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반가웠던 자유부인

22.11.22(화)

by 어깨아빠

“힘드네요”


목소리는 밝고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 있었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힘들 때 웃는 일류가 되기 위해서 아내는 부단히 노력한다. 매일. 아내와 통화를 마치고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오늘 자유부인?”

“맙소사. 좋네 정말”

“바로 바통 터치 해”


아내도 지난 주에 고생을 많이 했다. 바쁜 데다가 다소 예민하고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 남편을 보필(?)하느라, 아직 누나의 급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과 좌절을 하고 속상함을 엄마에게 푸는 아들을 상대하느라 아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상 아닌 보상 차원의 자유부인 제안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아니라면 자기가 먼저 ‘나 오늘 그냥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지는 않으니까.


그 뒤로는 아내의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저녁 준비도 안 해도 되냐는 질문도 있었다. 물론이었다. 아내에게 답장을 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아내도 따로 저녁을 차리지는 않았다. 평소에 비하면 조금 일찍 퇴근을 했다. 아내는 벌써 아이들을 씻기고 있었다. 안 그래도 되지만, 막상 눈앞에 벌어지니 너무 감사한 풍경이었다.


소윤이에게 점심은 뭘 먹었냐고 했더니 조금 전에 먹었다고 했다. 빵과 과일을 먹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엄마와 시윤이가 시간을 많이 보내서 그렇다고 했다. 자세한 상황은 듣지 못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진한 시간이 있었다는 걸 짐작했다. 아내에게 들어 보니, 방금 전에 먹은 건 아니었고 두 시간 전 쯤 먹은 거라고 했다.


아내가 막 나가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졌다. 비만 아니었으면 조금 멀리 가도 괜찮았을 텐데, 비 덕분에 그냥 동네에 머물게 됐다. 아이들 저녁은 냉동실에 있는 김밥이었다. 계란을 입혀서 부쳐줬다. 저녁은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치고는 굉장히 부실한 저녁이긴 했다. 설거지 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고서는 다음날 저녁에도 그대로 있게 만드는 상황과 비슷한 건가. 괜찮다. 아내에게도 누누이 말하지만, 넘칠 정도로 잘 먹고 자라고 있다. 가끔 이런 부실한 밥상을 제공한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아이들이 억지로 먹는 것도 아니었다. 배가 별로 고프지도 않았는데 부쳐 준 김밥을 거의 다 먹었다.


난 아이들 김밥을 부치다가 해동이 덜 돼서 으스러지고 터진 김밥을 모아서 프라이팬에 데웠다. 딱 한 공기 정도가 나오기는 했는데 얼핏 보면 사람이 먹는 밥이 맞나 싶은 모양새였다. 어제와 오늘 아이들이 먹고 남긴 찜닭도 먹었다. 사진을 찍어서 아내에게 보냈다. 시골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먹을 만한 밥 같기도 했고. 자취에 찌든 홀아비가 먹는 밥 같기도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우노를 하자고 했다. 저녁을 일찍 먹었고, 아내가 아이들도 씻겨 놓은 덕분에 시간은 충분했다. 서윤이도 하고 싶다고 해서 내 무릎에 앉혔다. 규칙을 모르니 혼자서는 못해도 나의 대리자 역할은 제법 수행한다. 두 판을 했는데 두 판째 할 때는 꾸벅꾸벅 졸았다. 소윤이와 시윤이 둘이서 세 번째 판을 했는데 그때는 아예 바닥에 쓰러져서 졸았다.


서윤이는 오늘도 자러 들어갔다가 똥을 쌌다면서 나왔다. 그 전에 두 번 정도 똥이 마렵다고 해서 변기에 앉혔는데 안 나온다고 했다. 덕분에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다.


‘오늘도 똥팬티를 만나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그나마 깔끔하게(?) 싼 편이었다. 자면서 퍼지르는 것보다도 낫고. 서윤이의 지나가는 모든 세월과 행동이 아쉽지만, 이것만은 전혀 아쉽거나 그립지 않다. 당장 내일이라도 급변하여 혁명적으로 지나쳤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아내는 브런치를 먹고 싶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서 돈까스를 먹으러 갔다고 했다. 브런치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브렉퍼스트와 런치의 합성어였을 텐데 저녁 일곱 시 먹는 것도 브런치라고 한다면, 구성상의 분류에 따라 명명하는 건가. 에그스크램블, 야채, 빵 따위를 먹는 게 브런치인가. 아무튼 아내는 잘 먹고 카페에 갔다가 돌아왔다.


아내가 가장 활력이 넘치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갔다가 집에 돌아온 바로 그 때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