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설레발

19.08.30(금)

by 어깨아빠

아내가 낮에 친한 언니네 집에 놀러 가기로 해서 출근길에 함께했다. 소윤이는 오늘도 혼자 먼저 일어났다. 자꾸 아내를 깨우려고 하길래 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새벽부터 징징거리고, 자꾸 바스락거리고. 덕분에 잠을 설쳤다. 그러다 결국 늦게 일어났고. 짜증이 조금씩 적립됐다. 새벽부터. 차 타고 가다가 아내가 소윤이한테 뭔가를 하지 말라고 했다. 넙죽 대답만 하고 행동은 반복하는 소윤이를 보고는 큰 소리로 소윤이에게 뭐라고 했다. 소윤이는 단박에 울음을 터뜨렸고.


소윤이가 잘못한 것도 맞고 훈육을 해야 하는 것도 맞았는데, 방법은 좀 틀렸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높였다. 쭉 쌓인 짜증을 '어디 건 수 하나만 걸려 봐라'라는 심정으로 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성이 고운 소윤이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정하게 "아빠?"를 부르며 입을 뗐다. 니가 나보다 낫다.


아침에도 아내의 혈색이 좋아 보였다. 다른 날에 비해 기운도 훨씬 많아 보였고.


"여보. 좀 어때? 괜찮아 보이는데?"
"그래? 비슷한 거 같은데"
"그런가? 왠지 더 나아졌는데"
"여보의 마음이 반영된 거 아니야?"


아니었다. 수년간 아내를 지켜본 전문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정교한 촉에서 비롯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아내는 일단 처가 댁에 가서 본인과 애들의 아침을 해결했다. 점심 무렵에 친한 언니네 집(처가댁과 같은 아파트)으로 옮겼다. 오후쯤 카톡을 해봤다.


[여보 몸은 괜찮아?]
[이 시간 즈음이 힘드넹]
[애들은 잘 놀고?]
[응. 잘 노네. 말을 좀 안 듣기는 해]


그 언니네 집도 애가 둘이다. 다섯 살 딸, 두 살 아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보기도 하고 아내랑 워낙 친한 사이라서 소윤이도 전혀 어색해 하지 않는다. 그런 건 걱정이 안 됐는데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처치홈스쿨의 울타리를 벗어난 곳에서도 배운 걸 잘 지키고 실천하는지. 처치홈스쿨을 시작하고 나서는 애들하고 누군가를, 특히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는 누군가를 만나면 은근한 부담이 있다. [처치홈스쿨로 기르면 이렇게 바람직하다]는 걸 보여줘야만 할 것 같다. 오늘은 양호하다고 했다. 함께 있던 아내의 평이니 믿어도 된다.


퇴근하고 같이 일하는 형(친한 언니의 남편)과 함께 그 언니네 집으로 갔다. 장모님과 그 언니의 어머니(장모님 절친)까지 오셔서 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른 여섯에 애 넷. 애들이 많아지니 웬만하면 대식구다. 치킨, 피자, 떡볶이를 파는 가게에 갔다.


"시윤아. 손 빼"


그러면 바로 뺐다가, 어느새 다시 넣고.


"시윤아. 손 빼라니까"


그러면 또 바로 뺐다가, 금방 다시 넣고.


"시윤아. 손 그만 빨아"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의자에 앉아 기다리면서 졸음과 무료함을 엄지손가락으로 달래던 시윤이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낮잠을 안 잔 탓에 너무 졸려서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잘 달래긴 했다.


시윤이는 졸린 것치고는 꽤 잘 먹었다. 피자와 치킨을 제법 많이 먹었다.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닭다리와 가슴 부위를 통째로 잡고 뜯었다. 그것도 아주 야무지게.


"소윤아. 더 먹을래?"

"아니여. 두 개 먹었더니 배부르다여"


그전에 피자와 떡볶이도 꽤 먹었다. 함께 먹던 친한 언니네 집 애들은 진작에 자리를 이탈해서 밖에 나갔다.


"아빠. 나도 나가도 돼여?"

"아빠. 나두?"


애들이 다 먹었을 때쯤에는 나도 식사가 끝나서 데리고 나갔다. 아주 잠깐 놀다가 금방 차에 태웠다.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교회에 가야 해서 여유가 없었다. 아내는 오늘도 예배에 가는 건 무리일 것 같다고 했다. 소윤이는 자기 혼자 아빠랑 예배에 가겠다고 했다. 밥 먹기 전에 그러길래 밥 먹고 나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러라고 했다.


"소윤아. 진짜 아빠랑 같이 예배 갈 거야?"

