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06(주일)
소윤이는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방으로 가더니 꼬깔콘을 퍼먹었다고 했다. 모두 자고 있는 고요한 새벽에 먹는 과자의 맛을 벌써 알아버리다니. 할머니를 깨우지도 않고 과자부터 찾아서 먹었다는 게 참 소윤이스럽다.
신림동에서의 주일 아침에는 언제나 그랬듯 아침을 든든히 먹고 교회로 출발했다. 간만에 교회 주차장에 자리가 있어서 차를 대고 아내랑 같이 애들을 새싹꿈나무 예배에 데려다줬다. 신발을 벗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예배실로 들어갔다. 둘 다.
예배 후에는 아내가 애들을 데리러 가고 난 식당에 가서 자리를 맡고 줄을 섰다. 곧 아내와 아이들이 들어왔다. 시윤이는 앉자마자 이유 없이 짜증을 내며 울었다. 물론 자기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자기는 엄마 옆에 앉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그건 시윤이의 주장이고 내가 보기에는 그냥 뭔가 짜증스러운 기분이 가득한데 걸리는 대로 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때가 중요하다. 육아의 묘(?)를 잘 발휘해야 더 나아가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내 쪽이든 애들 쪽이든 선을 넘어버리면 도리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차근차근 노력하면 좋은 결과(모두 웃음을 찾는)를 얻는 게 가능하다. 무조건적인 수용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강압도 아니고 적당히 잘 섞으면 되는데 그게 말이 쉽지 뭐. 다행히 오늘은 시윤이와 궁합이 좋았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밥 먹고 카페에 가면서 아내한테 슬쩍 물어봤다.
"이따 여보가 나랑 애들 축구장에 데려다 주고 차 쓸래? 끝날 시간에 맞춰서 다시 데리러 오고"
"아, 그럴까?"
"응.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 여보도 어디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뭐 혼자 어디를 가겠냐마는 그래도 집에 있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가든 안 가든 일단 기동력을 확보해 놓는 건 중요하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데려다주고 난 목장 모임을 하러 다시 교회로 갔다.
"소윤아. 낮잠 잘 자"
"네"
소윤이는 나와 함께 축구장에 가는 걸 생각보다 좋아한다. 덕분에 낮잠도 의지를 발휘해서 잘 자고 있다. 오늘도 소윤이는 순순히(?) 자고 일어났다. 시윤이도, 아내도 다 한숨 자고 일어났다.
"가자"
아내는 나와 애들을 축구장에 내려주면서 잠깐 내려서 같이 있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좋은 데다가 오늘 축구하는 곳이 바람 쐬기 좋은 공원이라 쭉 있으라고 할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내 혼자면 모를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있는 이상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니까. 엄마가 없으면 몰라도 있는데 가만히 둘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10여 분 앉아 있는 동안에도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엄청 성가시게 굴었다.
"여보. 나 이제 얼른 갈래"
더 붙잡히기 전에 빨리 탈출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내는 가고 난 축구를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언니(누나), 오빠(형)와 잘 놀았다. 신경 쓸 일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축구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소윤이와 시윤이를 살피긴 했다. 신경 쓸 일이 없었다는 건 뛰다 말고 나갈 정도의 일은 없었다는 거다. 자전거도 탔다가 킥보드도 탔다가 다른 언니(누나), 오빠(형)들이랑 뛰기도 했다가. 시윤이가 넘어져서 울면 소윤이가 가서 안아주기도 하고.
마지막 경기를 뛰려고 하는데 소윤이가 붙잡았다.
"아빠아. 뛰지 말고 나랑 놀아여"
"아빠 이제 마지막인데. 딱 한 번만 더 뛰고 오면 안 될까?"
"아아, 그래도 안 돼여. 나랑 놀아여"
"딱 20분인데?"
"나랑도 좀 놀아야져"
"그래 알았어"
마지막 30분은 소윤이, 시윤이와 놀았다. 특별하게 뭘 한 건 아니지만 이럴 때는 아빠가 옆에 있기만 해도 같이 놀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도 소윤이, 시윤이에게 고마웠다. 벌써 오늘만 해도 바람이 한결 더 차가워져서 겉옷을 입혔다. 이제 같이 나올 날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이렇게 말해 놓고 한 겨울에도 패딩 입혀서 데리고 나올지도 모른다.) 나의 사심을 채우기 위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잘 놀고 만족스러워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우리 아빠는 매주 우리를 위해 우리를 데리고 공원에 놀라 나간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내도 끝날 시간에 맞춰서 다시 등장했다.
"어디 갔다 왔어?"
"스타필드"
"혼자?"
"응"
"뭐했어?"
"그냥 뭐 돌아다녔지"
집에 오면서 저녁도 먹었다. 냉면과 청국장, 만두를 먹었다. 요즘 소윤이의 식사 기세가 좋다. 태도는 조금씩 기복이 있는데 먹는 양이 꽤 준수하다. 오늘도 밥과 고기(냉면에 같이 나왔다.), 만두, 냉면을 차례대로 먹었는데, 그 양이 제법 많았다. 거기에 어찌나 맛깔나게 먹는지.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빠. 오늘 축구장에 간 거 너무 좋았어여"
"그랬어? 왜?"
"그냥여. 날씨도 좋고"
"언니, 오빠들이랑 뭐 했어?"
"그냥 같이 줄넘기도 하고 킥보드도 타고"
"아빠. 나두 좋았떠여어"
"시윤이도 재밌었어? 또 갈 거야?"
"네에"
정말 다행이다. 가봤는데 지루하다고 안 간다고 그러면 나의 축구 인생이 험난했을 텐데.
"여보. 오늘은 샤워 안 시켜도 되겠지?"
아내와 내가 내세운 이유는 이러했다. [어제 샤워를 했고, 오늘은 땀을 별로 흘리지 않았다.
"그래. 내일 해"
간단히 씻겨서 재웠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아빠는 오늘 소윤이, 시윤이랑 같이 놀아서 행복했어"
"아빠. 저두여"
"아빠. 나두여어"
소윤아, 시윤아. 아빠의 축구 욕망을 채우는 데 일조하면서 너희들도 즐거워 해주니 진심으로 고맙다. 너희 때문에 아빠가 산다. (엄마도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