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08(주일)
어제 일부러 일찍 잤는데도 개운치 않았다. 밤새 잠자리가 불편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이불 푹 덮고 땀을 쭉 빼고 싶었는데 안 됐다. 웬만하면 아침에는 약을 잘 안 먹는데 머리가 좀 아파서 아침부터 타이레놀을 먹었다.
"아빠. 배고파여어"
"시윤이 배고파? 알았어. 아빠가 계란밥 해 줄게"
시윤이는 계란 프라이에 간장, 참기름을 넣어서 비벼주고, 소윤이는 집에 있던 짜장 양념에 비벼줬다. (시윤이는 밥에 뭐 비비는 걸 안 좋아한다) 시윤이는 밥을 하고 계란을 부치는 동안 내 옆에서 와서 침울한 표정으로 배가 고프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막상 앉혀 놓고 먹이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또 힘들다며 난리였다.
"엄마. 힘드여여어어"
열이 나는가 싶어서 이마를 짚어봤지만 멀쩡했다.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떠주는 밥은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그러다가 밥을 중간쯤 먹었을 때부터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시윤아. 이제 괜찮아? 안 힘들어?”
"네에. 갠찮아여"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완전히 원래 상태를 찾았다. 배가 고파서 기력이 없었나 보다. 먹으면서도 기운이 안 날 정도로. 과일도 잔뜩 깎아줬다. 시윤이는 복숭아, 소윤이는 자두를 주로 먹었다. 시윤이는 새콤한 맛을 싫어하고, 소윤이는 좋아한다. 둘 다 공히 싫어하는 건 방울토마토. 그나마 소윤이는 요즘 조금씩 방울토마토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보니 불쑥불쑥 애들한테 짜증을 냈다. 의식하고 안 그러려고 했는데도 몸이 지치니 입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애들한테는 졸리고 힘들어도 짜증 내면 안 된다고 얘기하면서.
교회에 도착해 새싹 꿈나무 예배실로 올라갔는데 시윤이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여기 안 가꺼에여엉"
"왜?"
"구냥"
그때 새싹꿈나무 선생님이 시윤이를 안으셨다.
"엄마아아아아아아"
시윤이는 팔을 뻗으며 애타게 손을 뻗었지만 점점 멀어졌다. 지난 주도 금방 괜찮아졌다고 했으니까 이번 주도 그러겠지 싶었다. 소윤이도 있고.
예배를 마치고 아내가 애들을 데리러 갔다. 난 식당에서 밥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아내와 아이들이 와서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내가 국과 밥을 들고 갔다.
"아빠아아아. 보고 지퍼떠여어어어"
"시윤이. 아빠 보고 싶었어?"
"네에"
"왜?"
"못 봐서여어"
강아지로 비유하자면 시윤이는 아직 아기 강아지의 느낌이 있다. 막 다가와서 살랑거리고 애교 부리고. 소윤이는 그 정도 시기는 지난, 성견의 느낌이랄까. 뭔가 충정이 넘치고 깊은 의리와 신뢰가 있고.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교회 밥이 입에 잘 맞나 보다. 어찌나 잘 먹는지 모르겠다.
"소윤아. 소윤이도 낮잠 자야 돼. 그래야 아빠랑 축구 갈 수 있어"
"왜여?"
"오늘도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니까. 한숨 자야 돼"
"시윤이는여?"
"시윤이는 아마 잘 걸"
축구하러 갈 때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낮잠을 재우지 않으면 돌아올 때 잠들어서 밥도 못 먹이고 씻기지도 못할 테니 꼭 재워야 했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렀다가 집에 가서 쉬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나 먹고 싶은 게 있어"
"뭐?"
"마카롱"
"마카롱? 어디?"
"맑음케이크"
"그래? 지금 갈까?"
