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빠랑

19.08.20(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요즘 매일 점심을 '행복한 밥상'으로 해결하고 있다. 유, 초년생들의 방학 기간에 무료로 점심을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미리 신청하고 점심시간에 단지 내 복지관으로 가면 양질의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음) 신청자가 그렇게 많지 않은지 누구든 와서 먹으라는 안내 방송이 자주 나오곤 한다.


아내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시간이다. 끼니도 때우고 시간도 보내고. 오늘도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놀이터에 간다고 했다. 낮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어서 꽤 뜨거웠다.


[땀이 줄줄 난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을 때 놀이터라니. 생각만 해도 덥다. 아내는 어쩌다 보니 시윤이 낮잠 시간을 놓쳤다며, 오늘은 재우지 않을 거라고 했다. 중간에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니 졸려서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시윤이 사진을 보내줬다.


아내는 오늘도 저녁 외출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니는 교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선교 관련 기도회가 있는데 예전부터 거길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가보라고 적극적으로 등을 떠밀었다.


퇴근해서 문을 열었는데 방금까지 운 듯한 소윤이의 얼굴을 마주했다.


"소윤아. 왜 그래?"


나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알아듣기 힘든 크기의 소리로 뭔가 중얼거렸다.(징징거렸다)


"소윤아. 이제 그만 좀 해. 그만"


아내가 매우 지친 목소리로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파에 앉아 소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이리 와 봐. 왜 그래?"


소윤이는 터덜터덜 와서 내 무릎에 앉았다. 그러고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자기 심경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날 안 사랑하는 것 같아여"

"왜?"

"내가 속상한데 시윤이는 웃고 엄마도 안아주지 않아여"

"그게 속상했어?"

"네"

"그럼 그전에는 왜 울었어?"

"그건 모르겠어여"

"몰라? 이유도 모르는데 왜 계속 울고 있어. 그럼 이제 그만 울면 되겠네"

"아니. 엄마가 '내가 먼저'라는 말 하지 말라고 그래서여"

"그래서 운 거야?"

"엄마가 날 안 사랑하는 거 같아서여"


아마 뭔가 하지 않기로 한 말을 했고 아내가 그걸 지적하자 울었던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이렇게 간단한 추측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밀고 당기기가 하루 종일 있었겠지만. 소윤이도 졸려서 그런가 횡설수설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저녁 먹자"


아내가 저녁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자, 시윤아 이리 와. 앉혀줄게"

"엄마양"

"엄마는 오늘 나가셔야 돼"

"아, 시더여어엉. 엄마양 먹으고 시퍼여엉"

"아니야. 오늘은 아빠랑 먹으면 돼"

"으아아아앙"


시윤이가 또 시동을 걸었다. 오늘은 강수를 뒀다.


"그래, 알았어. 밥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은 먹지 마. 안 먹어도 돼. 소윤이, 시윤이가 아무리 울고 떼써도 오늘은 엄마랑 못 먹어. 그러니까 밥 안 먹고 싶으면 먹지 마"


그러고 나서 슬쩍 보니 소윤이도 시윤이도 예상 못 한 수에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자, 밥 먹을 사람?"

"아빠. 저여"

"나여엉"


둘 다 무사히 의자에 앉혔다. 둘 다 웃음도 되찾았다. 아내는 배가 너무 고프다면서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나갔다.


시윤이는 너무 졸렸는지 오히려 약간 과 흥분 상태로 접어들었다. 계속 기분도 좋고 웃고 그랬는데 평소에 안 하는 장난을 했다. 내 몸 곳곳에 혓바닥으로 침을 묻혔다. 즐겁게 받아주니 더 신나가지고 막 깔깔거리면서.


"이제 씻자. 씻고 나와서 조금 더 놀자"

"아빠. 누구부터 씻어여?"

"오늘은 같이 씻자"


"아빠. 시더여엉. 같이 시더여엉"

"그래? 그럼 시윤이부터"

"아빠. 옷 버더여엉?"

"어. 벗겨줄게"


시윤이 머리 감기는 걸 깜빡했다. 마지막에 생각나서 감기려고 헤어 캡을 씌웠더니 안 감겠다면서 헤어 캡을 벗어버렸다. 오늘도 씨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그럼 감지 말자"


그걸 지켜보던 소윤이가 물었다.


"아빠. 나는여?"

"소윤이? 소윤이는 감아야지"

"왜여? 나도 안 감고 싶은데"

"어디 한 번 이리 와 봐"


소윤이 머리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풍겼다.


"이것 봐. 냄새나네. 안 돼, 오늘 감아야 돼"

"왜 시윤이는 안 감고 저는 감아여"

"소윤이는 머리가 길잖아. 오늘 땀 많이 흘렸다며. 감아야 돼"


다 씻고 나와서 약 10여 분의 노는 시간을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숨바꼭질을 택했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 온몸으로 생난리를 쳐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웃겼다. 애들 웃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지만 혹여 누가 그걸 찍어서 보여주면 깊은 자괴감이 들지 않을까 싶긴 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로지 아이들의 웃음을 갈구하는 심정으로 한 몸을 불살랐다.


책도 거실에서 읽고 기도도 거실에서 했다.


"아빠. 오늘은 왜 다 밖에서 해여?"

"그냥. 들어가면 바로 누워서 자려고"


시윤이는 누운 지 3분 만에 잠들었다. 소윤이는 한 시간이 가까이 못 잤다.


"아빠. 숨 막혀여"

"왜?"

"몰라여. 숨이 안 쉬어져여"

"그래?"


약간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나긴 했는데 코와 목에도 콧물이 그렁그렁했다. 그간의 경험상 콧물 때문에 숨쉬기가 버거운 게 아닐까 싶었다.


"소윤아. 콧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 바른 자세로 누워서 자"


그러고도 한참을 못 잤다.


"소윤아. 아빠가 계속 기다릴 수는 없어. 이제 5분만 더 기다렸다가 그때도 잠 안 들면 아빠는 나갈게. 알았지?"

"네"


10분 정도 지났지만 소윤이는 잠들지 못했다.


"소윤아. 아빠 이제 나갈게. 혼자 잘 수 있지?"

"네"


대답은 했지만 훌쩍였다. 살짝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누워 있었다.


"소윤아. 울지 말고. 이따 엄마 오시면 옆에 누우라고 할 게. 울지 말고 자"

"네에"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았는데 소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

"응. 왜?"

"손수건 좀 주세여"

"그래, 알았어"


콧물이 계속 나오는지 손수건을 가지고 다시 들어갔다. 시간이 좀 지나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숨 쉬는 데 조금 어려움을 호소했으니까 혹시나 해서 잘 자고 있는지 살피러 들어갔다. 다행히 잘 자고 있었다. 오히려 잠들고 나니까 숨소리도 편안해졌고.


기도회를 마친 아내와 통화를 하다가 마지막쯤에 얘기했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와. 윌에 가서"

"그럴까 봐"


'그럴까 봐'라는 건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는 얘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