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못한 자유부인

19.08.29(목)

by 어깨아빠

아내가 어제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고 했다. 오늘 아침까지도. 설사까지 동반했다길래 혹시 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됐다. 아내가 보내준 인터넷 포스팅에 의하면 임신 초기 입덧과 함께 예민해진 장의 반응, 엽산 부작용, 장염 이렇게 세 가지가 흔한 원인이었다. 엽산 부작용이나 장염은 아닌 듯하고, 예민해진 장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얼마나 대단한 아이가 나오려고 위아래로 아주 난리구나.


아내에게 오늘 나갈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마무리해야 할 처치홈스쿨 일도 있다고 하면서. 시윤이는 재우지 않았다고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티격태격하기는 해도 그럭저럭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줬다.


"여보. 나는 잘 살고 있어"


퇴근하자마자 말타기를 해달라길래 소윤이, 시윤이 딱 한 번씩 해줬다. 마음은 정말 더 신나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타기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아내는 역시나 지친 상태였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계속 놀자고 매달렸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엄마가 나가셔야 해서 아빠가 저녁 준비해야 돼. 그러니까 밥 먹고 씻고 나서 자기 전에 좀 놀자. 알았지?"


아내는 저녁을 나가서 먹겠다고 했다. 밥이 딱 애들 먹일 정도만 남기도 했고. 애들은 잠시 자기들끼리 놀게 하고 생선을 굽고 저녁상을 차렸다. 열심히 저녁을 준비하는데 시윤이가 낚시놀이할 때 쓰는 줄이 달린 막대기를 사방팔방으로 휘둘렀다. 아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했다. 끝에 자석이 달려 있어서 누구라도 맞으면 위험했기 때문에 바로 제지를 했다. 뺏었다. 시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짜증과 고함이 섞인 울음을.


"시윤아. 이리 오세요. 울어도 되지만 짜증은 내지 마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앙"

"시윤이가 위험한 행동을 한 거고,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계속했지? 잘못한 거야"

"으아아아아아앙"

"아빠가 소리 지르고 짜증 내지 말라고 했어요. 울기만 하는 건 괜찮아"

"으아아아아아앙"

"아빠. 마지막으로 얘기할게요. 이리 와서 곧은 자세로 서서 대답하세요"

"네, 아빠아. 으아아아아아"

"다시. 울지 않고 똑바로 대답하세요"

"아빠아아. 나한테 왜 그렇게 말해여어어어엉"


순간 누워서 지켜보던 아내도 나도 웃음이 터지는 걸 참느라 위기였다. 그런 말을 하다니. 겨우겨우 웃음을 참고 훈육을 마치기는 했다. 시윤이의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거의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다.


저녁은 밥, 된장찌개, 생선, 멸치견과류볶음, 오이지의 구성이었다. 시윤이는 여기서 오이지만 빠지고. (시윤이는 오이지를 안 먹는다)


"자, 오늘은 반찬까지 남김없이 다 먹어야 돼. 안 그러면 아빠랑 놀 수 없어"


낮잠을 자지 않은 시윤이에게 저녁 식사는 너무 힘든 시간이다. 앉자마자 반응이 나타났다.


"아빠. 배부러여엉"

"아빠. 힘드여여어엉"


아무래도 자기가 떠먹는 건 힘들어 보여서 내가 떠먹여줬다. 그래도 힘겨워 했다.


"아빠. 너무 힘드여여어엉"

"아빠. 그만 먹을래여어엉"


소윤이는 열심히 먹었다. 골고루, 감사함으로.


시윤이는 도저히 다 먹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탕감(?)을 해줬다. 소윤이도 국을 조금 남겼지만 정상참작을 했다.


내일 아내와 아이들이 파주에 갈 예정이라 거기 가서 목욕하면 되니까 오늘은 샤워를 하지 않았다. 아내도 애들이 땀을 많이 안 흘려서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막상 씻기려고 화장실에 데리고 갔는데 소윤이한테는 땀 냄새가 많이 났다. 긴 머리가 큰 이유인 듯하다. 아내는 애들 씻길 때쯤 나갔다.


"소윤아, 시윤아. 3에 갈 때까지 놀자?"

"10분이에여?"

"응. 10분"


좀 미안하긴 했다. 너무 야박해서. 아빠도 피했어, 얘들아.


숨바꼭질을 했는데 시윤이가 자꾸 나하고만 붙어 다니려고 했다. 술래를 할 때도 나랑, 숨을 때도 나랑. 자기 혼자 하거나 소윤이랑 같이 하는 건 거부했다.


"시윤아. 너는 왜 아빠만 좋아해?"


소윤이는 진심으로 서운한 마음을 담아, 왜 누나는 안 좋아하냐고 묻는 거였다. 다른 때와는 달리 동생에 대한 진한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아, 소윤아. 그게 아니라 아마 오늘 너무 졸려서 그런가 봐"

"아빠. 그런데 저번에 안 졸릴 때도 아빠랑만 한다고 했어여"

"아, 그래? 그럼 시윤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그런가 보다"


"시윤아. 그럼 네 살 되면 누나랑도 해야 돼? 알았지?"

"응"


숨바꼭질, 책 읽기, 기도를 모두 거실에서 마치고 들어갔다. 시윤이는 머리를 대자마자, 소윤이는 조금 꼼지락거리다가 잠들었다. 그때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나 힘들어서 그냥 집에 들어가려고. 애들 다 잠들면 연락해용]


거실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괜찮아?"

"그냥 좀 힘드네"

"저녁은 먹었어?"

"어. 저녁도 겨우 먹었어"

"지금은 어딘데?"

"아, 나 차 가지고 왔거든. 못 걸어갈 거 같아서. 그래서 잠깐 차야"

"그래. 그럼 얼른 들어와"


저녁 먹고 났더니 또 속이 많이 불편해지고 힘이 달려서 도저히 카페에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 바로 누웠다. 조금 누워 있더니 약간 기운을 차렸다. 조금 전에는 들어오는 길에 빵을 사 왔다면서 '라우겐'이라는 걸 먹었다.


"여보. 그래도 아예 빵 생각이 안 나다가 빵을 먹고 싶어졌다는 건 좀 나아지려고 그러는 건가?"

"먹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빵이 먹어보고 싶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도 아가씨 임신했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갈비는 괜찮았다고 하셨잖아. 그런 것처럼 나도 뭐 하나라도 먹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서"


그래, 뭐라도 그런 걸 찾으면 참 좋긴 하겠다. 얼른 보고 싶다. 맛있게 먹고 만족스러워하는 아내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