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8(주일)
"시윤아. 오늘도 누나랑 새싹꿈나무 갈 거야?"
"아빠두 가치?"
"아니. 시윤이랑 누나만"
"안 갈 거에여엉"
"왜?"
"그냐앙"
괜히 말만 그렇게 하고 막상 데리고 가면 지난주처럼 잘 떨어질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분주한 주일 아침이었지만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챙겼다. 틈틈이 일하는 남편으로 거듭나야 하니까.
새싹꿈나무에 안 가겠다던 시윤이는 누나가 들어가는 걸 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따라 들어갔다.
"시윤아. 누나랑 갈 거야?"
"네"
대충 대답하고 선생님 손에 이끌려 사라졌다.
"여보. 이제 완전히 된 거 같아"
"그러네"
본당에서 안내하시는 많은 분들이 시윤이는 어디 갔냐며, 새싹꿈나무에 간 거냐며 물어보셨다. 네, 이제 저희 자유의 몸이에요.
예배 끝나고 가보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란히 나왔다. 뭔가 잔뜩 신난 얼굴로. 소윤이 손에는 기다란 무언가(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몸에 해로운 식품이라는 게 느껴지는)를 들고 있었다. 시윤이도 같은 걸 들고 있었다. 껍질도 까지 않은 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는 게 차이였다. 마시멜로였는데 맛이 너무너무 불량스러웠다. 일단 밥을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두 녀석의 손에서 그걸 빼앗아 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시윤아. 오늘도 예배 잘 드렸어?"
"네에"
시윤이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애가 계속 방방 떠 있었다. 새싹꿈나무 예배가 잘 맞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점심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얘기를 꺼냈다.
"소윤아. 아빠가 보니까 이거 너무 몸에 안 좋을 거 같거든? 그래서 아빠는 소윤이가 이거 안 먹었으면 좋겠는데. 어때?"
"먹고 싶어여"
"그럼 아빠가 일단 조금만 떼어서 줄 테니까 소윤이가 먹어 보고 결정해 봐"
떼어 준 마시멜로를 맛본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그럼 반만 먹을게요. 그래도 돼여?"
"그래, 알았어"
소윤이한테 조금, 시윤이한테 조금 나눠줬다. 시윤이가 질겅질겅 씹고 있던 건 눈치채지 못하도록 감춘 다음 버렸다.
밥 먹고 [윌]에 갔다. 아내가 잠깐이긴 해도 앉아서 마시고 오자길래 그러기로 했다.
"소윤아. 오늘은 뭐 안 사 줄 거야. 몸에 안 좋은 거는"
"그럼 뭐 사줘여?"
"뭐 우유나 그런 거. 몸에 안 좋은 거 말고"
"아빠. 고래밥 이런 것도 안 돼여?"
"고래밥? 그래, 그럼. 고래밥까지만 사줄게. 대신 둘이 나눠 먹어"
아, 자꾸 사주면 안 되는데.
다 먹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시윤이가 또 우리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소윤이가 확증했다.
"아빠. 시윤이 똥 싸나 봐여"
어제도 여기 와서 똥을 쌌다. 내가 데리고 가서 처리했는데, 이틀 연속이라니. 자기가 가서 닦아주겠다며 물티슈를 챙기는 아내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미안, 여보.
난 교회에 목장 모임 하러 가고 아내는 애들과 함께 집으로 갔다. 목장 모임 끝나고 축구하러 가는 길에 전화해보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오셔서 카페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원래 오늘 소윤이랑 시윤이를 축구하는데 데리고 갈까 고민했었다. 생각만 하다가 일단 다음으로 미뤘다. 나중에 아내가 정말 힘들 때를 위해 아껴두기 위함이기도 하고, 오늘 왠지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실 것 같기도 했고. (사실 그냥 용기가 안 난 게 제일 큰 이유지만)
축구하고 집에 가려는데 얻어 탈 차가 없었다. 일단 교회까지 가서 내렸다.
"여보"
"어. 여보. 이제 끝났어?"
"어. 속 많이 안 좋아?"
"그냥 기운이 없네"
"애들은?"
"애들은 놀고 있어"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은 가셨어?"
"어. 밥만 먹고 바로 가셨어"
"아, 그래?"
"여보는 어떻게 와"
"그러니까. 나 지금 교회야. 오늘은 차가 없네"
"진짜? 오늘은 이쪽으로 오는 집사님 없어?"
"어. 그럼 어떻게 하지. 택시라도 타고 가야겠다"
"여보. 아니면 내가 갈까?"
"여보가? 아니야. 힘들잖아. 그냥 택시 타면 되지 뭐"
"가는 거야 금방인데 뭐. 지금 바로 나갈게"
"그래? 괜찮겠어?"
"어, 괜찮아"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를 데리러 왔다. 소윤이는 하루 종일 비염 증세가 너무 심한 데다가 졸음까지 겹쳐서 눈을 제대로 못떴다. 시윤이는 쌩쌩했고.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애들을 씻기려고 했는데 강시윤이 또 난리였다. 되지도 않는 고집과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엄마한테 해달라지를 않나, 싫다고 안 하겠다고 하지를 않나. 거의 역대 최고로 고집불통이었다. 한참을 씨름했다. 발달 과정상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시기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한 번씩 이런다. 세춘기인가. 오히려 소윤이는 조금 커서 극으로 치닫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시윤이는 오늘 처음으로 긴 문장으로 반항(?)을 했다.
"왜 아꾸(자꾸) 난테만(나한테만) 조용 이케 해여어어어어어"
왜 자꾸 자기한테 조용히 하라고 하냐는 말이었다. 순간 움찔했다. 내가 너무 시윤이의 요구를 묵살했나 하는 생각과 이제 이 녀석도 커서 말로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튼 울음으로, 몸으로, 짧은 외침으로만 거부 의사를 표현하던 시윤이가 언어 다운 언어로 저항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억울했을까.
훈육을 마치고 시윤이를 안고 기도하고 나서 시윤이에게 엄마, 아빠는 니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아무리 나쁘고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해도 미워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도 널 사랑한다,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건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 거다, 사랑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또 순한 양이 되어서 잘 들었다.
자려고 누웠을 때도 시윤이는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다. 시윤이가 잘 한 건 없지만 어쨌든 훈육하고 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부디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며 착잡한 심정으로 시윤이를 보는데 또 마음 한편에서는 '그러고 보니 감정적으로 같이 짜증 내거나 화내지는 않았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그랬다. 내 마음속의 안쓰러움은 슬피 우는 자녀의 모습을 보는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만한 그런 감정이었지 나의 행동을 후회하는 데서 비롯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늘 걱정은 된다.
'시윤이가(소윤이가) 설령 나의 실수와 불완전한 언행에 다치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