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8(수)
어제 장모님이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에게 꽃을 사주셨는데 그걸 차에 두고 안 가지고 왔다. 어젯밤에 갖다 놓기로 약속했는데 깜빡 잊고 그냥 잤다.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은 차까지 나를 배웅했다. 시윤이는 집에 안 들어가겠다고 살짝 징징거렸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아내의 상황은 좀 어떤지 확인하려고 평소보다 전화를 자주 한다. 돌아오는 답은 늘 비슷하지만 항상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는다. 아직은 늘 똑같다. 힘들다고 해도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고.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 자려고 누웠다며 영상통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우리 다 같이 자려고 방에 들어와서 누웠어여"
"진짜? 소윤이도 잔다고?"
"네"
"안 잘 것 같은데?"
"진짜에여. 잔다니깐여"
소윤이는커녕 시윤이가 자기에도 시간이 조금 일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고. 부디 아내라도 조금 자기를 바랐다. 그것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한참 지나고 다시 통화할 때 물어보니 역시 모든 게 나의 바람이 아닌 예상대로였다. 시윤이는 재우는 데 한참 걸렸고, 소윤이는 당연히 자지 않았으며 아내도 거의 못 잤다. 어제 같이 일하는 형이 물었다.
"가영이는 소윤이, 시윤이랑 있어도 하루 종일 조용한가 봐?"
"에이. 맨날 전쟁이죠"
사망자가 없을 뿐 그야말로 총소리와 적군이 없을 뿐, 전쟁이 따로 없지. 거기에 요즘은 자기와의 전쟁까지 펼치고 있는 아내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오후 늦게 형님네 부부랑 만났다고 했다.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집에 가서 축구 복장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잔뜩 흥이 올라서 아내가 주로 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엄청 "나댔다".
식사 초반에 자꾸 딴짓하고 장난치던 소윤이는 결국 후반부에 가서 졸림을 호소했다. 시윤이는 이미 자기에게 할당된 양을 다 먹었고. 숙모와 엄마의 도움으로 소윤이도 끝까지 완주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킥보드도 타고 놀이터도 들렀다. 소윤이는 못 본 1년 동안 자기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신이 나서 보여줬다. 암벽 타기, 매달리기, 그네 등등. 시윤이도 누나처럼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아빠. 도와 주세여엉"
"짬쫀. 도와 주세여엉"
그래도 폭주(?) 가능할 정도로 능숙해진 킥보드 주행 실력을 보였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시윤아.
집에 들어가자고 하니 시윤이는 괜찮았는데 오히려 소윤이가 아쉬워했다.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운 것보다는 삼촌, 숙모랑 헤어지는 게 싫었나 보다. 집에 가서 보여줄 게 있다면서 잠깐이라도 집에 들어갔다 가라고 매달렸다. 안 된다고 하니까 당연히 울상이었고. 그래도 소윤이는 잠깐이다. 막상 헤어지고 집에 들어가면 금방 괜찮아진다.
퇴근하고 밖에 있었던 탓에 애들을 재우기 위한 공정(?)이 많이 남아 있었다. 물론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되었고.
"여보. 미안. 하나도 못 해주고 가겠네"
"괜찮아"
"오늘은 그냥 세수만 시키고 재워"
"알았어"
굉장히 무거운 마음으로 아내에게 두 아이를 떠넘기고 축구하러 갔다. 축구를 다 하고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카톡이 와 있었다.
[이제 누움]
2시간 30분 전, 그러니까 한 8시쯤이었다. 다행히(?) 엄청 지연되고 그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집에 가 보니 아내는 노트북에 앉아 처치홈스쿨 2학기에 필요한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니"
"많이 안 좋아?"
"어. 앉은 지 얼마 안 됐어"
"나온 건 금방 나왔고?"
"아니. 한 시간 정도 걸렸어. 시윤이는 오늘도 안 잤는데 그냥 나온 거야"
"그래? 안 울었어?"
"엄청 울었지. 울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했어"
"나와서는 소파에 누워 있었어?"
"어"
"고생이네 고생이야 진짜. 미안해"
"뭐가?"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축구하러 갔잖아"
"뭘 미안해. 어차피 나가는 건데"
"내일은 여보도 나가. 월요일에 못 나갔잖아"
"내일? 그럴까?"
아내는 이제 물 마시는 것도 버거워졌다면서 입덧이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나간다고 해도 어디를 가서 편히 쉬고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는 게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임신-출산-육아의 여정에서 웬만한 영역은 내가 도움을 주거나 대략이라도 이해하는 게 가능한데 이 입덧만큼은 그게 안 된다. 나중에 출산의 순간도 마찬가지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심정으로 그저 곁을 지킬뿐이다.
여보, 얼른 끝내고 나랑 다시 무절제한 쾌락의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