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과 찜질방

19.08.10(토)

by 어깨아빠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물놀이를 하고 나서는 찜질방에도 가기로 했고. 어제의 상황을 매듭짓지 않은 터라 아내와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조금의 촉촉함도 없었다. 건기를 맞은 아프리카 사막처럼 바싹 마른 음성이 오갔다. 그 상태로 물놀이를 하러 갈 수도 없거니와 하루 지나고 나니 내가 별로 잘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절한 시기를 보고 있었다.


아침부터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더웠다. 이것저것 짐 챙기고 차에 갖다 놓는 것만 해도 꽤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개운치 않으니 영 불편했다. 어젯밤의 일을 알 턱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평소와 똑같이 대하려는 나의 모습이 가증스럽기도 했고. 차에 올라타서 출발하기 전에 아내에게 사과(정확히는 사과 발언이라고 해야 할까)를 했다.


"여보. 미안해"

"나도 미안해"


아내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작 이렇게 넘어가려는 것이냐는 의미인지 도대체 어제는 왜 그 난리를 쳤느냐는 의미인지 그저 어색함에서 나온 웃음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내의 마음에 얼마나 찌꺼기가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개운치 않더라도 흐릿하게나마 마침표를 찍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오전 11시쯤 도착해서 아내는 소윤이를, 나는 시윤이를 데리고 탈의실로 흩어졌다.


"아빠. 왜에 엄마양 으나 같이 암 와여엉?"

"아, 아빠랑 시윤이는 남자잖아. 그래서 아빠랑 시윤이가 같이 갈아입는 거야"

"왜에 같이이?"

"남자니까"

"왜 남자에여엉?"

"시윤아. 누가 남자로 만드셨지?"

"음, 한난님가"

"하나님이?"

"네"

"왜 하나님이 남자를 만드셨지?"

"음, 아빠양 나양"


래시가드를 입혀서 수영장으로 갔다. 아내와 소윤이는 아직 나오기 전이라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물에 들어갔다. 역시 적정 온도의 물에는 거부가 전혀 없었다. 튜브를 태우자마자 잘 놀았다. 잠시 후 아내와 소윤이도 나타났고 본격적인 수중 노가다, 아니 물놀이가 시작됐다.


뭐 아주 잘 놀았다. 끊임없이 체력을 소모하는 것 말고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게 제일 힘든 건가) 떼를 쓴다던가 다툰다던가 안 놀겠다던가 하는 게 없었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면 아내랑 나눠서 각각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게 가능하니 갈등도 없었다. 다만, 시윤이는 오늘도 나만 찾았다. 물에만 들어오면 아빠 껌딱지가 되나 보다. 일부러 아내가 데리고 가도 나에게 가겠다며 나를 찾고 몸을 틀었다. 육체적으로는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즐겁게 잘 놀았다. 나도 애들도 아내도. 작년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 애들이 이렇게 물을 좋아하는지 이번 여름을 보내며 깨닫게 됐다. 샤워할 때는 조금만 얼굴에 물이 흘러도 호들갑을 떠는 녀석들이 물을 왕창 먹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잠깐 쉬며 밥을 먹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만 돈까스 덮밥을 시켜서 먹이고 아내와 나는 과일과 빵으로 때웠다.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쉬지도 않고 바로 물에 들어갔다. 나도 아내도 수영을 못해서 애들한테 수영 다운 수영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소윤아. 온몸에 힘을 빼고 누워 봐. 그럼 몸이 둥둥 떠"

"아빠. 빠질 거 같아여"

"아이, 괜찮다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도 해봤는데 바로 물먹어서 바둥거렸다. 소윤아, 미안. 아빠도 야매였다.


그렇게 한 2시까지 물놀이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우리 씻고 찜질방에 갈까?"


가 본 적이 없어서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내와 내가 잔뜩 바람을 넣어놨다. 엄청 넓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도 있고, 아이들 노는 공간도 있고. 덕분에 물에서 빼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다시 아내는 소윤이, 나는 시윤이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갔다. 수영장 - 목욕탕 - 찜질방이 모두 이어져 있었다.


