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엄마 내일도 나가여?

19.01.29(화)

by 어깨아빠

"아빠. 화장실 가고 싶어여"


오랫동안 자고 일어났으니 정말 화장실이 가고 싶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엄마, 아빠가 화장실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는 걸 아는 것 같다. 물론 소윤이는 혼자서 소변도 보고 뒤처리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왠지 화장실까지 야박하게 구는 건 미안해서 웬만하면 같이 가주고 있다.


그 짧은, 화장실 잠깐 다녀오는 시간에 시윤이도 깨버렸다. 시윤이는 밤새 아내와 나를 괴롭게 했다. 계속 울어댔다. 잠결이라 정확히는 못 봤지만 아마도 자신을 등지고 누운 아내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아침에도 비슷한 이유로 아내에게 발길질을 하며(100%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신경질을 내길래 붙잡아 놓고 훈육을 실시했다. 알아먹는 것 같으면서도 못 알아먹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시기다.


나한테 싫은 소리 들었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한테 와서 엉겨 붙고 애교를 부리는 게 강시윤의 매력이다. 소윤이는 내가 먼저 가서 풀어줘야 하는 편이고.


아내는 오늘 밤,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익선동에서 만나는 거라 차는 두고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고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데다가 간만에 혼자 서울 시내까지 나가는 거라 시간을 많이 주고 싶었다. 원래 정해진 퇴근 시간보다 더 먼저 나왔다. 집에는 장모님이 와 계셨다. 소윤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날 보더니


"아니야. 아니야. 할머니랑 너무 쪼끔밖에 못 놀았어어어어"


라며 우는 소리를 했다. 난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아빠의 퇴근 = 할머니와 이별이라는 게 슬펐나 보다. 아내더러 얼른 나가라고 떠밀었다. 내가 채근하지 않았으면 더 늦어졌을 거다. 나의 재촉과는 반대로 소윤이는 더 슬퍼했다. 엄마도 엄마지만 할머니랑 이별하는 게 싫은가 보다. 장모님이 오셨는데 아내가 나가는 날에는 거의 백이면 백 울음바다가 된다. 멀쩡하던 시윤이도 우는 누나를 따라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아. 순간적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급상승했지만 큰 심호흡과 마인드 컨트롤로 잘 극복해냈다.


시윤이는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고, 소윤이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소윤아. 우리 저녁 먹고 편의점 갔다 올까?"

"왜여?"

"그냥. 소윤이랑 시윤이 간식 사주게"

"간식이여? 왜여?"

"그냥. 사주고 싶으니까"

"사서 오자구여?"

"아니. 사서 거기서 먹고 오자고"

"아빠. 근데 과자는 안 돼여"

"왜?"

"아까 낮에 롯데마트에서 고래밥이랑 초코송이랑 세 개 사서 커피앤수다 가서 다 먹었어여"

"아. 그래? 그럼 뭐 먹지?"

"음. 초콜렛은 안 돼여?"

"응"

"그럼 초코우유도여?"

"그렇지. 소세지 먹을래?"

"소세지 말구여. 다른 거"

"다른 거 뭐?"

"음. 일단 밥 먹고 얘기해 보자여"


식사를 마친 후 씻긴 다음, 잘 때 입을 옷까지 다 입혀서 나갔다. 돌아와서는 양치만 하고 잘 수 있도록.


초콜렛, 사탕, 카라멜 등을 고를 수 없으니 집을 만한 게 없었는지 소윤이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과자를 몇 개 집기는 했는데, 시윤이랑 같이 먹기에 너무 자극적인 것들이었다. 일단 소세지를 하나씩 사 주고, 자그마한 봉지에 담긴 버터링 같은 과자가 있길래 그걸 권했다.


"소윤아 이건 어때?"

"이건 무슨 맛이에여?"

"어. 아무튼 맛있는 맛이야. 소윤이도 좋아할 거 같은데. 시윤이도 먹을 수 있고"


소윤이가 골랐던 고래밥과 내가 권한 버터과자 중 어느 것이 시윤이의 몸에 해로운가 하는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왠지 버터링이 더 담백한 맛이라 심리적 죄책감이 덜 하다. 둘 다 참 잘 먹었다. 소시지도, 과자도. 한 30여분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잠깐 밤바람도 쐬고, 애들도 좋아하고. 시간도 그렇게 늦지 않고. 앞으로 종종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이걸 또 하나의 루틴으로 삼아 물고 늘어질 소윤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망설이게 된다.


"아빠. 책 몇 권 읽어줄 거에여?"

"어. 한 권"

"왜 한 권이에여?"

"오늘은 늦었으니까. 밖에 나갔다 왔잖아"

"그래도 두 권 읽고 싶은데"

"아니야. 오늘은 한 권이야"

"아빠"

"어?"

"막 엄청 늦어서 10시가 넘고 이런 거 아니면 책은 원래 무조건 읽어주는 거잖아여"

"소윤아. 무조건 읽어주는 건 없어"


아무래도 오늘은 내가 논리 싸움에서 진 것 같다. 소윤이는 두 권을 들고 와서 애교를 부렸고, 난 못 이기는 척 두 권을 읽어줬다. 시윤이도 한 권을 골라왔지만 엉덩이 밑에 깔고 누웠다. 시윤아. 미안하다. 조만간 니가 골라온 책도 열심히 읽어줄게.


자기 전에 소윤이에게 기도를 시켰더니


"하나님. 오늘 이렇게 좋은 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도 집에 잘 가게 해주시고, 엄마가 해나 이모도 잘 만나게 해 주시고, 집에 올 때 자다가 집에 못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엄마가 차 안 가지고 가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걸 알았을까. 평소 고정 레퍼토리가 아닌 시의적절한 새로운 내용을 포함시켜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소윤이가 질문을 했다.


"아빠. 엄마 내일도 나가여?"

"아니야. 내일은 안 나가"

"그럼 내일은 누가 재워줘여?"

"내일은 엄마가 재워주라고 할 게"

"혹시 엄마가 바쁘거나 나가야 되면 아빠가 재워 주고?"

"어. 그렇긴 한데 내일은 엄마가 어디 안 나가실 거야"

"그래도 혹시 나가면 아빠한테 재워달라고 하구여?"

"어. 그러면 되지"


소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시윤이가 한참 걸렸다. 금방이라도 잘 것처럼 하더니, 계속 그 상태에서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어느 순간 손가락을 빨길래 그거 뺐더니 또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요즘은 잘 때 손가락 못 빨게 하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진다. 화장대 쪽으로 붙어서 나를 등지고 몰래 빤다. 안타깝게도 소리까지 숨기지는 못해서, 쪽쪽거리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리지만.


한참을 울고 나서도 또 손가락을 빨길래 그냥 뒀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가 지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고. 그렇게 뒀더니 금방 잠들었다.


아내가 어제 얘기했다. 목요일에는 또 합정에서 대학 친구들 만난다고, 날더러 차를 두고 출근하라고 했다. 퇴근할 때는 사무실에서 합정으로 오는 게 낫지 않겠냐며 선심 쓰듯 말했다. 30-40분이면 온다면서.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구만요.


여보. 소윤이 기도 봤지. 졸다가 지나치지 말고 잘 내려서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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