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놀이터

19.08.19(월)

by 어깨아빠

점심시간쯤 아내와 통화를 했다.


"여보"

"어. 점심 먹었어?"

"좀 이따 가려고"

"행복한 밥상?"

"어. 우리는 조금 전에 한바탕 울음 폭풍이 몰아쳤어"

"왜?"

"시윤이가 또 자꾸 고집을 부리고 떼를 써서"

"많이?"

"어. 그래서 원래 점심 먹고 놀이터도 갔다 오기로 했는데 그거 안 가기로 했거든. 현실 훈련했지"

"소윤이는 괜히 속상했겠네?"

"그러니까. 소윤이는 그게 너무 속상해서 많이 울었어. 여보가 이따 괜찮으면 애들 데리고 놀이터 좀 갔다 올 수 있어?"

"그래. 그럴게"

"내가 애들한테 이따 아빠 오면 혹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놨거든"


잠시 후 다른 용건으로 통화를 하는데 옆에서 시윤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 이따 아빠 오면 노터(놀이터) 갈 주 있나여어?"


뭔가 생소한 억양과 어투였다. 시윤이는 요즘 이런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아마 여기저기서 들은 걸 직접 해보고 있나 보다.


"그래. 대신 소윤이, 시윤이가 엄마 말 잘 듣고 떼쓰지 않으면. 알았어?"

"네에"


시윤이는 내가 퇴근하자마자 놀이터에 가자고 성화였다.


"아빠. 노이터 가자여엉"

"밥 먹고 가야지"

"밥 먹구? 밥 먹구 이따 가자여어엉?"

"그래. 밥 먹고"


밥을 부지런히 먹어야 놀이터에서 놀 시간이 늘어난다는 걸 계속 얘기해서 그런지, 둘 다 저녁을 시원스럽게 잘 먹었다.


"여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두고 나가. 얼른 나가. 알았지?"

"알았어"


"소윤이랑 시윤이도 엄마한테 인사하고. 이제 우리 나갔다 오면 엄마 안 계시잖아"

"엄마. 잘 갔다 와여"

"엄마. 이따가 와여엉"


아내보다 먼저 집에서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킥보드 타고 나갈래?"

"네에"


날씨가 제법 선선했다. 애들 데리고 나와서 놀기에는 딱 좋았다. 놀이터가 그렇게 좋은가. 둘 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신이 나가지고 발을 쌩쌩 굴렀다. 그야말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소윤이는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킥보드는 한 쪽에 세워두고 뛰어다니며 여기저기 오르락내리락했다. 시윤이는 집에 들어올 때까지 킥보드만 탔다. 이제 질주의 맛을 좀 느꼈는지 30분 가까이 킥보드만 탔다. 소윤이 이맘때와 비교하면 훨씬 능숙하게 타긴 한다. 아직 완벽한 방향 전환은 못하지만, 적어도 직선 주로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방향 전환을 위한 조작(?)을 완전히 익힌 듯했다. 물론 아직 속도는 누나에 한참 못 미친다.


집에서 나오기 전부터 약속을 받아놨다.


"시윤아. 이따가 아빠가 들어가자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네, 아빠. 이케"

"그래. 떼쓰고 고집부리면 안 돼. 알았지?"

"네"


귀가 10분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고지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10분 있다 들어가자"

"네에"


10분이 지나고.


"소윤아, 시윤아. 이제 들어가자"

"네에"


소윤이는 기다렸다는 듯 호쾌하게 대답을 하고는 킥보드에 올라타서 출발 준비를 했다. 시윤이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울상을 하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오늘은 정말 즐겁게 들어가고 싶었다. 시윤이랑 또 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실컷 웃고 떠들며 재밌었던 걸 다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시윤아. 뭐라고?"

"아빠. 안 드가구 지퍼여어엉"

"안 들어가고 싶다고?"

"네"

"그건 안 돼. 아까 아빠랑 약속했잖아. 그리고 지금 늦었어. 들어가서 씻고 자야지"

"안 자구 지퍼여어엉"

"안 자고 싶다고? 봐봐. 이제 깜깜하잖아. 잘 시간이 됐으니까 자야 돼"

"시더여어어엉"

"시윤아. 아빠가 안아줄까? 아빠 안고 들어갈까?"

"네"


정말 다행이었다. 시윤이가 계속 고집을 부렸으면 또 어쩔 수 없이 훈육의 시간이 임했을 텐데, 오늘은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윤아, 내가 너한테 고마워야 하는 거니 니가 나한테 고마워야 하는 거니.


샤워하고 갈아입힐 옷을 찾는데, 소윤이 옷은 금방 찾았지만 시윤이 옷은 통 보이지를 않았다. 도대체 시윤이 옷은 왜 늘 찾아도 찾아도 못 찾는 걸까. 애들 옷을 넣어 놓은 서랍을 뒤지다가 내복 티셔츠를 하나 꺼냈다.


"아, 이거 입으면 되겠다"

"아빠. 그거 바지는 고장났다니까여"

"아, 그래? 그게 이거구나. 알았어"


고무줄이 풀린 바지를 말하는 거였다. 소윤이가 조금만 더 크면 나의 가사에 큰 도움이 될 거다. 겨우겨우 찾아서 화장실로 가는데, 아내가 애들 입힐 옷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화장실 앞에 놓아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아, 소윤아. 엄마가 여기 다 준비해 놓고 가셨네"


애들 씻길 때 쾌감을 느끼는 몇몇 순간이 있다. 땀으로 범벅된 소윤이 머리에 샴푸로 박박 감기고 씻어낼 때, 시윤이의 목과 겨드랑이에 낀 때 씻어낼 때, 기저귀 벗길 때부터 꼬랑내를 풍기던 시윤이 엉덩이 닦아줄 때. 오늘도 만끽했다.


다 같이 손잡고 기도한 뒤에 책도 읽고 자리에 누웠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눈 감고 자. 장난치지 말고. 알았지?"

"네. 아빠, 그런데 엄마 오시면 꽃 이불 덮고 제 옆에 누우라고 말해주세여"

"알았어"


"시윤이는 손 빨 거예요?"

"아니여어"

"장난 안 치고 잘 거지요?"

"네에"


둘 다 약속을 잘 지켰다. 금방 잠들었다.


얘들아, 고맙다. 지금은 잘 자는 게 제일 큰 효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