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10(화)
연휴가 시작됐다는 생각에 늦은 시간까지 안 잤다.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아주 늦게 자리에 누웠는데 소윤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빠"
"어. 소윤아. 왜?"
"바지에 오줌 쌌어여"
"아, 그랬어? 알았어. 나가자"
강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소윤이의 엉덩이를 더듬어봤다. 축축했다. 조금이 아니었다. 정밀한 진단이 필요했다. 소윤이가 누웠던 자리를 짚어봤다. 베개, 덮었던 이불, 깔았던 패드, 맨 아래 깔았던 두꺼운 매트까지 싹 다 젖었다. 그 새벽에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일단 거실에 꺼내서 이불 산을 쌓았다. 소윤이 옷도 티셔츠까지 홀랑 다 젖어서 싹 다 갈아입혔다.
오줌에 오염된 이불을 치우고 나니 바닥에 남은 게 없었다. 얇디얇은 홑이불 한 장 정도 남았다.
"소윤아. 일단 엄마 옆에 누워서 자"
시윤이도 깼는데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시윤이도 엄마 옆에 가서 누워"
셋이 반듯하게 누워서 자면 모를까 무질서하게 흐트러지는 잠자리의 특성상, 셋이 자기에는 자리가 부족하다. 그래도 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나만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시 후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시윤이가 매트리스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다시 올라갔다. 그래, 인생은 그렇게 사는 거야. 시윤아.
"여보. 소윤이 새벽에 바지에 오줌 쌌어"
"진짜? 많이?"
"어. 저기 봐봐"
"다 젖었네"
"어. 그냥 쭉 쌌나 봐. 멈춤 없이"
거대한 이불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대로 뒀다. 대신 애들하고 방을 뒹굴며 아침 시간을 보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회사 안 가고 이렇게 있으니까 좋지?"
"네. 전 아빠가 계속 계속 회사에 안 갔으면 좋겠어여"
나는 오늘부터 휴무고,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 아침 준비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스테인리스 팬을 꺼내 데워서 계란, 견과류, 불고기를 넣고 밥을 볶아줬다. 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나 좀 베테랑스러웠다. 스테인리스 팬에 전혀 눌어붙지도 않고. 애 셋 되면 주부 3단쯤 되려나.
아내는 부지런히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난 설거지와 재활용 쓰레기 정리를 놓지 못했다. 외출 시간이 임박했는데 집안일을 붙잡고 있는 아내를 보며 못마땅해 하던 과거의 나를 반성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집안일의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줬다.
"아빠. 오늘 아빠 쉬는 첫날인데 아빠랑 같이 못 보내니까 너무 아쉬워여"
"그래? 그래도 이제 아빠 계속 연휴니까 같이 보내면 되지"
전에 일하던 직장의 동기 형에게 연락을 해봤다. 점심에 시간이 된다고 해서 함께 밥을 먹었다. 홍대에서 만나 밥을 먹고 헤어진 후 잠깐 서점에 들렀다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안 더웠으면 걸어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그랬을 텐데, 생각보다 너무 덥고 습했다.
처치홈스쿨이 끝나기 30분 전쯤에 다시 교회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날 보더니 격려하게 반가움을 표했다. 수업과 마무리 예배에 방해가 될 정도로.
"소윤아. 얼른 앞에 보고 앉아. 안 그러면 아빠 다시 간다?"
"시윤이도. 얼른 앞에 가서 앉아. 아빠 다시 나간다?"
소윤이는 낮잠을 안 잤다고 했다. 당연히 잘 걸로 예상하고 끝나면 놀이터라도 데리고 가서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낮잠도 안 잤을뿐더러 비도 세차게 내렸다.
"아빠. 우리 이제 어디 가여?"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아아아아아. 싫어여어어어어"
"뭘 싫어. 소윤이 낮잠도 안 잤잖아. 너무 피곤해서 안 돼"
"그래도여어어어어"
한 10여 분을 집요하게 어디 갈 거냐고 물어보더니 결국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
"아빠. 그럼 집에 가서 숨바꼭질도 하고 연주 놀이도 하고 놀자여?"
어젯밤에 좀 괜찮아서 나아졌나 싶었던 아내는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이제 뭐가 원래 상태인지 헷갈릴 정도네.) 처치홈스쿨이 있는 날에는 허리 통증도 호소한다. 집에 가자마자 아내는 눕고 내가 저녁을 준비했다. 반찬이 마땅히 없어서 냉동 만두를 찌고, 야채 소시지(?)를 잘라서 구워줬다. 모두 자연드림에서 산 거라 죄책감(제대로 된 반찬을 주지 못하는)이 좀 덜했다.
아내도 같은 반찬이었는데 거기에 카레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카레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 그랬으면 엄청 성가셨을 거다. 아내는 밥 먹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 누웠다. 허리가 아파서 누운 거지만 눕자마자 잠들었다. 나도 애들 밥 먹는 동안 소파에 앉아서 좀 쉬었는데 눈이 절로 감겼다.
"아빠. 아빠. 아빠. 자지 마여"
"자는 거 아니야. 생각하는 거야"
"무슨 생각이여?"
"우리 소윤이, 시윤이는 왜 이렇게 예쁠까 하는 생각"
"에에?"
사실 잤지만.
오늘은 간단히 씻겼다. 어차피 내일 (내)엄마 집에 갈 거니까, 아쉬우면 거기서 씻겨도 된다.
"자, 그럼 지금부터 12에 갈 때까지 아빠랑 놀자"
소윤이는 [연주놀이]를 하자고 했다. 별 건 아니고 소윤이는 장난감 피아노, 시윤이는 장난감 기타, 나는 드럼(그냥 손바닥으로 어디든 치라고 했다)을 맡아서 연주하는(척하는) 놀이다. 소윤이의 디렉팅에 하나하나 다 맞춰줬다. 노래도 엄청 열심히 부르고. 역시 아빠가 놀아주는 애들보다는 아빠랑 노는 애들이 행복할 거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간 뒤,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한참이나 멍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난장판인 거실을 치우고 설거지도 했다. 새벽에 바지에 오줌 싼 소윤이 옷을 갈아입히면서 '시윤이가 배변 훈련 시작하면 이 짓 많이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전에 시윤이 기저귀 갈아주면서 '너 기저귀 떼도 롬이가 나타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들 장난감 치우고 설거지하면서는 '그래도 지금이 편하겠지. 내년 이맘때는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성실하게, 오랫동안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