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밤의 소확행

19.04.16(화)

by 어깨아빠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하루가 시작됐다. 그나마 오늘은 드럼을 치지 않아서 어제 보다는 아주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아무리 여유가 있다 한들 새벽은 새벽이다. 모두 비몽사몽이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 떨쳐내지 못한 졸음이 오히려 아이들을 얌전하게 만들었고, 아내와 나는 예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라고 쓰고 꽤 많이 졸았다고 읽어보자)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이 있는 날이었다. 예배를 마친 뒤 밥도 먹고 집에 가서 잠깐이라도 재우는 게 나중을 위해 바람직했다.(난 백석역에서 200번을 타고 바로 출근했다) 날 내려주고 집에 돌아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바로 잠들지도 않은 데다가, 시간에 맞춰 처치홈스쿨에 가려면 금방 일어나야 했다. 결과적으로 소윤이, 시윤이 모두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로 하루를 다시 시작했다.


처치홈스쿨이 있는 날은 중간에 아내와 연락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밤에 하루의 일과를 전해 듣는다. 졸릴 텐데 애들은 괜찮은 건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걱정과 궁금함을 안고 하루를 보냈다.


아주 늦게,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

"어. 어디야?"

"난 지금 잠깐 오빠 집에 왔어"

"왜?"

"오빠가 뭘 좀 부탁해서"


아내는 형님이 부탁한 일을 좀 처리하러 잠깐 형님네 갔다.(형님 부부는 세계일주 중이다) 매우 오랜만에 삼촌네를 찾은 소윤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삼촌 집에 오니까 삼촌 보고 싶다. 아니 숙모가 더 많이 보고 싶다"


시윤이는 아마 아무 기억이 없겠지. 아니면 기억이 있어도 말을 못 하거나. 삼촌과 숙모가 뭔지(?) 알기나 할까.


아내는 형님네 집에 오래 머물렀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여보. 오늘 여기 장 서는 날이더라고. 그래서 아예 여기서 먹을 거 사 가지고 갈까 싶어. 여보도 여기로 와"

"그래. 알았어"


원흥역에서 내려 형님네 아파트로 갔다. 놀이터에 앉아서 기다렸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날 발견하고는 반갑게 뛰어 와서 차례대로 안겼다. 아내는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피로 가득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들어 보니 새벽기도의 여파(수면 부족) 때문인지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처치홈스쿨에 가서 난리도 아니었다. 계속 징징대고 짜증내고, 소윤이는 반항적으로 말 안 듣고. 하루 종일 그런 기조였단다. 아내는 금요일(새벽기도 후 처치홈스쿨에 가야 하는)에는 새벽기도를 쉬기로 결심했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오늘 하루가 고됐나 보다.

고되고 피곤한, 그 이상의 무언가다.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든.


날 만난 뒤로는 그나마 좀 괜찮았다. 아빠가 무서워서 좀 알아서 처신하는 건지 아니면 이 시간이 되면 신체 리듬상 좀 무난해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늘 말한다.


"시윤이는 여보 퇴근할 때쯤이 기분 제일 좋은 것 같아"


맞다. 아내가 말 안 해주면 매일매일을 천국처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형님네 단지에 매주 화요일마다 장이 서는데, 예전에는 꽤 큰 규모였다. 오늘 가 보니 장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소박해진 모습이었다. 먹거리 파는 곳도 많이 줄고. 애들이랑 같이 먹을 만한(먹을 수 있는) 건 떡볶이, 튀김, 순대 정도였다. 편의점에서 햇반을 샀다. 튀김과 순대를 반찬으로 밥을 먹였다. 사실 아내랑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랬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어쨌든 햇반 하나를 반씩 나눠서 다 먹고, 튀김과 순대도 조금씩 먹긴 했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시윤이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것보다는 훨씬 자유로웠다.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바람도 딱 좋을 정도로 서늘하게 불고. 애들도 적당히 신나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각자 마실 걸 하나씩 샀다. 난 커피, 소윤이와 시윤이는 우유. 아내는 하겐다즈. 하겐다즈는 마시듯 먹으니까 [마실 거] 카테고리에 포함해도 된다.


편의점 앞 탁자에 앉아 각자의 음료를 마시며 바람을 쑀다. 시윤이는 잔뜩 신나서 그 주변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뛰어다녔다. 찻길 옆이긴 했지만 거리가 좀 있어서 꽤 안전한 곳이라 역시 자유롭게 놔뒀다. 소윤이는 아내의 하겐다즈를 한 입, 두 입 얻어먹는데 집중하느라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소윤아. 밤에 이렇게 밖에서 가족 시간 보내니까 재밌다. 그치?"

"맞아여. 우리 다음에 또 이렇게 나오자여"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애들을 차례대로 씻기고 잘 준비를 했다. 아내는 머리만 대면 바로 잘 것 같았다. 본인도 어느 정도 예감했는지 나름의 취침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잠옷도 입고, 씻기도 하고.


누운 아내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헬스장에 갔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빙자한 야구 중계 시청을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예상대로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깼다가 다시 들어간 흔적도 없었다. 그렇게 오늘의 육아 끝.


아내의 낮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내가 함께한 밤 시간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그 자체였다. 아마 아내의 낮은 반대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