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5(월)
오늘부터 일주일간 특별새벽기도 기간이다. 우리도 도전하기로 했다. 기상시간은 4시 50분. 오늘은 내가 드럼도 쳐야 해서 조금 더 빨리 일어났다. 아내나 나는 둘째 치고, 애들은 완전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그나마 소윤이는 미리 얘기를 해줬지만, 아마 시윤이는 아직 모를 터. 곤히 자고 있는 두 녀석을 아내와 내가 한 명씩 맡아 옷을 입혔다. 입히는 자도, 입혀지는(?) 자도 비몽사몽이다.
그나마 날이 좀 따뜻해져서 현관문을 열었을 때의 충격(?)이 덜해서 다행이다.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소윤이도, 시윤이도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잠을 떨쳐내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걸리는 새벽인지라,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먼저 들어가고 아내가 둘을 챙겨서 오기로 했다. 예배드리기 전에 소윤이 소변도 봐야 하니 화장실도 들러야 하고.
찬양이 한 곡, 두 곡 끝나가는데도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내 눈에 안 보이는 뒷자리에 앉았나 싶었는데, 그때 아내와 아이들이 맨 앞자리에 와서 앉았다. 소윤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시윤이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빠. 아빠아"를 외쳐댔다.(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그리고 옆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며 검지를 입에 갖다 대는 아내의 모습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시윤이는 잠이 밀려오는지 아내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고, 소윤이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둘 다 약간의 졸음으로 인해 활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오히려 얌전해서 아내가 크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설교 전 찬양을 끝내고 나도 아내와 아이들 곁으로 갔다. 내가 갔지만 둘 다 아내에게 딱 붙어 있었다.
방해하지 않고 얌전히 있어주는 것에 감사하며 목사님 말씀에 집중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특유의 공기 반, 소리 반의 귓속말로 얘기했다.
"하빠하. 쉬 마려훠혀"
"어? 너 쉬 하고 왔잖아"
"크런데헤 또호 마려훠혀"
".......좀 참아 봐. 예배 시간에 들락날락하면 안 돼. 못 참겠어?"
"네헤. 못 참흘 것 같하혀"
"........."
잠시 모른 척 외면했지만, 소윤이는 정말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즐길 수는 없어도 짜증은 내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이게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진짜 엄청 재밌는 영화 보러 갔는데 클라이맥스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칭얼대는 자녀가 옆에 있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도 데려가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변기에 헌납했다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화장실은 두 층 위, 그것도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과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쉬울까)
"그래. 소윤아. 아빠랑 갔다 오자"
웃으며 소윤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향했다.
"소윤아. 그런데 다음부터는 좀 참아 봐. 예배 시간에 자꾸 나오는 건 그렇게 좋은 건 아니야"
변의를 억제하라고 얘기하는 게 맞는 건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소윤이가 오줌을 쌌다. 아주 조금.
"거 봐. 소윤이 쉬 별로 안 마려웠네. 다음부터는 조금 참을 수 있으면 참아 봐. 알았지? 진짜 못 참겠으면 말해도 되고"
이 말을 하면서도, 내가 여자의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말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있기는 했다. 소윤이는 어린아이면서 여자다. 점점 신중해져야 한다는 걸 느낀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더 하겠지. 그런 면에서 아들이 하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소윤이는 언젠가 때가 되면 더 이상 그녀(정말 그녀가 되겠지)의 알몸을 볼 수 없는 날이 올 테지만, 시윤이는 건강한 관계만 쌓아 놓는다면 여든, 아흔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맨 몸을 볼 수 있으니까. 왜 아빠들이 아들이랑 목욕탕 가는 하찮은 일에 그리도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과거에 '아들자식 필요 없다'는 나의 신념은, 참으로 그릇된 생각이었다. (앞에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 '나 같은')
화장실에 다녀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시윤이는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지만 자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전혀 졸려 보이지 않았다. 예배가 끝났고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새벽 기도가 끝나면, 무려 아침 식사까지 제공된다. 지난 특별 새벽기도 때는 매운 국이 나오는 날에는 애들 국을 따로 제공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여기서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 오늘은 애초에 매운 국이 아니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 좋은 교회)
소윤이는 나름 열심히 먹었고, 시윤이는 한 숟가락도 입에 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졸려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애써 먹이지 않았다.
