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30(수)
시윤이 머리를 한 번 잘라주고 싶었는데 쉽게 시도를 하지 못했다. 일단 돈을 지불하고 머리를 자를 가치가 있는 머리숱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두 돌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빈약한 시윤이의 머리를 보고 있자면
'됐다. 뭐 집에서 대충 잘라주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번에 미용실을 경험한 뒤로는 어찌 됐건 돈 주고 자르면 그 전보다는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됐다. 설날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명분 삼아 머리 손질을 단행했다.
아내가 낮에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단지 안에 있는 미용실에 갔다. 출근하기 전에 그렇게 이야기만 한 뒤로 잊고 있었는데, 오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로. 머리를 자르고 나온 소윤이와 시윤이가 단지 안을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시윤이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내 아들은 없고, 웬 빙구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뒤랑 옆은 확실히 깔끔해졌는데 앞머리가 압권이었다. 이건 미용실에서 못 잘랐다기보다는, 시윤이의 머리숱, 빈약함 등이 만들어 낸 필연적인 결과였다. 아내는 앞머리를 조금 더 짧게 치면 어떻겠냐고 선생님에게 물어봤지만, 그렇게 하면 앞머리가 빈약한 시윤이는 변발 수준의 이마를 드러내게 될 것이라며 막아주셨다고 했다. 감사하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분명히 깔끔해지기는 했는데, 멍충미를 잔뜩 얻었다. 시윤아 괜찮아. 아빠가 손질로 만회해 볼 게. 넌 세배나 연습해라.
일도 별로 힘들지 않았고, 일 하면서도 계속 애들을 떠올리며 '집에 가면 또 재밌게 놀아야지' 각오를 다졌는데 이상하게 집에 도착하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어떤 날은 엄청 피곤하게 들어왔는데도 힘이 나는 날이 있고, 오늘 같은 날은 별로 힘들 게 없었는데 유독 지치고 늘어졌다.
반갑게 달려드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차례대로 안아주는 것과 동시에 아빠 놀이터가 개장했다. 손만 씻고 바로 거실에 앉아 소윤이와 시윤이랑 노는데, 도무지 힘이 달려서 흥이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렸을(뭐 진짜 하루 종일 기다리지는 않았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힘들어도 놀아야 한다는 의무감과 눕고 싶다는 본능이 충돌하고 있었다. 소윤이한테도 다정스럽지 못한 말투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래도 아내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소윤이의 넓은 수용으로 나의 어두운 기운이 제법 많이 희석되긴 했다.
아내한테 애들 재우는 걸 맡기고 운동하러 가는데 괜히 소윤이한테 미안했다. 조금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게. 나도 모르게 한번씩 짜증이 튀어나올 때마다 보였던 소윤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겸연쩍은, 당황스러운 표정. 이제 소윤이는 그런 반응을 보이곤 한다.
조금 더 어릴 때는 단순한 차원의 감정의 교류만 있었다면, 이제는 꽤 복잡해졌다. 복잡해진 소윤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 건 차라리 낫다, 나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는 듯한 소윤이의 모습을 볼 때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렇게 그 상황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며,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는 거다.
어쩌면 나의 과민한 반응일 뿐, 소윤이는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결국 숨바꼭질로 즐겁게 웃으며 모든 일정을 마치기는 했다. 아내한테 물어봐도 기분 좋게 잠들었다고 하고.
소윤이도 시윤이도 나 때문에 좀 많이 웃고, 어디 가서도 자기 아빠 부끄러워하지 않고, 힘들면 와서 기대고, 내 생각만 해도 든든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올해는 꼭 소윤이랑 둘이 여행 다녀와야지. 꼭. 1박 2일이라도. (소윤이가 거부하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