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헌신과 자비

19.01.27(주일)

by 어깨아빠

분주했지만 즐거운 아침 시간을 보내던 소윤이가 아내와 나의 대화(교회와 관련한)를 듣더니 갑자기 울먹이며 얘기했다.


"나. 교회 안 갈 거야. 새싹 꿈나무 안 갈래에에에에"


아내가 소윤이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꽤 긴 대화를 나누고 다시 나온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오늘도 새싹 꿈나무 가서 열심히 예배드릴 거에요"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보니 그냥 다시 한번 예배에 대해서 얘기하고 마귀의 유혹(?)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랬단다. 아직은 엄마, 아빠랑 헤어지는 아쉬움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나 보다.


아침 메뉴는 계란밥이었는데, 시윤이 밥에는 아보카도도 추가됐다. 소윤이는 아보카도를 싫어한다. 아내가 얘기했다.


"소윤아. 아보카도가 몸에 얼마나 좋은데. 같이 비벼 먹으면 괜찮을 텐데"

"싫어. 나는 아보카도 싫어"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소윤아. 조금 맛없어도 같이 먹어 봐. 적응될 걸"


소윤이는 스스로 먹고, 시윤이를 먹여 주느라 숟가락에 떠서 입에 넣어주다 보면 나도 한 두 숟가락 먹게 되는데, 우웩. 따뜻한 밥과 비벼진 아보카도는 뭔가 은근하지만 강력한 느끼함을 잔뜩 풍기고 있었다.


"소윤아. 아빠도 아보카도 못 먹겠다"

"왜여?"

"맛이 없네"

"아빠도 맛이 없어여?"

"어. 따뜻한 아보카도는 못 먹겠다. 아빠는 샌드위치나 샐러드에 들어간 것만 좋아. 소윤이도 맛없으면 못 먹을 수도 있겠다"


지난주처럼 아내랑 소윤이를 먼저 내려주고, 나는 주차하고 나서 시윤이랑 걸어갔다. 소윤이는 울거나 질척거리지 않고 바로, 즐겁게 새싹 꿈나무 예배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누나의 발전과는 다르게 시윤이는 답보 상태다. 아니, 어쩌면 퇴보인가. 오늘은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 막 울거나 징징거리는 건 아니고 기분 좋아서 웃고 크게 얘기하고 그랬는데, 도저히 본당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내가 몇 번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타협을 시도했으나 통할 리가 없었다. 예배 초반부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모실로 데려갔다. 아내는 본당에 그대로 있고, 나랑 시윤이만 갔다. 자모실은 정말 집중력 향상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곳이다.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훈련할 때 교회의 자모실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예배를 모두 마치고 식당에서 온 식구가 재회했다. 소윤이는 간식으로 나온 초코우유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등장했다.


"아빠. 나 오늘 예배도 잘 드리고 말씀 암송도 열심히 했어여"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식사를 시작했다. 매콤한 배춧국이 나와서 애들을 먹일 반찬이 없었다. 소윤이는 국에 든 김치랑 배추를 물에 씻어서 주긴 했지만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시윤이는 더 심했다. 그냥 맨 밥만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윤이는 거의 한 공기에 가까운 분량을 먹었다. 정말 그냥 쌀밥만.


"여보. 오늘은 약속 없어?"

"여보. 누구야? 누가 만나재?"

"여보. 누구 연락해 봤어? 만날 사람 없어?"


아내에게 계속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없는데"


밥 먹고 카페에 잠시 앉아 있다가 날 교회에 떨어뜨려 주고 나면 저녁때까지는 안녕이었다. 목장모임, 축구로 이어지는 독박 육아 콤보. 아내가 누구라도 만나야 한결 마음이 편해지고, 홀로 두는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으니 수시로 물어봤지만, 결국 없었다.


"여보. 갈 게. 언제든 연락해"


지난주, 축구를 마치고 돌아갔을 때 마주한 넋이 나간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은 중간중간 수시로 연락해 상황을 파악했다. 다행히 아내의 목소리에 유쾌함이 남아 있었다. 아내의 목소리에 유쾌함이 남은 대신, 나에게는 차가 없었다. 우리 집 쪽으로 가시는 분이 없어서 지하철역까지만 얻어 타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복귀했다. 차가 없으니 매우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쳐 먹었다.


'애 둘 딸린 아빠 주제에 주말 축구라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지'


아내는 애들 저녁까지 모두 먹여 놓은 상태였다. 집에 들어갔을 때, 소윤이 샤워를 시키려던 참이었다. 방해꾼(?)이 없어서 그런지 시윤이가 유난히 반갑게 날 맞이했다. 강아지처럼 막 다리에 달라붙고. 소윤이가 씻는 동안 시윤이랑 그리 길지는 않아도 밀도 있게 놀았다. 소윤이의 등장과 함께 시윤이는 밀려났다. 소윤이랑도 짧지만 아주 신나게 놀았다. 사실 낮에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별로라 소윤이한테 짜증도 좀 내고 시큰둥하게 대해서 미안했는데, 자기 전에 실컷 웃게 해 주고 기분 좋게 해 줘서 마음의 짐을 덜어냈다.


재우는 것까지 아내가 담당했다. 시윤이가 꽤 오랫동안 시끄러웠다. 그러던 시윤이의 소리도 잠잠해진 게 한참 지나고도 아내는 나오지 않았다. 카톡을 보내도 답이 없는 걸로 봐서는 잠든 것 같았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하루 종일 애들이랑 씨름했는데 그대로 잠들게 두면 내일 아침 너무 허망해할 것 같아서 깨웠다.


"어. 여보. 애들 자?"

아내는 늘 방금 잠깐 존 사람처럼 얘기한다. 30분 잤으면서.


축구하고 와서 옷도 안 갈아 입고 애들이랑 내리 논 나에게 아내가 자꾸


"여보. 힘들지"


라고 물어봤다. 뭐지. 내가 축구하고 온 걸 잊었나. 일하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아니 세 시간 축구하고 와서는 애들이 달라붙는다고 짜증 내면서


"아빠. 옷도 못 갈아입었잖아. 좀 씻고. 어?! 여보가 애들 좀 봐. 좀"


이러는 놈이 있으면 그건 미친놈이잖아. 여보.


난 정상인 남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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