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02(월)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특별새벽기도 기간이다. 어제 생각보다 늦게 자서 굉장히 버거웠지만 첫날이니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일어났다. 아내는 깨우지 않았다. 어제 입덧에 지쳐 쓰러져 잠들기도 했고, 오늘 꼭 갈 거라는 얘기를 듣지도 못했고 해서. 혼자라 허전하긴 해도 집중하기에는 너무 좋았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 카톡이 왔다.
[여보 어디? 아, 교회 갔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또 카톡이 왔다.
[깼는데 못 나가고 있음]
애들이 깰까 봐 못 나오고 있었나 보다. 잠시 후 아내가 나왔다. 오늘따라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엄청 늦게까지 잤다. 출근할 시간이 되어서도 깨지 않길래 방에 들어가서 깨웠다. 시윤이부터 깨워서 살냄새도 맡고 뽀뽀도 하고. 그다음 소윤이를 깨웠다. 소윤이는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예민하니까. 눈치를 살살 보다가 소윤이 볼에 뽀뽀를 하면서 얘기했다.
"소윤아. 아빠는 새벽에 교회도 갔다 왔는데"
"으아아아아아앙. 나도 가고 싶었는데에에에에에에"
엄청 서럽게 울었다. 소윤이의 감정을 다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출근했다.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그냥 귀여웠다. 나중에 아내가 전화해서 얘기하길 자기도 가고 싶었는데 아빠가 깨우지도 않고, 일어나자마자 놀리듯 말해서 속상했다고 했단다.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오후쯤 아내에게 잘 지내냐고 카톡을 보내봤다.
[아니아니]
평균 이하의 상태로 겨우 버티는 듯했다.
[애들은 잘 지내?]
[불쌍하지 뭐. 밖에 나가고 싶다고]
[애들은 퇴근하고 내가 좀 데리고 나갔다 올 게]
잠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유독 피곤했다. 점심 먹고 나서는 (평소에도 잘 졸지만) 어떻게 하기 힘들 정도로 졸렸고. 일 마치고 운전해서 집에 갈 때도 자꾸 졸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서 별 짓을 다 했다. 그래도 오늘은 피곤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 말처럼 애들도 안쓰러웠다. 더 신나게 놀아주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일종의 연기 연습이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시윤이는 아기 의자에 앉아 서럽게 울고 있었다. 굳이 아내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즘 지겹도록 반복되는 밥투정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낮잠도 안 잤고. 자연스럽게 애들 앞에 앉아서 시윤이를 상대했다. 중간에 한두 번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밥을 먹이는데 성공했다. 우리 집에는 식사를 마치지 못하면 간식, 놀이터 등의 쾌락 행위가 금지된다는 원칙이 있다. 시윤이도 힘들겠지만 그 후폭풍을 감내해야 하는 아내와 나도 힘들다. 오늘 같은 날은 어떻게든, 그렇지만 사정사정하면서는 아닌 방법으로 끝까지 밥을 먹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행히 성공했고.
난잡하게 어질러진 거실의 모습이 아내의 상태를 대변했다. 시윤이는 졸려 가지고 밥 먹는 것도 힘들어해서 나가면 잘 놀지 걱정이었다.
"시윤아. 졸리지?"
"네"
"졸려서 나갈 수 있겠어?"
"네"
"그냥 잘까?"
"아니여어"
소윤이 자전거와 킥보드를 가지고 놀이터로 갔다. 내일 처치홈스쿨 개강 예배 때 필요한 화분을 사기 위해 잠시 꽃집도 다녀왔다. 해가 지고 깜깜해졌을 때까지 놀았다. 시윤이는 밥 먹을 때만 졸린가 보다. 엄청 잘 놀았다.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그네만 타고 들어가자"
"네, 아빠"
"네에에"
집에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시켰다. 소윤이부터 차례대로. (내년 이맘때는 세 명이 기다리겠구나. 요즘은 이런 생각이 일상 곳곳에 스민다.) 이때쯤에는 나도 굉장히 지쳐 있었다. 더 꽉 이성의 끈을 붙잡고 의지를 선명히 했다. 이럴 때 실수가 나온다. 별것도 아닌 일에, 그러면 안 되는 일에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거나, 짜증을 낸다거나.
무사히 모든 과정을 마쳤다.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려는데 시윤이가 울며 떼를 썼다.
"시더여어엉. 안 자고 시퍼여어어어어"
다시 한 번 강력한 의지로.
"시윤아. 이리 와 봐. 일단 아빠랑 얘기해 보자"
다행히 내 무릎 위로 와서 앉은 시윤이는 말로 잘 달래졌다. 눕히고 나서는 둘 다 번개같이 잠들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죽어서 난장판인 거실을 남긴다. 마지막 의지의 발현이기를 소망하며 난잡한 거실을 조금씩 치웠다. 설거지도 하고. 백제에 의자왕이 있었다면 삼송에는 의지왕이 있지.
따로 저녁을 먹지도 않았는데 밥 생각이 하나도 안 났다. 아이들을 위해 너무 열연을 펼쳤는지 그냥 엄청 몸에 안 좋은 쾌락, 탐욕적인 뭔가가 먹고 싶었다. 막 기름기 자글자글한 삼겹살이나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단 초콜렛이나 더럽게 맵고 매운 떡볶이나.
상상의 나래를 접고 현실로 돌아왔다. 제대로 녹지 않으면 치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극강의 텁텁함을 선사하는 것이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선식을 타 먹었다. 너무 아삭하고 상큼해서 뇌가 마비될 것 같은 아오리 사과도 하나 먹고.
그래도 만족스럽다. 오늘의 연기는 아빠로 캐스팅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자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