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2(목)
아주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처치홈스쿨 방학이라 아내가 꼭 차를 써야 하는 날이 별로 없기도 했고, 여름휴가도 있었고, 이런저런 일로 빨리 귀가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오늘은 낮에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한대서 차를 두고 나왔다.
"아빠. 어디에여어엉?"
"아빠? 회사지"
"무(뭐) 회사아?"
"무슨 회사긴. 저번에 시윤이 왔던 곳"
"왜 가떠여어엉"
"아빠가 일해야 소윤이, 시윤이 밥 먹고 그러지. 밥 먹고 있어?"
"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가 나가고 한 20분 뒤에 깼다고 했다. 전화했을 때는 밥 먹고 있었고.
"소윤아. 이따 이모들 잘 만나고 와. 엄마 말씀 잘 듣고. 롬이한테 기도도 많이 해주고"
"네"
퇴근을 아예 합정으로 했다. 희주네 집으로 갔다. 바닥에 찰흙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찰흙 통도 엄청 여러 개가 나뒹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잘 노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가자는 아내의 말에 소윤이가 갑자기 길길이 날뛰었다. 마치 지난 울산 휴가 때, 오밤중에 난리 쳤을 때처럼. 그냥 울고 그러는 게 아니라 막 소리 지르고 성질부리고. 선을 넘고 있었다.
"소윤아. 이리 와 봐"
"으아아아아아앙"
"일단 이리 와서 아빠랑 얘기해"
"으아아아아앙"
울면서 내 무릎에 앉았다.
"소윤아. 우는 건 괜찮지만 이렇게 소리 지르고 떼를 쓰는 건 안 되는 거야. 지금 너무 지나쳐. 적당히 해야지"
"으으으으으아아아아"
"소윤아"
"으아아아아아"
"강소윤. 대답하세요"
"네에"
"다시 한 번 얘기해 줄 게. 지금 너무 지나쳐. 저번에 울산에서도 이렇게 하다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하지? 우는 건 괜찮지만 짜증 내고 성질부리지는 마. 알았어?"
"네"
"이제 시간이 됐으니까 가야 돼. 울면서 갈 건지 즐겁게 갈 건지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나가면 우리 저녁 먹고 마트도 가자. 알았지?"
"네"
내 느낌상, 시윤이는 아직 의지(?)를 갖고 성도 내고 소리도 지르면서 일부러 선을 넘는다면, 소윤이는 그것하고는 결이 좀 다르다. 선을 넘는 경우도 거의 없거니와 오늘처럼 가끔 넘을 때도 정말 실수인 느낌이다. 서로 다행이었다. 거기서 더 나갔거나 지속했으면 어쩔 수 없이 다음 단계의 훈육이 됐을 테니까.
찰흙 파편으로 난장판이었던 집이 어느새 깨끗해졌다. 희주는 막간을 이용해 찰흙도 치우고 청소기도 돌렸다. 역시 틈틈이가 정답이군. 그러고 보면 아내도 틈틈이를 잘 활용한다. 아내한테도 많이 보고 배워야지.
희주네서 나와서 근처에 있는 주상복합쇼핑몰로 갔다. 일단 밥을 먹어야 했는데 처음 들어갔던 곳은 애들 먹일 게 계란말이뿐이라 다시 나왔다. 집에서도 계란밥 먹일 때가 허다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밖에 나와서까지 계란 하나로만 먹이는 건 너무하니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여러 가지를 파는 곳이었다. 뚝배기 불고기, 제육볶음, 콩나물국밥을 시켰다.
아내는 이번 주에 들어서면서 입덧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멀미하는 느낌이야"
아내는 입덧을 이렇게 표현했다. 먹을 때는 잠깐 괜찮다가 다 먹고 좀 지나면 엄청 울렁거린다고 했다. 공복감도 심하게 느껴지고. 덕분에 먹는 즐거움을 잃었다. 그냥 끼니를 챙기기 위해, 속에 있는 롬이를 위해 먹을 뿐이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졸린 탓에 힘겹게 식사를 이어갔다. 그래도 소윤이는 꿋꿋하게 마지막 숟가락까지 먹었다. 시윤이는 자꾸 돌아다니려고 하고, 누우려고 하고, 안 먹겠다고 하는 통에 애를 먹었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최종 단계의 훈육까지 가지 않게 하려고 많은 인내와 의지적 차분함을 발휘했다.
"아빠. 롬이가 뱃속에 있으니까 이제 엄마가 먹는 걸 롬이도 같이 먹는 거에여"
"그렇지. 그러니까 엄마는 이제 몸에 안 좋은 건 덜먹고 몸에 좋은 건 많이 먹어야지"
"엄마가 힘들면 롬이도 힘들고?"
"그럼. 봐. 소윤이는 지금 엄마 뱃속에 있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힘들면 힘들고, 엄마가 슬프면 슬프지?"
"네"
"롬이는 엄마 뱃속에 있으니까 더 그렇지. 그러니까 소윤이랑 시윤이가 엄마를 슬프게 하거나 속상하게 하거나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네"
밥 먹고 나서는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장을 다 보고 차에 탔는데 시윤이는 곧장 잠들었다.
"아빠. 그런데 롬이는 지금 제 새끼손톱만큼 작대여"
"맞아. 그렇게 작은데 거기 심장이 있대. 그래서 다음에 병원에 가면 심장 소리 들을지도 몰라. 엄청 신기하지? 그렇게 작은데 심장이 뛴다는 게. 그렇게 작았는데 우리 소윤이처럼 이렇게 커진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아빠. 그러면 아빠가 제일 그렇져"
신기하기로 따지면 가장 커진 아빠가 으뜸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아, 졸리다"
"소윤아. 졸리면 자도 돼"
"아니에여. 졸려도 안 잘래여. 집에 가서 잘게여"
"왜?"
"아, 쉬도 안 했고"
"괜찮아. 자다 일어나서 싸면 되지 뭐"
"아빠 그런데 저는 잘 때는 쉬 마려운지 안 느껴져여"
"그래?"
"그래서 밤에 가끔 쉬도 하잖아여"
"괜찮아. 소윤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가끔 쉬 하는 건 괜찮아"
"아니. 내가 불편해여"
"아, 옷이 젖어 있으면?"
"네"
소윤이랑은 대화할 맛이 난다.
소윤이는 집에 도착해서 간단히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은 다음 자러 들어갔다. 당연히 같이 잠들 줄 알았던 아내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여보. 계속 울렁거려?"
"어. 꾸엑. 꺽"
시윤이 가졌을 때는 소윤이 키우느라 정신없어서 입덧이고 뭐고 느낄 새가 없었다.(라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인데 뭐가 그리 힘들고 바빴을까 싶지만, 그때는 처음이었으니까. 또 애를 키우는 건 그게 하나든 둘이든 우아하고 한가로운 순간은 거의 없으니까. 하나여도 얼마나 정신없었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이 더 정신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