 아내와 탔던 적이 있다. 여러 번 탈 만한 건 아니어도 한 번쯤은 타 볼 만하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던 시윤이는 관람차가 꼭대기에 올라가자 조금 긴장했다. 바람에 흔들리고 삐그덕 소리가 날 때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시윤아. 조금 무서워?”
“조금 무서워여. 흔들리니까”
엄청 즐거워했다.
“시윤아. 별 거 없지 않아?”
“아니여. 별 거 있는데여. 안 타 봤으면 계속 궁금할 거 아니예여”
시윤이에게 ‘데이트가 즐거운지’ 수시로 물어봤다. 그때마다 시윤이는 좋다고 했다. 지난 문래동 데이트 얘기를 할 때는, 산책했던 게 가장 좋았다고 했다. 사실 산책 말고는 딱히 한 게 없기도 했지만, 그걸 좋았다고 기억하는 게 신기했다.
관람차를 타고 나서는 농구장으로 갔다. 농구장에서도 시윤이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덕분에 데이트 비용을 많이 절감했다. 농구장은 나도 엄청 오랜만이었다. 학창 시절에 한 번 가 보고, 소윤이가 엄청 어릴 때 갔다가 1분 만에 퇴장한 후로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엄청 재밌었다. 시윤이의 재미를 따지기 전에 일단 내가 너무 즐거웠다. 아직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시윤이에게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시윤이는
“아빠. 농구 재밌어여”
라고 얘기했다. 규칙을 모르는데도 재밌냐고 물어봤더니
“그래도 조금 알 거 같아여”
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시윤이는 중간 중간 질문을 많이 던졌다. 다행히 날 닮아서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야구장에 가서도 지루해 하지 않았고 농구장도 진짜 재밌어 하는 걸 보면. 한 시간 조금 넘게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시윤이는 한 번도 자리를 뜨거나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뿌듯했다.
계획한 데이트 코스는 여기가 끝이었다.
“시윤아. 이제 집에 갈까?”
물론 장난이었다.
“아니여. 집에 가는 건 싫어여”
시윤이는 집에 가지 말자고 했다. 이런 얘기도 했다.
“아빠. 지금 몇 시예여?”
“지금? 한 네시?”
“아빠. 오늘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져?”
엄청 아쉬워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는 걸.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강변으로 산책을 하러 가기로 했다. 시윤이가 걷는 것도 좋다고 했다. 여건이 맞으면 자전거를 빌려서 탈 생각도 있었다. 강변까지는 차로 한 20분 정도 거리였는데 그 사이에 시윤이가 잠들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길래 그냥 조금 자라고 했다. 차를 주차하고 시윤이가 깨는 걸 기다리면서 나도 좀 졸았다.
시윤이가 깼을 때는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해가 질 무렵이었다. 조금 걷다 보니 까마귀 떼가 대나무 숲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원래 까마귀 떼가 몰려드는 곳이었고, 그게 장관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시윤이와 함께 한참 동안 까마귀가 몰려드는 풍경을 봤다. 시윤이도 나처럼 신기해 하며 봤다. 뭔가 기분이 좋았다. 시윤이의 데이트 결이 나와 비슷해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시윤이도 좋아하는 게 아주 기분이 좋았다.
저녁은 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내는 소윤이, 서윤이와 함께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힘든 시간은 전혀 없었다고 했는데 얼굴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마치 평소에 시윤이와 힘든 시간을 보낸 날 같은 모습이었다. 전혀 그런 건 아니었는데 엄청 졸리다고 했다.
아내는 시윤이도 시윤이지만 나도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나도 좋았다. 이렇게 좋은데 그 시간 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각 잡고 하는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종종 시윤이와 농구도 보러 가고 산책도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점점 소윤이는 아내와, 나는 시윤이와 데이트 하는 게 서로의 취향에도 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