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 방해꾼

19.04.26(금)

by 어깨아빠

어제 자기 전, 아내가 자기는 7시에 일어날 거고, 난 7시 30분에 깨울 거라고 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8시 15분이었다. 여전히 세상모르고 자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여보. 8시 15분이야"

"어? 8시 15분?"


황급히 일어나 움직였다. 애들 밥 먹이고 옷 갈아입히고, 짐까지 챙겨 나가야 하는데 남은 시간은 45분.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나마 내가 손을 보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침은 계란밥. 아주 속도감 있게 두 녀석에게 번갈아 떠주며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옷도 후다다닥 갈아입히고. 한 1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애들이 말을 막 안 들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 없던 내가 있어서 그런지 둘 다 기분이 좋은 탓에 날뛰는 걸 잡느라 애를 먹었다.


"여보. 나 혼자였으면 늦고 그래서 애들한테도 괜히 뭐라 했을 텐데. 같이 있으니 좀 낫네"


백지장은 맞들면 낫고, 기저귀는 맞드는 게 백 배, 천 배 낫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내려 주고 다시 먼 길을 떠났다. 공항에 가서 미리 섭외(?)된, 페루로 가는 여행객 아주머니에게 형님네 전달되어야 하는 가방을 건넸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 마세요"


부디 저 아줌마가 타고난 사기꾼이거나, 작정한 절도범이 아니길 바라며 돌아섰다. 사무실까지 예상 도착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라, 바로 식당으로 갔다. 갑작스러운 반쪽 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또 스타필드라고 했다. 처치홈스쿨 마치고 연락이 와서 스타필드라고 했는데, 퇴근할 때까지 거기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1층 유모차 대여소에 있었다.


"여보. 나 꼭 먹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거 먹고 가도 돼?"

"어. 뭔데?"

"어, 폴바셋 아이스크림 라떼"


뭐 대단한 게 나올 줄 알았더니. 대신 가는 길이 꽤 험난했다. 1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서 주차장을 관통하고, 또 한참 걸어야 했다. 거기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두 녀석을 번갈아 목마 태우고, 안고. 그게 힘들어서 내려놓으면 시윤이는 자꾸 다른 길로 새고. 아이스크림 라떼를 받아 들고 차에 탔다.


시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처치홈스쿨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끝나기도 했고, 스타필드로 이동할 때도 자기 카시트에 앉아서 간 게 아니라 그랬는지, 어영부영 낮잠 시간을 지나쳐 버렸다. 아내는 중간에 나에게 전화해서 얘기했다.


"여보. 오늘은 시윤이 안 재울까 봐"

"가능하겠어?"


시윤이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정신없이 졸았다. 사실 거의 잠들었다. 아내가 억지로 깨웠을 뿐. 시윤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조금만 더 깨워서 30-40분만 지나면 긴 밤잠 및 빠른 육아 퇴근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는 중대한 일이었다.(난 교회에 가고)


시윤이는 매우 짜증이 났지만, 결국 아내의 성가신 방해를 이겨내지 못했다.(잠드는데 실패했다) 수요일처럼 집에 가서 짜증 폭격기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오히려 잠이 달아난 듯 기력을 찾아 소윤이랑도 잘 놀고, 밥도 잘 먹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밥 먹고 있을 때 집에서 나왔다. 예배 중간에, 예배가 끝나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혹시 잘 수도 있으니 전화는 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보통 잠든 게 맞았다. 오늘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며 우리 집을 올려다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현관문을 여니 아내는 통화 중이었다.


"여보. 누구야?"

"어. 한나"


아내는 또 1시간 30분째 통화 중이었다.(저번에는 3시간) 아무래도 돌아오는 생일에는 택배 아저씨나 퀵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무선 헤드셋 같은 걸 사줘야겠다. 언제든 뭘 하든 자유롭게 통화하라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생각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눕고 나서는 바로 잠들었다고 했다. 아내도 잠들지 않고 바로 나왔고. 하긴 그러니까 1시간 30분씩 통화를 했겠지.


사실 아내가 카톡에 답장을 했으면 물어보고 치킨을 사 오려고 했다. 답이 없길래 그냥 왔는데, 안 자고 있다니. 치킨을 한 마리 배달시켰다. 치킨이 도착하고 상을 펴서 앉는 순간, 덜컹하고 안방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걸어오죠. 한눈에 난 내 아들인 걸 알았죠.


시윤이가 부스스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서 아내 무릎 위에 안착했다.


"여보. 어떻게 하지"

"그러게"


들어가서 재우자니 한참 걸릴지도 몰랐고, 그렇다고 같이 앉혀 놓자니 그것도 뭔가 께름칙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같이 앉혀 보기로 했다. 이 상황에서 이미 아내와 나의 오붓한 담소를 바라는 건 사치였다. 치킨이라도 먹고 봐야지. 시윤이한테는 카사바 칩을 몇 개 쥐여줬다. 가만히 앉아서 잘 먹었다. 덕분에 아내랑 나도 아무렇지 않게 치킨을 뜯었다.


"시윤아. 너네 누나가 알면 천인공노할 일이야"


부디 그런 일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는 재워 놓고 나머지 가족이 야밤에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그러고 보니 12시가 넘었다.


"어? 시윤아, 너 생일이네. 생일 축하해"

"오 진짜 그러네. 생일 축하받으려고 나왔어?"


알아듣는 듯, 못 알아듣는 듯 애매한 웃음과 반응이었지만 어쨌든 좋아하긴 했다. 시윤아 오늘은 생일 전날이니까, 어쩌다 보니 생일 당일도 되었으니까 특별히 봐줄 게. 다음부터 엄마, 아빠 야식 먹을 때는 방해하지 마.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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