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하러 가서 똥을 만났을 때

22.11.25(금)

by 어깨아빠

퇴근을 좀 일찍 했다. 꽤 많이 이른 시간에. 당연히 아내와 아이들이 놀랐지만, 특히 아내가 더 놀랐다. 놀라움 뒤에는 필요에 의해 극대화 된 반가움이 있었다. 아내는 마치 방금 일어난 듯, 잠옷을 입고 있었다. 치열한 하루의 증거였다. 친구가 케이크와 커피를 보내 줘서 그걸 먹고 있었다고 했다. 위로의 선물이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래 보였다. 굳이 위로의 선물을 보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오늘도 아내에게 매우 힘겨운 시간이 있지 않았나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의 친구가 작은 위로와 격려의 선물로 케이크와 커피를 보냈을 테고. 물론 내가 돌아왔을 때는 그전까지의 시간을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그때는 다 좋아 보였다.


나가기로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을 나가려고 하다가 급격하게 목적지를 변경했다. 내 옷을 좀 사야 해서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는 백화점도 좋다면서 흔쾌히 동의했지만 시윤이는 백화점은 싫다고 했다. 시윤이에게 선택권을 주기 어려운, 시윤이가 좋든 싫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시윤이의 마음을 최대한 살피기 위해서 나름 민주적인 태도를 취했다. 목적지 변경은 불가능하니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 주기로 했다.


백화점에 가서 일단 밥부터 먹었다. 왠지 모르게 수월했다. 사실 이제 어디를 가도 비슷하긴 한데 오늘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처음에 한 번 덜어 주고 나면 다음부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음식이어서 그랬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서윤이도 알아서 척척 잘 먹었다. 아이스크림은 일을 다 보고 나중에 사 줄까 하다가, 혹시 시간에 쫓겨서 사 주지 못할까 봐 바로 사 줬다. 셋 모두 너무 맛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릇을 뚫을 기세로 바닥을 긁어댔다. 서윤이는 끊임없이 더 달라고 요구했다. 나에게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요즘은 괜히 튕기고 그럴 때가 많은데 아주 고분고분했다. 뽀뽀도 후했다.


약속했던 사항을 모두 이행한 뒤에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두어 곳의 매장을 가 보고 나서 어느 옷으로 정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을 때, 서윤이가 특급 비보를 전했다.


“엄마. 똥 따떠여여엉”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화장실로 갔다. 무려 20분이나 걸려서 뒤처리를 하고 나왔다. 아내는 그야말로 불태우고 나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무런 의지와 힘이 없어 보였다. 서둘러 옷을 결정했다. 아내에게 어떤 게 더 나은지 물어봤는데, 결정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아내는 모든 사고와 행동이 잠시 방전된 상태였다. 서윤이는 천진난만했다. 분명히 자기가 어떤 행동을 했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아는데도 당당하고 뻔뻔했다. 자기가 싼 똥이 묻은 팬티와 바지를 담아서 묶은 비닐봉지를 보고는


“엄마아. 이거 떡 같다여어. 떡”


이름이 비슷하긴 한데, 그건 아니야. 이름으로만 보면 훨씬 귀여운 느낌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잔혹하단다.


쇼핑을 마친 뒤에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예상대로 아내에게는 남은 체력이 없었다. 그녀의 체력은 똥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