"어"
대화동까지 갔다 오는 동안 차에서 재우려고 했다. 시윤이는 정신없이 쫑알대더니 순식간에 잠들었다. 소윤이는 눈을 감고 있기는 했는데 격렬하게 떨리는 눈꺼풀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말해줬다. 낮잠 때문에 한참 실랑이를 했다. 결국 잠들긴 했다. 집에 돌아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애들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 소윤이가 먼저 깨서 나랑 같이 집에 올라갔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재활용 쓰레기도 함께 버리러 갔다. 그러고 나니 시윤이도 깨고.
집에 올라가자마자 아내는 거실에 누워 잠들었다. 난 여러 집안일(설거지, 청소 등)을 했다.
"아빠. 축구하러 언제 가여"
"어, 조금만 이따. 아직 시간이 안 됐어"
난 집안일하느라 쉴 틈이 없었지만 애들은 좀 지루했나 보다. 아내는 축구하러 가는 게 무리 아니냐고 물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아니야. 땀을 좀 흘려야 나을 것 같아"
[소윤, 시윤]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나도 예측할 수 없었다. 정 안 되면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 텐텐, 마카롱, 과자 등을 챙겼다. 비상시를 대비해서.
일단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분이 좋았다. 축구장에 도착해 킥보드와 공을 꺼내줬다. 일단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빠. 아빠는 언제 축구해여?"
"어, 이제 조금 있다가 시작할 거야. 아빠 축구하러 가면 여기 선 넘어오면 절대 안 돼. 그럼 공에 맞을 수도 있어. 알았지?"
"네"
"시윤이도 아빠 축구하러 갔을 때 아빠한테 오면 안 돼. 알았지?"
"왜여어어?"
"위험해서. 아빠 축구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누나랑 잘 놀고 있어"
"네, 아빠"
소윤이보다 한 살 많은 남자아이 두 명도 있었다. 제법 잘 어울렸다. 우려와 희망을 동시에 품고 드디어 난 축구를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축구장이 철로 옆에 주기적으로 지하철과 기차가 다녔는데 그때마다 시윤이가 날 목청껏 불렀다.
"아빠아아아아. 아빠아아아아"
"어어어어. 시윤아아아. 왜에에에에"
"저기이이이. 기짜아아아아아아"
"어어어어. 그러네에에에에”
내가 대답할 때까지 불렀다. 그것만 빼면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방해 없이 축구를 했다. 물론 계속 신경을 써야 하긴 했지만 그 정도도 감지덕지다.
"아빠. 이제 끝나떠여어?"
"아, 이번에는 쉬고 다음 경기에 또 찰 거야"
30분 동안 열심히 놀았다.
"소윤아. 이제 아빠 들어가니까 시윤이랑 잘 놀아. 오빠들하고"
"아빠 텐텐 먹고 싶어여"
"알았어. 갖다 줄 게"
싸 가지고 온 비상식량을 모두 풀었다.
"소윤아. 이거 저기 오빠들하고 같이 나눠 먹어"
"네"
옹기종기 모여서 잘 먹고, 잘 노는 게 보였다. 그러다 이번에는 소윤이가 날 불렀다.
"아빠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왜에에에에. 소윤아아아아아"
"시윤이가아아아 자꾸우우우우 물로오오오오 장난쳐여어어어어어"
"어어어. 치지이이이 말라고오오오 해에에에에에"
"아빠아아아아아"
"어어어어어"
"시윤이가아아아아 계소오오오옥 해여어어어어"
"어어어어. 그냐아아아앙 놔둬어어어어어어"
마지막 경기 뛸 때는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윤아아아아"
"네에에에에"
"시윤이이이 왜에에에 울어어어어"
"아아아. 오빠가아아아아 자동차아아아 장난감으으으을 가져갔어여어어어어"
"알았어어어어어어어"
경기가 끝나고 시윤이한테 갔더니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하소연을 했다.