"여보. 그냥 굶겨. 지가 안 먹겠다는데 뭐. 점심 잘 먹겠지"
"그래. 배고프면 점심 잘 먹겠지"
아내가 나보다는 조금 더 세심하고 배려가 넘치지만, 극단에 선 사람은 아니고 의외로 털털한 면이 있어서 이럴 때는 또 쿵짝이 잘 맞는 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종합적으로 봤을 때. 확실히 나보다 더 '된' 사람이라는 말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난 백석역에서 200번을 타고 사무실에 가기로 했다. 아내는 거기서 집으로 가고. 이 동선, 계획의 최대 관건은 애들이 집에 돌아가서 다시 자느냐, 안 자느냐였다. 만약 자지 않는다면 아내에게는 너무 긴 하루일뿐더러, 오후가 되면 졸음으로 인한 소윤이, 시윤이의 폭발적인 짜증을 마주해야 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부디 자길 바라며, 백석역에서 이별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출근할게. 집에 가서 코 자"
"아빠. 보고 싶으면 영상 통화해여. 사랑해여"
"아빠. 빼이"
정말 아이러니하게, 매일 헤어지는 순간에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
백석역에서 사무실까지는 50여분. 앉자마자 잠들었다. 대략 시간을 계산해 미리 알람을 맞춰놨고, 꽤 정확하게 울렸다. 비록 달리는 버스 안이었지만 50분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른 기상의 피로가 다 날아간 듯, 오히려 개운했다.
[시윤이 이제 잠]
9시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나랑 헤어진 게 7시 40분쯤이고, 집에는 8시 내외로 도착했을 테니 꽤 늦게 잔 거였다.
[소윤이는?]
되물었다.
[8시 40분쯤? 아직 자네]
이 카톡이 10시 10분이었으니까 소윤이는 1시간 30분, 시윤이는 1시간 10분 정도 잤을 때였다. 아내가 곤히 자고 있는 소윤이, 시윤이의 사진을 보내줬다. 애들 키우면서 가장 행복하고 너그러운 순간을 꼽으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첫 번째는 퇴근해서 문 열었는데 나한테 와다다다다다 달려올 때. 두 번째는 각자의 방법대로 널브러져서 곤히 자고 있는 두 녀석을 볼 때를 꼽을 거다.
우왓. 일기를 이만큼이나 썼는데 아직 오전의 일상이라니. 새벽기도의 위엄이다.
오후에 아내랑 애들이 뭘 했는지는 자세히 전해 듣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더니 아무도 없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 여보, 어디야?"
"나 방금 집에 도착했어"
"아. 그래? 빨리 왔네? 나 남옥 언니랑 잠깐 스타벅스 왔어. 이제 갈 게"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다. 아내의 자유시간이 보장되는 월요일인데 이미 시간이 많이 늦은 상태였다.
"여보. 안 나가?"
"나가야지. 빨래만 널고"
내가 삼치를 굽고, 불고기를 볶아서 애들 저녁을 먹이는 동안 아내는 빨래를 널었다. 결국 아내는 8시가 넘어서야, 나랑 애들이 방에 눕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늦은 아침잠(?) 때문에 낮잠이 사라진 시윤이는 바로 잠들었고, 가끔씩 철인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강철 체력을 가진 소윤이는 오늘도 조금 버티다가 잠들었다. 소윤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칭얼거렸는데, 그 눈물과 흐느낌이 거짓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보고도 몇 시간 못 본다고 또 보고 싶다며 우는 건, 이만한 엄마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아내는 짧지만 나름 숨구멍 같았던 자유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내일 처치홈스쿨에 가지고 갈 반찬을 만들어야 한다며 시금치를 다듬기 시작했다. 그때가 이미 자정을 넘겼을 때였다.
"여보. 안 자? 언제 자려고?"
"이건 해 놓고 자야 돼"
그때,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그대로는 다시 잠들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방문을 열고 시윤이를 안았다. 시윤이는 계속 엄마를 찾았다. 아내는 급히 숨은 뒤였고, 시윤이를 설득했다.
"시윤아,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엄마 오시면 엄마가 시윤이 옆에서 자고. 알았지?"
"네에"
아, 강시윤의 매력이 이런 거다. 애가 독기가 없다, 독기가.
시윤이는 자기 자리에 누웠다. 소윤이는 곤히 자고 있었고 비빌 언덕은 시윤이뿐이었다.
"시윤아, 아빠 옆에서 자고 싶으면 여기로 와도 돼"
별 반응이 없길래 잠들었나 싶었는데, 한 5분쯤 지나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내 옆으로 왔다. 오른손의 엄지는 입에 넣고 왼손은 내 손을 잡고 잠을 청하는 듯하더니, 한 10여분 뒤에 다시 자기 자리로 갔다.
"시윤아. 이리 와. 아빠랑 자자"
대답이 없었다. 이제 자기 자리가 편한가 보다.
방 문틈 사이로 거실의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 아내는 아직 시금치무침을 만드는 중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