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1(월)
아내가 아침에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정말 주님은 시윤이 통해서 인내심을 훈련시키시나 봐요. 하나 하나 말 할 순 없지만. 계속 마음 잘 지키도록 기도해줘요”
실제로 아내가 시윤이의 이야기를 소상하게 하는 날은 드물다. 대략 ‘힘들었구나’, ‘오늘은 좀 많이 힘들었구나’ 정도의 느낌만 가질 뿐이다. 나에게 전달되는 온도는 달라졌어도 아내의 일상에는 여전히 높은 파도가 칠 때가 많은가 보다. 아내와 아침 큐티를 하면 아내의 기도 제목 혹은 오늘의 결단에 꼭 포함되는 내용이다.
‘자녀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지낼 수 있도록’
좋다는 건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항상 쉬운 결단은 아니니까.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 대체로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스치듯 짧게, 마음속으로만 기도를 한다.
‘하나님. 가영이가 많이 슬퍼하지 않고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해 주세요. 시윤이도 도와주시고 은혜를 부어 주세요’
은혜라는 개념 또한 매우 관념적일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은혜 아니면’ 달리 방도를 찾기 어렵기도 하다.
내 앞에서는 천사가 따로 없는 아들인데, 엄마 앞에서는 왜 그렇게 다른 얼굴이 되는지. 오늘도 아내는 시윤이의 이중인격을 고발하는 영상을 찍어서 보냈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깨끗하게 싹싹’ 긁어 먹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엄청 짜증을 냈다고 했다. 그러다 그 모습을 아빠에게 찍어서 보낸다고 했더니 갑자기 돌변한 거다. 돌변한 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의 아내도 시윤이도 웃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아내가 영상을 찍었다는 건, 사실 이미 별로 마음이 어렵지 않았다는 얘기다. 시윤이도 스스로 민망했는지 막 웃었다. 고발 영상이 아니라 화목한 어느 가정의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억울할 만하다. 그래도 난 시윤이가 발전한 점을 찾았다. 예전에 비하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조금 더 민망해 하고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인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는 애써 콧방귀를 참으며 ‘그래?’라고 대답했다.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다는 듯.
저녁에는 K의 식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찜닭을 해서 주고 어른들은 K의 장모님이 싸 주신 김밥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이들을 먼저 먹였는데 그 ‘아이들’에 K의 막내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 자가 식사 능력이 부족하다. 기분도 별로 안 좋았다. 시간이 생명인 라면을 앞에 두고 K의 아내는 막내를 챙기느라 바빴다. 서윤이도 별로 식사 태도가 좋지 않았지만 이제 말이 통하고 어느 정도 수행 능력도 되기 때문에, 나의 식사를 포기할 만큼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월남쌈을 진짜 월남전쟁을 하는 중에 먹는 것처럼, 서윤이를 안고 정신없이 먹었던 시절이 머리에 스쳤다. 그래도 그때가 그립다. 벌써.
기도회 마지막 날이라 다 함께 교회에 갔다. 이미 피곤했다. 모두. 아내도 나도, 아이들도.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만큼 의지를 내어서 갔다. 밤에 약한 아내가 가장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중간에 위기를 맞았다. 난 아예 나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서서 설교를 들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도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모두 곯아떨어졌다. 챙겨야 할 사람이 세 명이었다. 서윤이와 시윤이, 그리고 아내.
“여보. 여보도 내가 업어야 할 거 같은데?”
집에 돌아온 아내는 너무 졸려서 일찍 자야겠다면서 잘 준비를 했다. 침대 위에 급히 널브러뜨린 마른 빨래가 아내를 붙잡았다. 치우고 잘 줄 알았는데 아내는 그걸 갰다.
“개다 보니 잠이 깼네?”
집안일로 각성을 하다니. 역시 프로 주부인가. 아내는 결국 나와 함께 자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