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는 시월드

19.02.05(화)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엄청 일찍 일어났다. 소윤이야 그렇다 쳐도 시윤이는 그러면 안 됐다.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자기도 피곤했는지 계속 이유 없이 짜증내고 칭얼거렸다. 그냥 하루 종일 그랬다. 하아. 이래도 싫고, 저래도 싫고, 안아줘도 싫고, 내려놔도 싫고, 먹으래도 싫고, 먹지 말래도 싫고. 아침 먹을 때도 아주 가관이었다. 집에서 먹는데도 아내랑 내가 교대하며 먹었을 정도니 뭐 말 다했다.


그래 가지고 세배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또 세배는 누나 따라서 잘했다. 이제 소윤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세배해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동작을 구사한다. 시윤이는 바닥에 철퍼덕 엎어지고. 둘이 복주머니 차고 세뱃돈 관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 이제 엄마한테 안 주고 여기다 넣어 놓을 거다여"

"아꺼. 아꺼(내 꺼)"


들러야 하는 곳이 아주 많았다. 우선 나의 큰아버지 댁. 거기서 (내) 엄마, 아빠와 동생네도 만나기로 했다. 아침 먹고 서둘러 떠났다. 정말 쉬지 않고 징징 거리던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어서 도착했을 때 깼다. 아침 먹고 점심때쯤 파주에서 떠난 거라 따로 애들 점심을 먹일 겨를이 없었다. 큰집에서 두 녀석은 정신없이 배, 곶감, 체리, 사과 등을 먹어 치웠다. 30분도 채 앉아 있지 않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푸드 파이팅을 했다.


그다음은 인천에 있는 (내) 외할아버지 댁. 한 시간 정도 가는 동안 소윤이는 잤고, 시윤이는 울었다. 소윤이가 차에서 잠든 것도, 시윤이가 카시트에서 그렇게 격렬하게 운 것도 오랜만이었다. 계속 나가자고 하고 안아달라고 했다. 으. 정말 가는 내내 최고치로 울었다.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르....느...끄...으..즈...을.....쯕....즜....으...여....즈.......'


하긴 배가 고플 것 같긴 했다. 할아버지 댁에 가서 바로 계란밥을 해서 먹였다. 밥이 별로 없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다 먹지도 않았다. 그냥 어제의 부족한 잠 탓에 모든 심사가 뒤틀린 게 분명했다. 다행인 건 여기서도 세배는 열심히 잘했다. 할아버지 댁에도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근처의 요양병원으로.


얼마 전에 외할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계셨다. 병원과 강시윤이라. 딱 생각해 봐도 피곤한 구성이다. 자꾸 나가자고, 내려 달라고 떼를 썼다. 내려놓으면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게 분명해서 안고 있었는데 점점 거세게 저항했다. 소윤이는 왕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겠냐고 했더니 부끄러워서 싫다고 하길래 그냥 뒀는데, 아내가 잘 구워삶았는지 아내랑 얘기하고 오더니 용기를 냈다.


"하나님. 할머니 다리 아픈 거 빨리 낫게 해 주시고, 얼른 건강하게 해주세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강시윤아. 누나 좀 본받아라 좀. 병원에 오면 이렇게 하는 거야.


병원에서 나와서는 (내) 부모님 집으로. 이때쯤에는 아내랑 나도 엄청 배가 고팠다. 그리고 피곤했다. 하루에 서너 군데를 돌아다니려니 그것도 참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 번에 장거리로 이동한 게 없었을 뿐, 하루 동안 차를 탄 시간을 합쳐보니 거의 서너 시간이었다. 파주에서 은평으로. 은평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신림으로.


"여보. 명절 시월드 피곤하지?"

"뭐래"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배를 했다. 애들 한복 입고 있던 김에 일단 세배부터 끝내 놔야 속편할 것 같았다. 진짜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랑 아빠는 소파에 앉고, 손주를 포함한 자녀들은 세배를 했다. 번갯불에 콩 튀기듯. 이것은 일종의 수금 행사인가 싶은 생각이 스쳤다. 세배를 마치고 엄마는 정신없이 저녁을 준비했다. 전이나 잡채 같은 전통 명절 음식은 안 보였지만, 한우불고기나 더덕구이 같이 엄마, 아빠랑 같이 살 때는 집에서 먹어 본 적 없는 호화 음식이 등판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어찌 먹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내 배 채우는데 집중했다. 너무 배가 고팠으니까.


"엄마, 아빠 영화 보러 갔다 와여"


소윤이가 나서서 난리였다. 그녀의 수작은 아마도 우리가 나가야 자기가 빨리 자지 않을 수 있다는 거겠지. 소윤이는 몇 번이나 더 영화 보러 갔다 오라며 성화였다. 동생네도 자고 가는데 우리끼리 나갈 수는 없었다. 대신 나만 나왔다. 나랑 아빠랑 동생 남편이랑. 당구장에 갔다.


집에서 나올 때도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2시간 정도 치고 집에 돌아갔더니 엄마랑 동생만 거실에 나와 있었다.


"가영이는?"

"글쎄. 잠든 것 같은데"

"몇 시에 들어갔어?"

"한 11시쯤?"

"늦게 들어갔네. 가영이도 자나 보다"


이미 시간이 엄청 늦기도 했고, 굳이 깨울 필요 없을 것 같아 자게 뒀다. 난 엄마, 아빠, 동생, 동생 남편이랑 조금 더 수다를 떨다가 잤다. 우리 집에서 아내만 빼고 그러고 있으니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이 조금 들기는 했다.


'그래도 깨웠어야 하나'

'아니. 당구장을 가면 안 됐나'


아내는 시댁이든 친정이든 명절은 일단 좋아하니까 괜찮겠지. 여보, 아무리 시댁이어도 육아 열외가 짱이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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