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축구는 다음에 하면 되지

19.04.24(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저녁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다. 약속을 정할 때 친구 중 한 명이 수요일, 금요일만 시간이 된다면서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냐는 건, 수요일에 축구하러 못 갈 텐데 괜찮냐는 말이었다. (금요일은 교회에 드럼 치러 가야 하는 거니 뺄 수 없고)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난 내 축구 따위 하자고 아내가 친구 만나러 가는 거 파투 내는 그런 남자 아니니까. 그것도 엄청 오랜만에 몇 년 만에 만나는 거라고 했다.


막상 당일이 되니 아쉬움이 차올랐다. 사실 요즘은 주일에 하는 축구보다 수요일에 하는 게 더 재밌다. 수요일에 축구하러 갈 생각과 기대로 전반부를 버티고, 축구하고 온 즐거움으로 후반부를 버틴다. 아침부터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혹시 약속이 밀리지는 않겠지?'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가 볼까'

'아, 이럴 때 누가 잠깐 집에 와 줬으면 좋겠다'

'수요일은 절대 안 된다고 할 걸 그랬나'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만큼 아쉬웠다.


'다음에는 가급적이면 수요일은 피해달라고 해야지'


시윤이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아픈 애처럼 행동했다. 계속 누워 있으려 하고 아프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답했다. 열은 없었다. 아내랑 나는 곧 열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내가 출근하고 나서는 다시 누워 잠들었다. 당연히 열이 나고 감기 증세를 보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시윤이는 정상인이 되었다. 한 숨 자고 밥 먹고 그러더니 활력을 찾았다. 분명히 어딘가 불편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다행이었다.


"여보"

"어. 무슨 일 있어서 한 거야?"

"아니. 그냥. 애들은?"

"어, 잘 놀고 있어"

"아. 그래. 혹시 약속 취소 안 됐지?"

"뭐라고?"

"아, 혹시나 해서"

"순도 100%의 진심이네"


안타깝게도(?) 아내의 약속은 미뤄지거나 취소되지 않고 그대로 이행됐다. 내가 퇴근하자, 아내는 급히 머리를 감았다. 금방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소윤아, 시윤아 안녕. 엄마 갔다 올 게"


그 어떤 날보다, 그 누구 보다, 아내를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소윤이는 졸린 와중에도 자기 몫을 다했다. 시윤이가 난리였다. 아예 처음부터 밥을 안 먹는다길래 밥그릇을 치웠는데도 마찬가지였다.(보통은 안 먹는다고 하다가도 밥그릇 치우면 먹겠다며 태도를 바꾼다) 그러더니 아기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아예 팔을 베고 잠들려고 했다.


"시윤아, 아직 자지 마. 시윤이 씻고 기저귀도 갈아야지"

"아아아아아아아"


졸린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잠들기 직전인 애를 억지로 깨웠으니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시윤이는 정신을 못 차렸다. 눈을 뜨지 못하는 애를 억지로 꺼내 안았더니, 이때부터 뒤집어졌다. 어찌나 바락바락 악을 쓰며 성질을 내는지, 그대로 바닥에 내려놨더니 한참 동안 바닥에 쾅쾅 엎어지고, 구르면서 분노를 표출했다. 소윤이에게 양해를 구했다.


"소윤아, 잠깐 혼자 밥 먹어. 아빠 시윤이 좀 씻겨줘야 할 것 같아"

"알았어여, 아빠"


다시 안았더니 또 그것도 싫다고 파닥거렸다. 심사가 단단히 뒤틀린 모양이었다. 씻을 때도, 씻고 나서도 마치 아빠에게 굴복당한 게 억울하다는 듯 울어댔다.


"시윤아, 아빠가 잠깐 안아줄까?"

"네"

"이리 와"

"으아아아아아아아"


좋다고 했다가 싫다고 했다가, 졸려서 정상이 아닌 건 분명했다. 일단 다시 안아서 좀 토닥였더니 진정이 됐다.


"시윤아, 아빠가 기저귀 갈아 줄 게. 그리고 다시 안아 줄 게. 알았지?"

"네에"


그제야 좀 잠잠해졌다. 그때 소윤이도 씻기고.


"자, 들어가자"

"아빠. 책은 몇 권 골라여?"

"어, 두 권"

"네"


시윤이는 계속 내 손을 잡아끌어서 자기 몸에 접촉시켰다. 일부러 떼면 다시 잡아끌고. 이 치명적인 녀석.


엄청 이른 시간이었다. 7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윤이는 책 읽기와 기도를 마치자마자, 시윤이는 그로부터 몇 분 정도 뒤에 완전히 잠들었다. 이른 퇴근이라 다행이긴 했는데 다시금 아쉬움이 밀려왔다. 마치 금단증상처럼. 나가서 뛰고 싶고, 뻥뻥 차고 싶고, 계속 그 생각만 나고.


소윤이랑 시윤이는 11시가 되도록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축구하러 갔다 왔어도 아무 일 없었던 거다.(물론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더더더더더더 그리웠다. 축구장이.


아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나름대로 즐겁게 회포를 풀고 돌아온 것 같았다. 그걸 보니 또 고작 하루 축구 못한 게 뭐 그리 대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그건 그거고 아쉬움은 아쉬움이었다.


여보, 이제 바뀌었어.


수요일이 메인이고, 주일이 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