"네"

"너무 졸리지 않아? 낮잠도 안 잤는데. 갈 수 있겠어?"
"네. 갈 수 있어여"
"아빠 드럼 치러 가면 소윤이 혼자 앉아 있어야 되는 건 알지?"
"알아여. 그때 가 봤잖아여. 아빠 보이는데 앉으면 되져"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대신 집에 갈 때 잠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알았지?"
"네"


시윤이는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는데 소윤이는 정말 잠들지 않았다. 아내와 시윤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소윤이와 함께 다시 차에 탔다.


"소윤아. 교회 가면 막 돌아다니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네"
"혹시라도 쉬 마려우면 옆에 계시는 집사님이나 권사님한테 화장실 같이 가 주실 수 있냐고 여쭤봐"
"목사님은 말고여?"
"어. 여자분한테만"
"왜 여자한테만 괜찮아여?"
"아빠 말고는 다른 남자한테 소윤이 벗은 몸을 보여주면 안 되니까"
"여자한테는 괜찮아여?"
"여자여도 아무한테나 막 보여주고 그러면 당연히 안 되지.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러라고"


연습 시간부터 예배 시작해서 드럼 반주를 끝낼 때까지, 거의 1시간 30분을 소윤이 혼자 앉아 있었다. 맨 앞자리에. 처음에는 초롱초롱하던 눈이 점점 힘을 잃어갔다. 반주를 마치고 내려가서 소윤이 옆에 앉았을 때는 눈꺼풀이 느린 장면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 결국 졸기 시작했다. 눕지만 않았지 자는 거나 다름없었다. 의자에 좀 눕히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눕기 싫다면서 몸으로 거부했다. 그러고 앉아서는 사방팔방으로 머리를 흔들며 졸았다. 그냥 앉혀 놓기에는 너무 심하게 고개를 흔들어서 자칫하면 넘어질 것 같았다. 설교가 끝나면 잠깐 다시 올라가서 반주도 해야 하니까 어떻게든 눕히려고 했는데 그렇게 졸면서도 몸으로 거부했다. 끝내는 울음과 짜증을 섞어서 내보냈다.


"소윤아. 지금 예배 시간이야. 울고 짜증 내면 안 돼"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소윤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소윤이도 아직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은 건 아니라서 절제(?)하긴 했다. 결국 소윤이는 눕지 않았고, 약간 잠이 깼다. 도대체 왜 안 누우려고 한 건지 통 모르겠다. 설마 그 상황에서도 잔다는 것 자체가 싫었나.


예배를 마쳤을 때, 소윤이는 오히려 조금 생기를 찾았다. 차에 타서도 이것저것 묻고 얘기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길래 돌아보니 자고 있었다. 거의 집에 다 왔을 때였다. 주차를 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드르륵 당김과 동시에 소윤이가 눈을 떴다. 얼마나 피곤할까 싶었다. 졸린데 자지도 못하고 자꾸 자다 깨고 자다 깨고.


"아빠. 엄마는 자고 있을까여?"

"글쎄. 시윤이 재우면서 같이 잠드셨으려나"


집은 깜깜했다. 아내는 시윤이와 나란히 누워 자고 있었다. 소윤이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깨서 잠시 정신을 차렸다. 소윤이는 바로 눕히고 아내도 다시 잠을 청했다. 한참 있다가 아내가 배를 부여잡고 나왔다.


"으. 배가 너무 아파"
"진짜? 그때처럼 설사?"
"어. 그런 것 같아"
"롬이가 아픈 건 아니고?"
"어. 그런 느낌은 아니고 위가 아픈 느낌이야"
"전에 설사할 때랑 비슷한 느낌?"
"어. 비슷한 거 같아"
"배탈 났을 때처럼?"
"엄청 아픈 건 아닌데 막 기분 나쁘게 살살 아파"

대략 무슨 느낌인지 짐작은 가는데 정확히 어떤 건지는 알 턱이 없다. 그냥 매우 힘들어 보였다. 진이 빠져서 축축 처진 모습이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누워 있는 아내의 배를 손으로 살살 문질렀다. [엄마 손은 약손] 처방이 무슨 영험한 약효가 있어서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 건 아니니까.


핏기가 하나도 없이 누워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꽃다운 나이에 같은 고통을 세 번이나 겪다니. 아무리 출산이 위대하고 육아가 기쁨에 겨워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아침부터 호들갑 떨었던 것도 미안했다. 나아지기는 무슨,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이고 감사다. 이제 설레발 안 쳐야지.


롬이야. 우리 쉽게 쉽게 가자고.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