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3(주일)
몸이 심상치 않았다. 엄청 찌뿌둥하고 기운이 없고, 뒷목부터 어깨까지 엄청 뻐근하고, 으슬으슬 춥기도 했고. 어제 장거리 운전의 후유증인 듯도 했고 밤에 윗옷을 벗고 자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몸이 별로였다. 얼마나 별로였냐면 아침에 커피 생각이 안 나고 펄펄 끓는 차 한 잔이 생각날 정도였다. 어제 두통을 호소하던 아내와 증상이 비슷했다. 어쩌면 감기 바이러스가 우리 집을 거쳐 갔는지도 모르겠다.
"여보. 애들만 멀쩡하네"
"그러게"
눈을 뜨자마자 시윤이 엉덩이를 닦아줬다. 언제 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데 똥을 닦아야 하는 그 기분이란.
아침을 차려주고 소파에 앉아 허브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축구 가기 전에 좀 나아져야 되는데'
아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딱 얘기를 꺼냈다.
"여보. 오늘 축구 갈 수 있겠어?"
"어? 봐야지. 이따 상태 봐서"
일단 샤워하러 들어가서 한참 동안 뜨거운 물로 몸을 지졌다. 바쁜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마치 국가대표 경기를 앞둔 선수처럼 신중하게 몸 상태를 조절했다. 역시 인간은 의지의 동물이던가. 샤워했더니 조금 나아진 듯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문을 열었는데 아내가 비보를 전했다.
"여보. 시윤이 또 똥 쌌어"
"하아. 그래. 알았어"
샤워로 회복됐던 몸이 다시 악하되는 느낌이었다. 직전 똥의 향기가 아직도 내 왼손의 손금 사이사이에 머물고 있었는데, 또 똥이라니.
'도대체 왜 이렇게 자주 싸는 거야. 한 방에 몰아서 좀 싸지'
라는 불평의 마음이 들 때마다 시윤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무려 6주간 변을 못 봐서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아 놓고 혹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가슴 졸였던 그때를. 6주 만에 만난 똥이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웠던지. 이렇게 멀쩡히 퍼지르는 게 감사한 거라고 되뇌었다.
"아빠. 괜찮아여? 이따 축구 갈 수 있겠어여?"
"그러게. 이따 봐야지"
집에서 나가기 전에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그 덕분에 예배 시간에 엄청 졸았다. 평소에도 자주 졸지만 오늘은 더 격렬하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하필 또 앞자리로 안내를 해주시는 바람에.
"여보. 너무 창피하다"
예배를 드린 뒤 아내가 애들을 데리러 갔다. 난 식당으로 가서 기다렸다. 점심은 미역국이었다. 몸이 뜨끈한 국물을 원하고 있었다. 애들 밥과 국은 대충 식혀주고 일단 내 속부터 채웠다.
"소윤아, 시윤아. 부지런히 먹어"
솔선수범하기 위해 '부지런히' 먹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줬다. (부지런 이라 쓰고 게걸스럽게 라고 읽어도 무방.) 놀랍게도 한결 몸이 더 나아졌다.
"여보. 몸은 어때?"
"어. 나아지고 있어"
뜨거운 게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단 걸 원했다. 몸이. 카페에 들러서 쿠앤크프라푸치노를 시켰다.
"아빠. 그건 뭐에여?"
눈치 빠른 소윤이가 대번에 알아차리고 슥 기술을 걸었다.
"아. 이거 커피"
"아빠. 그게 커피라구여?"
"어. 커피도 들어갔어"
"커피 안 들어갔잖아여. 나도 먹어 볼래여"
"아니야. 커피 들어간 거야"
"아닌 것 같은데"
소윤이와 시윤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목장 모임에 가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낮잠을 자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잠깐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잠이 쏟아졌다.
'이따 축구하러 가려면 관리 잘해야 하는데. 목장 모임 못 간다고 하고 나도 한숨 잘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자리에 누운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아빠 목장 모임 갔다 와서 같이 축구장 가자"
다행히 목장 모임 하면서 더 안 좋아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좀 나아졌다.
아내가 오늘은 축구장이 집 근처에 있는 곳이니 소윤이를 안 재울 거라고 했는데, 막상 눕혔더니 금방 잠들었다고 했다. 집에 갔더니 둘 다 그때 막 잠에서 깨서 그런지 시무룩했다.
"소윤이 기분 안 좋아?"
"아니여"
"막 잠에서 깨서 그래?"
"네"
"시윤이는?"
"아아아아아아아아"
시윤이가 다짜고짜 짜증이었다. 아마 자고 일어난 뒤의 짜증이었을 텐데 그걸 그대로 다 밖으로 분출했다.
"시윤아. 그만 징징대. 원하는 게 있으면 말을 하던가"
"아아아아아아앙"
"그만 징징대라고 했어요. 그만하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 지르고 신경질 낼 거면 울지도 마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아빠랑 방에 들어가는 거예요"
"으아"
긴급 처방으로 텐텐을 꺼내들었다. 하나씩 입에 넣어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킥보드를 타고 엘리베이터로 질주했다.
"뭐야? 얘네 지금 텐텐 하나에 이렇게 된 거야?"
오늘도 아내가 우리를 데려다 주고 차를 쓰기로 했다. 축구장에 도착한 뒤로는 둘 다 아주 멀쩡했다. 단 한 번의 짜증이나 울음도 없었다. 다른 집사님 아들하고도 잘 어울려서 놀았다. 다만 시윤이가 중간에 거하게 똥을 쌌다.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닦아주는데 무슨 마법의 항아리도 아니고 이건 뭐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묻어 나오는지. 내가 요령이 없는 건가.
"아빠. 왜 계속 따까여어어"
[계속 묻으니까! 나오니까! 악!!!!!!]
마음으로만 외쳤다.
"우와. 우리 아들 똥 시원하게 잘 쌌네"
육아에 때로는 가식도 필요하다. 하얀 거짓말.
그래도 아빠 축구할 때 경기장으로 난입하지 않고 알아서 잘 노는 게 어디냐. 오줌이든 똥이든 축구만 할 수 있다면 아빠가 뭔들 못하겠니. 시윤아, 마음껏 싸지르렴.
축구 끝날 시간에 맞춰 아내가 다시 데리러 왔다.
"여보는 집에 있었어?"
"응"
"집안일했어?"
"엄청 열심히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쉰 것도 아니고"
"빨래했어?"
"어. 세탁기도 돌리고"
소윤이의 의견을 반영해 [소윤이네](가게 이름)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축구장에서 너무 군것질을 많이 했는지 저녁 먹는 게 영 시원찮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면 내가 피곤해지기 때문에 적당히 모른 척했다. 덕분에 아내와 내가 배 터지게 먹었다.
"여보. 몸은 다 나았나 보네?"
"어. 축구가 약이나 약이야"
축구하기 위해 회복한 건지, 축구를 해서 회복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축구 덕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