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4(목)
예전에 형님(아내 오빠)네가 놀러 왔을 때 갔던 공원에 유모차를 두고 왔었다. 바로 알아차린 게 아니라 나중에 알게 돼서 즉시 찾으러 가지 못하고 미뤘다. 며칠 전에 전화로 11월 안에 찾아가지 않으면 폐기 처리를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얼른 찾아와야 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으러 갔다. 넓고 광활한 공터가 있는 곳이라 아이들의 ‘활동 욕구’가 폭발하는 곳이었다. 아내도 그저 유모차만 찾아 올 생각으로 가는 건 아니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오랜만에 여러 탈 것을 타며 놀았다. 소윤이는 인라인스케이트, 시윤이는 자전거, 서윤이는 킥보드. 시윤이는 누나의 도움을 받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 보려고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계속 제자리에 주저 앉거나 넘어졌다. 아이들도 아내도 즐거웠지만, 아내에게는 무척 강도가 높은 육체 노동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내는 무엇보다 차에서 짐을 내리고 싣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무슨 심정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이 힘든 걸 아내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아내는 남편 없이 활동하는 전 세계의 엄마 중에 기동력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대단하다. 둘이 함께여도 큰 숨 한 번 들이쉬며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많은데.
일을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아내와 아이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싸고 맛있는’것을 고민하다 분식집에 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먼저 주문을 했다. 분식집이라 아이들이 먹을 게 많지는 않았다.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으로 우동을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여기는 생각보다 매웠다. 소윤이만 조금씩 먹고 시윤이는 입에도 못 댔다. 아이들이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고 해서 약간 적게 시켰는데 생각보다는 잘 먹었다. 난 주로 순대만 공략했다.
“아빠 우리 밥 먹고 바로 집에 가여?”
“그럼? 집에 가지? 어딜 가?”
“산책이라도 하자여”
“산책? 어디를?”
“그냥 여기. 시내 산책”
그러기로 했다. 유흥가 지역이라 산책을 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걷기로 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문구점이 나왔는데 소윤이가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고 했다.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서윤이는 계속 유모차에 태워서 다니려고 했는데,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지하 1층에 있었는데 아내가 급히 1층으로 올라갔다. 건물에 화장실이 없어서 다른 건물까지 가야 하는 곳이었다. 사실 내가 데리고 가도 되는데 팔을 다쳤을 때 하도 아내가 데리고 다녀서 뭔가 습관화되었다.
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체력이 30%씩 소진되는 듯하다. 표정이 말해 준다. 문구점에서 나와서 백화점에 있는 잡화점으로 갔다. 아내가 살 게 있다고 했다. 산책은 아니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래도 좋아했다. 진짜 좋은 곳에서 제대로 된 산책을 하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어떻게든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작은 바람이다.
서윤이는 잡화점에서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화장실에 다녀온 지 10분도 안 됐을 때라 정황상 ‘착각’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일단 의사를 표현한 이상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럴 리 없다며 가지 않았다가 그대로 오줌을 싸면 훨씬 번거로워지니까. 한 번도 두어 번을 다녀왔다. 물론 그때마다 거짓 아니 거짓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헛방이었다.
서윤이의 ‘배뇨 의사 표시’ 덕분에 급속도로 체력이 저하됐다. 산책 아닌 산책도 거기서 종료였다.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다. 아이들에게 나눠 줄 쿠키와 아내에게 줄 휘낭시에도 샀다. 쿠키는 집에 가는 길에 차에서 먹으라고 했다.
시간을 꽤 오랫동안 쓰고 온 덕분에 집에 오니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부지런히 씻겨서 눕히고 노트북을 켰다. 우리나라의 월드컵 첫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만 아니었으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같이 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는 처음에는 파닉스 강의를 듣는다고 같이 보지 않다가 후반전 쯤부터 함께 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여보. 이거 지금 몇 강이야? 16강?”
“아, 각 8개조에 4팀이 있는데…”
“와, 저 사람은 진짜 우루과이 사람처럼 생겼네?”
“아, 저 사람 우리나라 감독이야”
아내의 질문이 참신했다. 마치 시윤이와 축구를 보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월드컵 첫 경기 하는 시간에 영어 공부를 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