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과 숙모의 방

19.04.25(목)

by 어깨아빠

"헐, 8시 30분이야"

"그러게. 애들이 왜 안 깨웠지?"


애들은 진작에 일어났다. 잠결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일어났다는 게 느껴졌다. 보통은 눈을 뜨자마자 깨울 텐데 오늘은 안 그랬다.


"소윤아. 오늘은 왜 엄마, 아빠 안 깨웠어?"

"너무 잘 자서여"


그래, 할 말이 없구나. 앞으로도, 특히 주말에는 오늘처럼 행동하길 바라.


낮에는 별 일이 없었다.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가끔씩 비도 내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답답할 만도 한데 제법 잘 지냈다. 하루가 다르게 둘이 어울려 노는 시간도 늘고, 그 내용도 좋아진다. 나름의 질서도 잡히고.


저녁에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에게 보낼 여러 가지 물건을 사고, 찾아야 했다. (형님네 부부는 세계여행 중이며 현재 페루에 체류 중이다. 페루에서 가방 두 개를 연달아 도난당했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사고, (형님네 집에 가서) 챙겨서 보내줘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맥북. 스타필드에 있는 애플 매장에서 사기로 했다. 아내는 스타필드에서 만나자고 했다. 퇴근해서 스타필드로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이제 이케아 지나"

"그럼 그냥 집으로 올래요?"

"그럴까?"

"응, 아무래도 그게 낫겠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 그냥 스타필드로 갈 게"

"그래. 그럼 거기서 봐. 애들은?"

"괜찮아. 괜찮은데 힘드네"


스타필드에 도착해 주차하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여보. 버스 정류장으로 좀 나와 줘요"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잔뜩 신났고 아내는 기분은 좋지만 힘들어 보였다.


"하아. 여보 힘들다"


그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대중교통의 역설이지. 애들이 좋아하고, 차 없이 다니는 묘한 쾌감도 있고. 그러나 둘을 챙기려면 은근히, 아니 대놓고 힘든.


요즘은 시윤이를 목마 태워도 자기가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버틸 수 있다. 시윤이도 목마의 즐거움을 깨달아서 자기가 먼저 태워 달라고 얘기한다. 아직 '목마'라는 단어는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짓으로 얘기한다. 시윤이 태워주는 건 괜찮은데(물론 힘들지만) 소윤이가 문제다. 소윤이고 시윤이고 요즘 누구 한 명에게 뭔가를 주거나 해주면 꼭 자기도 똑같이 해달라고 한다. 목마도 마찬가지다. 시윤이를 태워줬으면 소윤이도 태워야 한다.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한 3분 목덜미에 앉혀 놓고 걸으면 묵직한 뻐근함이 밀려온다. 그러면 또 팔로 안았다가, 다시 목에 태웠다가. 그러고 다시 시윤이를 안았다가 목마 태웠다가.


맥북을 비롯한 몇 가지 물건을 사고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애들 먹일 밥과 반찬을 집에서 싸 온 덕분에 메뉴 선정이 자유로웠다. 매콤한 코다리 조림과 보리비빔밥을 먹었다. 집에서 싸 온 걸로 먹이니 바깥 음식을 먹일 때 감내해야 하는 약간의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됐다. 둘 다 밥도 잘 먹고. 밥 먹고 나서는 형님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도 물건을 챙겨 백팩 하나에 모두 담아 보내야 했다.


"삼촌 집에 오니까 삼촌이랑 숙모 보고 싶다"


작년 여름에 떠날 때 1년 동안 못 보면 다시 만나서 어색해하거나 기억 못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소윤이의 그리움은 농익고 있다. 시윤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삼촌이라고 알려주니까 "아또" 내지는 "안또" 정도로 발음하며 부르고, 숙모라고 알려주니까 "은모" 정도로 부르는 것 같다. 정말 삼촌, 숙모로 인지하고 있는지는 만나 봐야 알 것 같다.


소윤아, 아빠도 삼촌, 숙모가 얼른 왔으면 좋겠어. 그러면 어제 같은 날에 잠시 우리 집에 와서 망을 봐 달라고 하고 축구하러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소윤이랑 시윤이는 삼촌 집이라 그런 건지, 아님 우리 집이 아닌 어딘가라 그런 건지 아무튼 아내와 내가 짐을 찾고 정리하는 동안 신나게 놀았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형님네 집에서 애들을 씻겼다. 예전에는 형님네서 우리 집에 오는 동안에도 잠들고 그랬는데(형님네 집과 우리 집은 차로 10분 거리) 요즘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도 집에 가서는 양치만 하고 바로 잘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아내는 내일 처치홈스쿨 모임 준비할 게 좀 있다고 했다.


"소윤아. 오늘은 아빠랑 들어가서 잘까?"

"아아, 싫어여. 엄마랑"

"아니, 엄마가 오늘 할 게 많으시대. 너네 재우다 못 일어나면 안 되기도 하고, 재우는데 너무 오래 걸리면 엄마가 늦게까지 일 해야 하니까 피곤하잖아"

"그래도 엄마랑 잘래여"

"소윤아. 이건 소윤이가 좀 이해해 줘. 알았지? 평소에 늘 엄마가 재워주는 건 당연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소윤이를 이해하고 배려해서 그러는 거니까. 알았지?"

"그래도 엄마랑 자고 싶은데"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말투와 태도였다. 시윤이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누워서 손을 흔들며 아내에게 이별을 고했다.


"엄마, 안넝"


애들은 금방 잠들었다.


형님네 보내줘야 하는 짐은 이런저런 이유로 택배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형님네가 여행자 커뮤니티에서 섭외한 페루 여행객을 공항에서 만나 전해줘야 했다. 그게 토요일이었는데 오늘 갑자기 형님에게 연락이 왔다. 내일이라고. 그 여행객이 출국 날짜를 착각하고 있었던 거라고.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논의한 후 선택된 건, 내가 오전에 공항에 가서 짐을 전해주고 출근하는 거였다. 아내랑 아이들은 공항 가기 전에 처치홈스쿨 하는 교회에 데려다주고.


얼핏 보면 번거롭고 성가신 일일 수도 있지만, 아니다. 잠도 좀 더 잘 수 있고, 덕분에 오전 반차도 냈고. 아내도 덜 바쁜 아침을 보낼 수 있고.


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