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04(주일)
또 아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 있었다. 가을이도 거실에 나와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가을이가 아빠만 찾는다고 했는데'
혹시 가을이가 눈을 뜨면 아빠를 찾는 게 아니라 일단 안방을 탈출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바로 옆에 있었을 아빠는 지나치고 거실로 나왔다. 생판 처음 보는 것하고 큰 차이가 없을 아내하고도 잘 있었다.
가을이 덕분이었을까, 모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떤 덕분에 꽤 빠르게 교회 갈 준비를 마쳤다. 애들 밥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식사도 마쳤는데 시간이 남아서 여유롭게 커피까지 한잔했다. 항상 시간에 쫓겨서 도망치듯 나오곤 했는데 오늘은 왜 그랬지? 아무튼 늦지 않고 가니 좋긴 좋았다.
대성 씨는 교회 가기 전 바쁜 시간에도 짬을 내서(혹은 짬이 생기니)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렸다. 다들 참 부지런하다. 집에 돌아가면 나도 조금 더 부지런하고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마음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승아네하고는 교회가 달라서 지하 주차장에서 인사를 했다. 대신 예배 끝나고 다시 한나네를 포함해서 모두 만나기로 했다.
"은율아. 우리 쫌 이따 만나자아아"
"그래"
소윤이는 시언이 오빠를 따라 유치부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시언이는 이미 들어간 뒤였고 한나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한나가 소윤이를 유치부 선생님에게 넘겨준 뒤 나왔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소윤이 화장실이라도 한 번 데리고 갔다 올걸"
"아, 그러게"
"뭐 마려우면 얘기하겠지"
"아니야. 내가 가서 한 번 데리고 갔다 올 게"
다시 예배실로 들어갔는데 소윤이가 어떤 선생님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소리가 자세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입모양은 명확했다.
"엄마 있는 데로 가고 싶어여"
다가가는 나를 보더니 아빠가 어떻게 알고 먼저 왔나 싶어 놀라는 표정이었다. 다시 소윤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소윤아. 엄마한테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어?"
"네"
"왜? 시언이 오빠도 있잖아"
"그냥여. 아빠는 왜 왔어여?"
"아, 아빠는 소윤이 쉬 마려울까 봐 화장실 가려고 왔지. 그런데 소윤이가 딱 나온다고 하고 있었던 거야"
소윤이를 데리고 본당으로 올라갔다. 하준이네서 수다 떨 때 난 태화교회(아내와 나의 신혼시절 교회, 소윤이 세례 받은 교회, 하준이 아버지가 담임목사님이신 교회)와 목사님이 너무 좋다고 그랬는데, 예배 시간에 엄청 졸았다. 민망했다. 시윤이가 손가락 빠는 거 뺐다고 크게 울어서 두어 번 안고 나갔다 오기까지 했는데 졸음은 달아나지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한나네랑 점심을 먹었다.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긴 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좀 멀었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좀 가까웠더라도 걷기 힘들었을 거다. 우동, 소바, 돈까스 등의 메뉴를 파는 곳이었다. 이것저것 시켜서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시윤이가 막판에 고집을 부리고 땡깡을 피워서 화장실로 데리고 간 것만 아니었으면 모든 게 완벽했을 식사였다.
밥 먹고 태화강변에서 시간을 보낼까 했는데 그럴 날씨가 아니었다. 승아네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모이기로 했다. 엄마들이 아이들 입막음 + 이동 방지용으로 자연드림에서 모닝빵을 사 왔다. 어른들이 먹을 빵은 겉에 초코가 묻어 있고 모양도 독특하고, 누가 봐도 더 맛있어 보였다. 당연히 아이들이 탐을 냈지만 아주 조금씩만 나눠줬다.
"너희는 그 빵 먹어. 이건 어른들이 드셔야 하는 거라서. 알았지?"
애들한테 빵을 나눠주다가 또 아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다툼이라기보다는 약 3초간의 불꽃이었달까. 아마 휴가 막바지인데다가 날씨도 덥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밖에 없었으면 불꽃이 더 타올랐을지도 모르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강제 진화되었다. 아내는 분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갔고, 난 앉아서 화를 삭였다.
