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Mar 17. 2024

언니와 오빠는 가고

23.09.12(화)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K 선생님이 소윤이와 시윤이를 집으로 한 번 보내라고 했다. 셋째를 출산하고 출산휴가 기간인데 내일까지 휴가라고 했다.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매일 밖에 나갔다 오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내가 입덧 때문에 고생하는 걸 아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도 하루 보내서 같이 놀면 어떻겠냐고 했다. K 선생님 혼자서 4명을 보겠다는 말이었다(원래 서윤이도 포함이었지만, 내가 불안하기도 했고 서윤이는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기도 하니 내가 알아서 뺐다). K 선생님 혼자 너무 고생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고민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가고 싶어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것부터 물어봤다.


“아빠. 오늘 00 선생님네 가여?”


혼자 남의 집 아이까지 봐야 하는 K 선생님을 향한 걱정도 있었지만, 사실은 우리 아이들을 향한 걱정이 더 컸다. 남의 집에 가서도 서로 다투고, 더 나아가서는 ‘못되게’ 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었다. 고민을 깊게 하기는 어려웠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간절하게 원했고, 또 이번 한 주도 얼마나 답답하게(?) 보낼지를 생각하면 고민 따위는 묻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 무렵에 소윤이와 시윤이를 K 선생님 집에 데려다 주러 집으로 갔다. 당연히 서윤이도 함께 가고 싶어서 슬퍼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잘 설득이 됐다. 너무 오랫동안 슬프게 울지 않고 웃으면서 언니와 오빠를 보내줬다. K 선생님네 집 앞에 가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인계했다. 부디 나의 염려가 기우가 되길 바라면서 보내줬다.


광활한 오후의 시간을 K 선생님이 어떻게 채울지 궁금하기도 했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적당한 시간(저녁 먹기 전 즈음)에 K 선생님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K 선생님이 아이들을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신다고 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K 선생님의 아내와 아이도 함께 나와서, 내 아내도 볼 겸. 먼저 ‘셋’을 경험했지만 다시 새로운 생명과 함께 입덧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내와, 얼마 전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고통을 감당하고 생명을 얻으며 새롭게 다둥이의 세계로 입문한 K 선생님의 아내와의 만남이랄까. 간단히 하자면, 그냥 이래저래 고생하는 엄마들의 만남이었다. 아주 짧은.


서윤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내는, 마냥 행복하지는 않은 듯했다. 언니와 오빠가 있을 때는 언니와 오빠에게 가서 땡깡도 부리고 떼도 쓰고 했던 서윤이가 오롯이 아내에게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평소였다면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줬겠지만, 지금은 아내도 정상이 아닌지라 서윤이의 끊임없는 짜증 섞인 요구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 듯했다. 정당한(?) 배고프다는 요구에도


“아직 배고플 때가 아닌데 무슨 배가 고프다고 해”


라고 하면서 서윤이의 허기를 묵살했고(사실 아내가 시간을 착각한 거였다. 서윤이가 충분히 배고픔을 느낄 만한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아내도 서윤이도 모두 안쓰러웠다. 퇴근하자마자 서윤이를 데리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좋게 해석하자면 일석이조였다. 아내에게는 잠시 쉴 시간을 주고, 서윤이에게는 홀로 남은 서러움과 답답함을 달랠 시간을 주고. 언니와 오빠가 없으니 확실히 재미가 반감된 듯 신이 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깥공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좋아 보이기는 했다. 킥보드도 타고 간식으로 빵도 하나 먹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K 선생님네 가족이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왔다. 바깥에서 아주 잠깐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K 선생님을 따라 미용실에 가서 앞머리도 자르고 왔다고 했다.


“아, 애들이 잘 놀아서 괜찮았어요”


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래도 수고롭기 그지없는 하루를 보내 주신 K 선생님에게 감사했다.


집 앞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조금 걸으면서 먹을 만한 게 있나 살펴보자고 하며 걷기 시작했다가 꽤 많이 걷게 됐다. 나나 아이들은 괜찮지만 아내에게는 무리가 될까 싶어서 걱정이었다. 아내의 속도에 맞춰서 걸으면 한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한우국밥을 먹었는데 그래도 제법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점심도 늦게 먹고, 간식도 늦게 먹어서 배가 하나도 안 고프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은 먹었고, 시윤이는 배가 고픈 아이처럼 잘 먹었다. 서윤이는 아무 이유가 없었는데 영 태도가 좋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남은 몇 숟가락을 먹지 못하고 밥그릇을 박탈 당했다.


집에 올 때도 슬슬 걸어왔다. 아내는 걸을 만하다고 했지만 보기에는 무척 힘겨워 보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짧은 '괜찮은'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