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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7. 2024

도대체 언제까지 이걸 닦아야 하지

23.09.13(수)

오전에는 교회에서 일을 했고, 오후에는 외부 일정이 있었다. 오후 일정을 하러 나가기 전에 소윤이를 교회에 데려다 줘야 했다. 피아노 수업이 있었다. 혼자 집에서 나가는 누나를 보는 시윤이의 눈빛은 언제나 복잡스럽다.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사실 시윤이는 그 전에 이미 나와 한 차례 통화를 했다. 나도 정말 싫지만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원격 훈육’, ‘통신 훈육’이랄까.


소윤이를 교회에 데려다 주고 오후 일정을 위해 이동했는데, 집에다 가방을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도착하고 난 뒤에. 다시 집으로 와서 가방을 챙겨서 나왔다. 덕분에 평소에 비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아주 짧게 자주 보기는 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퇴근이 꽤 늦었으니까.


늘 입덧이 심한 아내가 오늘은 입덧이 ‘더, 매우, 심각하게’ 심해졌다.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한 것 같았다. 끼니는 죽을 시켜서 겨우 해결했고(아내만), 아이들은 소윤이를 필두로 눈물겹게 알아서 해결한 듯했다. 저녁에는 아내가 먹고 남은 죽을 김에 싸서 먹었다고 했다. 아내가 차려주고 말고 할 상태가 아니라, 역시나 소윤이의 진두지휘 아래. 양이 턱없이 부족했는지 다 먹고 나서도 배가 안 찼다고 하면서 무언가 먹을 걸 더 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거기에 대응할 힘이 없었다. 결국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리에 누웠다.


퇴근했을 때, 아이들은 아직 잠들기 전이었다. 아이들도 나도 서로 반갑고 애틋하게 인사를 나눴다. 아내도 잠들기 전이었지만, 잠든 것과 다름없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도 힘들긴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내보다 더 힘들까’하는 생각을 하며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것과 같이 살고 있는 아내의 역할을 대신 하며 새삼 아내의 수고를 깨닫는다.


‘알고 있기는 했지만, 현상유지를 하려면 도대체가 쉴 틈이 없겠구나’


이걸 제일 많이 느낀다. 모든 육아 일과를 마치고 난장판인 집을 다시 원상복귀 하는 게 어찌나 반복적이고 때로는 꼴도 보기 싫은지. 어제는 아내에게 진지하게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구매를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파트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서 지정된 장소에 갖다놔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그걸 수거해 가시면 음식물 쓰레기 통을 가지고 와서 씻어야 한다. 5인 가족이니 다시 채우는 건 일도 아니고. 너무 빠르다. 이 ‘음쓰순환의 주기’가.


‘하아. 언제까지 이 통을 씻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삶의 의욕이 상실되는 듯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의 가격이 생각한 것보다 비싸서 움찔했다. 일단 제안은 제안으로 끝이 났다. 가격이 나의 추진력을 억제했다고나 할까.


몸 져 누운 아내와 가사를 분담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 않다. 그냥 내 수고의 시간에 아내가 함께해 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 평소에 아내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짠하다. 내가 잘못한 일은 아니지만, 저렇게 누워 있는 것도 왠지 나 때문인 것 같고. 입덧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찾아올 배부름의 시간과 출산의 시간, 그리고 산후조리의 시간까지. 아내에게 언제 다시 일상의 시간이 허락될 지를 생각하면 까마득하고 미안하다.


소진하는 삶처럼 보이나 번창하고 풍성해지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아내가. 가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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