목욕탕에 시윤이랑 나란히 앉아 씻는데 작년이랑 또 달랐다. 제법 사람처럼(?) 내 옆에 똑같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머리도 감고, 비누 칠도 하고. 첫째가 딸인 것도 정말 감사하지만 아들이 한 명 있는 것 또한 너무 감사하다. 협의만 잘 되면 늙어서라도 발가벗은 몸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참 귀한 복이다. 소윤이를 볼 때마다 그게 제일 아쉽다.


찜질방 옷으로 갈아입고 찜질방에 들어갔다. 역시나 이번에도 나랑 시윤이가 먼저 들어갔다. 시윤이는 아이들 놀 수 있게 꾸며놓은 방을 보더니 바로 달려갔다. 누나가 오기도 전부터 열을 내며 놀았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누나, 형에게 어찌나 인사를 건네는지.


"안넝. 떵아"

"안녕. 으나"


아내와 소윤이도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거기서 한참을 놀았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다른데도 구경할까? 여기 방이 엄청 많아"


아내와 나는 일부러 뜨거운 방이라는 걸 말해주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한 30~40도의 방까지는 그래도 잘 들어가더니 그 이상 넘어가니까 일단 시윤이는 입장도 안 했다.


"떠거어여엉"


소윤이는 일단 들어와서 앉기는 했는데 당연히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아빠. 여기 너무 뜨겁다. 어후. 안 되겠다. 나가자여"


그렇게 모든 방을 다 순회하고 나니 소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애들 노는 곳은 아까 거기가 다에여? 많다면서여?"


아내는 얼버무렸다.


식혜도 사서 먹고, 계란도 사서 먹고, 싸 온 빵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넓은 곳을 비교적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 만족하는 듯했다. 물론 물놀이만큼 재밌지는 않았나 보다.


"아빠. 우리 다시 물놀이하러 가면 안 돼여?"

"어? 물놀이?"


규정상 안 될 건 없었다. 패키지 이용권을 구매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여보. 어떻게 하지?"

"안 돼. 너무 피곤할 것 같아. 우리도 애들도"

"그렇지?"


아내가 애들을 보는 동안 잠깐 15분짜리 안마의자에 앉았는데 5분도 안 돼서 잠들어 버렸다. 정신은 행복했으나 몸은 고단하다는 증거였다.


"소윤아.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안 될 것 같고 나중에 또 오자"


5시가 넘도록 찜질방에 있었다. 이번에는 시윤이가 엄마한테 간다길래 아내가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가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바로 이어진 스타필드에 가서 저녁을 먹일 계획이었다. 낮잠도 안 잔 데다가 하루 종일 물놀이에 찜질방에 쉴 틈이 없었던 시윤이가 헤롱댔다. 안아달래서 안아줬더니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려고 했다. 너무 졸렸는지 어떻게 해도 깨지 않아서 바닥에 내려놨다. 당연히 엄청난 짜증을 냈다.


"시윤아. 미안해. 너무 졸리지. 우리 얼른 저녁 먹자"


저녁 메뉴를 고민할 틈이 없었다. 분식 가게에서 파는 셀프주먹밥을 하나 시켰다. 분주하게 주먹밥을 한 알씩 만들어줬다. 다행히 시윤이는 먹을 게 좀 들어가니 정신을 차렸다. 아내와 나도 떡볶이랑 쫄면을 시켰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여보. 왜 이렇게 맛있지?"

"하루 종일 허기져서 그런가 봐"

"그러게. 우리 오늘 너무 달리긴 했다"


강철 체력 강소윤은 오늘도 거뜬히 살아남았다. 시윤이가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을 때도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처럼 두 눈을 부릅 뜨고 있었다.


"여보. 나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 커피 한 잔씩 사 갈까?"

"그래"


아내가 소윤이 재우러 들어간 그 잠깐 사이에도 소파에 앉아서 졸았다.


"여보. 피곤하긴 하다"

"당연하지"


올여름에 또 물놀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자의(아내와 나의 의지로)로 실행되는 물놀이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