아이들 손에 모닝빵이 쥐여져 있을 때는 제법 조용했다. 우리 애들(소윤이와 시윤이를 포함해 한나네, 승아네 애들까지)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모닝빵과 우유 한 컵씩만 손에 쥐고도 얌전히 앉아서 자기들끼리 얘기도 나누고. 모닝빵이 동나자 엄마들 중 누군가가 공책과 펜을 꺼내들었다. 갑자기 스터디 카페가 됐다. 시언이는 덧셈, 은율이와 소윤이는 한글을 공부했다. 심지어 의욕적으로. 시윤이랑 시아는 뭐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분위기에 편승했다.
시온이와 가을이는 각각 하준이와 대성 씨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 그 더운 날씨에 다 밖에 나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시아도 나갔었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준이와 대성 씨가 참으로 애처로웠다. 들어와서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잠시 후 아내들이 옆에 있는 옷 가게에 구경을 간다고 했다. 아내는 시윤이를, 한나는 시아와 시온이를, 승아는 가을이를 데리고 갔다. 고참 격인 시언이와 소윤이, 은율이만 남았다. 아빠들도 남고.
"시언아, 소윤아, 은율아. 이거 먹어. 엄마들이 안 드실 건가 봐"
엄마들이 먹고 남긴 빵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애들은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공부 삼매경이었다. 잠시 해방을 맞은 남편들끼리 대화를 나눌 여유도 생겼다. 엄마들은 금방 돌아왔다.
아내 손을 잡고 돌아온 시윤이가 심상치 않았다. 하아, 또 왔구나.
"시윤아. 이리 와 봐"
"아아아아앙"
"시윤이 똥 쌌어?"
"아아아아앙"
"괜찮아. 이리 와. 아빠랑 닦으러 가자"
"아아아아앙"
"얼른 닦아야 병균도 안 생겨. 얼른 떼쓰지 말고 와"
"아아아앙. 시더여엉"
"뭘 싫어. 똥 쌌으면 닦아야지. 또 아빠가 가서 안고 갔으면 좋겠어?"
"아아아아아앙"
기나긴 설득 끝에 화장실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아빠. 왜 똥 싸떠여엉?"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란 말이니. 그래도 시윤이의 똥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냄새 내색도 안 하고 아주 기쁘고 즐겁게 반응했다.
"시윤이가 밥을 잘 먹어서 그런가아?"
"왜여어엉?"
"밥을 잘 먹으면 소화가 잘 되니까"
"왜 잘 대여어엉?"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몰라아아아아아악'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되지.
카페에서 나와 정말 작별 인사를 나눴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우리 가야 돼. 이제 은율이랑 가을이는 언제 볼지 몰라. 시언이랑 시아, 시온이는 2주 뒤에 볼 거고. 얼른 인사해"
우리는 장장 400km에 달하는 여정을 다시 시작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두 시간쯤 자고 깼다. 소윤이가 먼저 깨고 시윤이가 나중에 깨서 시윤이가 깰 때까지 더 달렸다. 괴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며 저녁도 먹고 간식도 먹고 그랬다. 경기도 근처가 많이 막힌다길래 일부러 좀 오래 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 둘 다 피곤했는지 밥을 잘 먹지는 않았다. 빠삐코는 엄청 잘 먹었다. 그거 먹고 기분 좀 풀고 힘내라고 거의 반 조작으로 밥을 다 먹였다.(다 먹은 것처럼 착각을 유도했다)
차가 꽤 막혀서 11시가 넘어서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끝났다. 울산 육ㅇ..아니 울산 휴가.
소윤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극정성으로 아기(인형)를 돌봤다. "보고 싶었지? 안 보고 싶었어?" 이러면서 분유 주고 안아주고 아주 난리가 났다. 정리고 뭐고 일단 씻고 다 함께 누웠다.
아무리 육아의 향연이었어도 역시나 출근은 참 싫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