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1(목)
혼자 집에서 잘 때, 보통은 밤에 홀로 있음을 실감했는데 이번에는 아침에 그랬다. 알람이 울리면 파다다닥 빠르게 팔을 뻗어 껐다. 알람 소리에 애들 깨면 안 되니까. 또 깨긴 깼지만 여전히 비몽사몽인 상황에서도 나도 모르게 곁눈질을 했다. 애들 깼나 안 깼나 확인해야 하니까. 또 막상 아무도 귀찮게 안 하고 안 깨우니까 무지하게 허전했다.
"아빠"
"어. 소윤아"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여"
막 출근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일상의 대화를 짧게 나누고 끊으려는데
"아빠. 사랑해여"
"그래. 아빠도"
"아빠. 아빠. 머리 위로 하트 하면서"
"그래. 알았어"(소윤아 미안, 진짜 하지는 않았어)
"아빠도 사랑한다고 해야지여"
"사랑해"
첫째가 딸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사하고 뿌듯해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아빠아"
"어. 시윤아"
"아빠아"
"어. 시윤아. 아빠 보고 싶어 안 보고 싶어"
"보고"
"얼마큼?"
"매애니"
"시윤이 뭐 하고 있었어?"
"응? 빠방"
"무슨 빠방이야. 뭐 하고 있었어?"
"응? 빠방"
더 이상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딸과 아들이라는 환상 조합의 소유자라는 게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아내가 중간에 차를 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 아내가 있는 마트로 갔다. 소윤이는 장모님하고 마트 안에 있느라 나오지 않았고, 시윤이만 만났다. 시윤아, 사실 더 보고 싶었던 건 너였어. 요즘 또 그러더라. 곧 지나갈, 다시 볼 수 없을 시윤이의 아기 같은 모습이 아쉬워서 그런 걸까.
곧 말이 터지면, 이 어설픈 2음절 화법도 많이 그리울 거다.
아내는 파주 친구들을 만나고, 퇴근 시간에 맞춰 아내가 나를 데리러 왔다. 아내는 집에 가는 길에 주꾸미와 물회를 포장해서 먹자고 했다.(최근에 우리의 맛집 리스트에 오른 집이다)
"엄마. 뭐 산다구여?"
"어. 쭈꾸미. 엄마, 아빠 저녁 먹을 거"
"저랑 시윤이는여?"
"너네는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되지"
"엄마. 왜 엄마, 아빠 먹을 것만 사여. 우리도 사야지여"
"소윤이는 뭐 먹고 싶은데?"
"주먹밥이여"
"주먹밥은 집에서 만들면 되지"
"아. 그래도여. 우리도 사주세여"
평소에는 니네 것만 살 때가 더 많다고 항변하면 너무 유치하니까, 소윤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집 앞 만두 가게에서 주먹밥을 샀다. 애들 먹일 때 늘 사던 '웰빙주먹밥'(멸치 및 견과류로 버무린)이 없어져서, 참치주먹밥을 샀다. 만두도 샀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참치주먹밥을 잘 안 먹었다. 대신 만두랑 소면은 잘 먹었다. 나중에 먹어보니 참치주먹밥이 좀 니글거렸다. 아내가 밥을 따로 했는데 그건 또 잘 먹었다. 특히 시윤이는. 배도 어느 정도 채우면서, 면발로 적당히 장난도 치고. 꽤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이런 날도 많을 거다. 지독히도 힘들고 피곤한 날도 많겠지만, 오늘처럼 애들도 협조적이고 나도 수용성이 커서 뭔가 조화로운 그런 날.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좋고 뿌듯한 날.
모든 순간과 기억을 남길 수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힘들게 키우고 있는데 나중에 기억 못 하는 게 억울해서 쓴다]는 것도 목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지치고 힘든 일상의 연속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지.
소윤이랑 시윤이가 이 글들을 읽고, 혹시나 오해할까 봐. 엄마, 아빠는 우리 키우는 게 그렇게 싫었어? 라면서. 그럴 리는 없겠지?
그렇지 않아. 순간 순간이 버겁고 고돼서 그렇지, 하루라도 지나고 나면 다 벅차고 애틋한 영광의 순간이야. 더 잘해주지 못하고, 참아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게 일상이고. 니네 외삼촌이 그랬었나. 지금 너네랑 함께하는 이 순간, 시간이 엄마,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밝은 때일 거라고.
늘 말하듯, '잘'은 자신 없지만, '열심히'는 하고 있어. 엄마도, 아빠도. 응원해 줘. 니네가 이 글을 읽을 때라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면 엄마, 아빠는 그걸로 됐지, 뭐. 다른 사람 다 몰라도 니네가 인정해주면 끝이지 뭐. 가능할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일 만나자. 너무 일찍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