"아빠아"
"어, 시윤아"
"금데(그런데) 영아가(형아가) 빠방을 가꼬가더 속땅해떠여어어"
"그랬구나. 그래도 울지 말고 형아한테 '형아 나 이거 조금만 더 가지고 놀아도 돼' 이렇게 얘기해야 돼. 그냥 울기만 하면 시윤이가 원하는 걸 아무도 몰라"
세 시간 동안 딱 30분 쉬고 나머지는 모두 뛰었다. 그만큼 애들이 잘 있어줬다는 거다.
"소윤아, 시윤아. 다음에도 또 아빠랑 같이 올 거야?"
"네에"
"네"
애들도 만족스러웠나 보다. 일단 셋째가 나와도 축구를 할 수 있는 길은 마련했다. 다행이다.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 여보세요"
"여보.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 속 많이 안 좋아?"
"어. 계속 누워 있었어"
"그렇구나. 애들 저녁은 어떻게 하지?"
"그러게. 집에 먹을 게 없기는 한데"
"밖에서 먹일까?"
"그래 그럼"
"여보는? 나올 거야?"
"아니 난 그냥 집에 있을 게. 셋이 먹고 와"
"알았어"
통화를 끊을 때쯤 아내의 격렬한 헛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어제에 이어 진짜 구토를 했다. 애들 저녁먹이고 들어갔는데, 아내는 거의 반 죽음 상태로 거실에 누워 있었다. 애들 잘 준비를 마치고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여보. 괜찮겠어?"
"어. 일단"
"나도 얼른 씻을 테니까 또 토할 거 같으면 나랑 바꾸자"
"알았어"
다행히 아내는 잘 자는 듯했다. 아내가 숙제를 하나 줬다. 빨래가 마무리되면 그걸 꺼내서 건조기에 돌려 달라고 했다. 그걸 하려면 건조기에 이미 들어가 있는 다 마른 옷들을 꺼내야 했다. 꺼내 놓고 보니 거실에 늘어놓을 수가 없어서, 또 일일이 개야 했다. 양이 적지 않았다. 건조기를 돌리려면 물통을 비우고, 먼지망을 꺼내서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빨래가 끝났음을 알리는 알림음이 들렸다. 시윤이 옷 중에 하나는 건조기에 넣지 말고 따로 널라고 했다. 양말도 따로 빼서 널라고 했다. 세탁망에 든 것도 따로 널라고 했다. 아내가 지시한 세부 사항을 모두 지켰다. 내가 입었던 운동복도 직접 빨아서 널고.
한참을 빨래와 씨름했더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의 예상대로 흠뻑 땀을 흘리고 왔더니 몸은 훨씬 개운했다.
아내가 뒤늦게 나왔다. 나오긴 했지만 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었다. 거실에 누워 있던 아내가 다시 격렬한 헛구역질과 함께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녹초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보"
"어. 괜찮아?"
"내가 먹은 것 중에 초록색이 있었나?"
"글쎄. 열무김치? 마카롱? 왜? 초록색이 나왔어?"
"어. 연두색 같은 거"
"그래? 토하면 속은 좀 나아?"
"그렇지도 않아. 엄청 쓰려"
아내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가고 나서 부지런히 인터넷을 뒤졌다. [입덧 초록색 구토], [입덧 구토 초록색 위액], [구토 초록색]. 여러 정보를 취합한 결과, 담즙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구토 증세가 가장 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찾다 보니 아내 같은 임산부가 어찌나 많은지. 아내보다 심한 경우도 엄청 많았다. 아내와 같은 상태로 출산할 때까지 가는 상상하기 힘든 사람도 많았고.
"여보. 그거 담즙이래 담즙"
"아, 그래?"
"응. 그 정도 되면 토하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토해도 안 아픈 음식을 찾는다더라"
"맞아. 나도 여기가 엄청 쓰려"
"여보도 여보만의 음식을 찾으면 좋을 텐데. 일단은 저거 아몬드 브리즈라도 조금씩 마셔. 너무 안 먹는 거보다는 그게 나을 거 같아"
"그래야겠다"
롬이야, 너 만만치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