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27(토)
"아빠. 이제 일어나서 나가자여"
"아빠아. 나가. 나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성화에도 거실로 나가지 못했던 건, 졸려서가 아니었다. 거실 상태가 너무 처참했다. 발 디딜 틈도 없다는 말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보. 거실에 나가기가 싫다"
"그러게"
방 안에서 한참을 뒹굴다가 거실로 나갔다.
"아침 뭐 먹이지?"
"그냥 계란밥"
아침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헐. 여보. 오늘 시윤이 생일인데 미역국도 안 끓였네?"
"어? 그러네. 생각도 못했네"
불쌍한 우리 아들. 생일인데 미역국도 못 먹고. 우리 가족 중에 생일날 미역국을 못 받은 사람은 시윤이가 처음이다. 어떤 상황이든 아내도 나도, 소윤이도 자기 생일 아침에는 미역국이 올라왔는데. 아내랑 나랑 둘 다 아예 생각을 못했다.
미역국은 없지만 특별히 어제 산 아보카도를 함께 비벼 계란밥을 해줬다. 나랑 소윤이는 아보카도를 안 먹기 때문에 온전히 시윤이의 것이었다. 그걸로 위로를 삼으렴. 미역국은 오늘 밤에라도 끓여서 내일 아침에 주기로 했다.
아침 먹고 나서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기로 했다. 아내는 집에 남아 청소를 하고. 날씨도 따뜻하고 공기도 맑았다. 오랜만에 푸쉬카까지 가지고 나갔다. 사실 소윤이가 킥보드를 타면 시윤이도 너무 타고 싶어 하는데 아직 하나뿐이라 푸쉬카로 시윤이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의도였다. 자동차에 푹 빠져 있는 시윤이는 푸쉬카에도 크게 만족했다.
놀이터에서 놀았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소윤이가 엄청 흥이 나지는 않았지만, 나름 여유롭게 놀며 시간을 보냈다. 목이 마르다길래 간식도 사 줄 겸 한살림에 갔다. 소윤이는 감귤주스, 시윤이는 사과당근즙을 사줬다. 함께 먹을 통밀퐁도 하나 샀다.(소윤이는 이게 죠리퐁이라고 믿는 듯했다)
"소윤아. 이거 어디서 먹지?"
"아빠. 카페 가서 먹자여"
"카페? 아니야 카페는 지금 가기에는 아까워. 금방 들어갈 텐데. 그냥 놀이터에서 먹을까?"
일단 아내에게 전화를 해봤다.
"여보"
"어. 왜?"
"많이 치웠어?"
"아직 좀 더 치워야지. 왜 들어오려고?"
"아니. 그냥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서. 얘네 둘이랑 갈 만한 카페도 없고"
"원래 시윤이 재우면 되는데"
"아, 지금 시윤이 잘 시간이지?"
"어"
"아, 그럼 그렇게 해 봐야겠다. 그럼 여보가 유모차 좀 가지고 내려와. 푸쉬카 가지고 가고"
신나서 자기 것도 골랐는데 바로 재우면 억울할 테니 일단 주스를 먹였다. 잠시 후 아내가 유모차를 가지고 내려왔다.
"시윤아. 이제 유모차에서 코 자자?"
"네에"
뭔가 다르다. 소윤이랑. 소윤이는 아주 어려서부터도 자자고 하면 일단 싫다고 했는데. 시윤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더니 진짜 유모차에 누워서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와 나는 스타벅스에 가기로 했다.
한 시간 조금 넘에 앉아 있는 동안 나름 대화도 하고, 시답잖은 수다도 떨고 그랬다. 한 시간이 전혀 힘들지도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소윤아. 소윤이랑 카페 오는 거 재밌네?"
"아빠. 나도 아빠랑 둘이 와서 얘기하니까 재밌어여"
시윤이는 다시 집에 돌아갈 때까지 깨지 않았다. 집에 가서도 깨지 않고 한 20여분을 더 유모차에서 잤다.
점심시간이 많이 지나서 밥 대신 닭다리 살이랑 감자를 구워줬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한 명씩 샤워를 시켰다. 애들 씻기고 나서 아내도 씻고, 나도 씻고. 저녁에 시윤이 생일 기념으로 양 쪽 부모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고, 온 가족이 꽃단장을 했다. 특히 아내는 당장 사람이 북적이는 어딘가로 가야만 할 것 같은 차림이었다.
그에 비해 식당이 너무 가까웠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 그나마도 밥만 식당에서 먹고 생일 축하 의식(?)은 집에서 하기로 했다. (내) 아빠는 회사에 일이 있어서 못 오셨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점심을 늦게, 배불리 먹어서인지 잘 안 먹었다. 아내랑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다 먹고 나서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급히 최소한의 장식을 했다. Happy birthday 가랜드와 하트 풍선을 거실 커튼에 달았다. 소윤이 책상을 그 앞에 두고 그 위에 케이크도 놓고. 시윤이를 앉혀 놓고 기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시윤이는 이게 뭔가 싶은 멍한 표정이었다. 소윤이 두 번째 생일 때를 기억해 보면, 소윤이는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걸 아는 듯 엄청 기뻐하며 박수치고 그랬다. 참 다르다. 둘이.
시윤이 단독으로 생일 축하 의식을 마치고 나서 소윤이도 옆에 앉아 다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거기서 끝내려고 했는데 소윤이는 자기 혼자 앉아서 생일 축하를 받겠다고 했다. 초도 꽂고 불도 붙여서. 소윤이는 주인공인 시윤이 보다 더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왜 그렇게 정신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 찍는 것도 잊었다. 생일 축하를 마치고 케이크를 정리하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우리 사진도 안 찍었네"
그제야 다시 모여 사진을 찍었다. 부모님들께 커피를 한 잔씩 타 드렸다. 소윤이도 핫초코를 한 잔 타 줬다. 시윤이도 타 줬다. 아주 극소량의 핫초코 분말을 넣고 색만 냈다. 아직 이런 꼼수가 통해서 다행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먼저 가시고 (내) 엄마는 아빠가 데리러 오신다고 하셔서 좀 더 있었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해 주시던 엄마가 결국 미역국도 끓이셨다. 시윤이는 신림동 할아버지(내 아빠)의 등장과 함께 극도로 흥분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뛰어가며 안기고 소리 지르고. 신림동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시자마자 아내가 둘을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고 나왔다.
"시윤이 생일이 뭔가 훅 지나갔네"
"그러니까.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어"
미역국도 못 얻어먹어. 생일 축하도 누나가 더 기뻐해. 핫초코도 가짜 핫초코야. 왠지 불쌍하구나, 시윤아.
어쩔 수 없지 뭐. 니가 살아갈 둘째의 삶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지도 몰라. 그렇다고 널 덜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거 알지. 사실 요즘은 회사에 있으면 니가 더 보고 싶은 날도 많아. 생일 축하해.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