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 관리

19.10.12(토)

by 어깨아빠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이었다. 아내는 없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여보. 몇 시에 일어났어?"

"난 5시. 여보 어제 늦게 잤어?"

"어. 좀 늦게. 여보는 어제 일찍 잤어?"

"난 한 9시쯤? 애들 샤워 다 시키고 잤거든"

"고생했네"


처가 친척 모임이 있어서 서천에 가야 했다. 당일치기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을 아주 잘 잤는지 그 이른 새벽에 깨웠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킥보드도 실어서 가려고 집 앞에 뒀던 킥보드 타고 차까지 가랬더니 대낮에 놀이터에 놀러나가는 애들처럼 달렸다.


그렇게 세 시간을 달려서 고작 화성까지 갔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가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가서 다행이었다. 화성 휴게소에서 장인어른, 장모님, 형님(아내 오빠)네 부부를 만나 아침을 먹었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아침이지만 격한 노동(?)을 하고 난 뒤라 그런가 배가 고팠다. 나는 내 취향대로 순대국, 아내는 애들을 고려해 시래기국을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순대국에 든 고기를 엄청 잘 먹었다. 얘네도 배가 고팠는지 알아서 열심히 먹었다. 한동안 밥 먹을 때마다 분노 유발자를 자처하던 시윤이가 요즘은 아주아주 속 시원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휴게소에서 꽤 오래 머물렀다. 1시간 30분 정도. 거기서부터 서천까지는 막히지 않아서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총 다섯 시간의 여정 끝에 서천에 도착했다. 시윤이는 휴게소에서 서천까지 오면서 한 시간을 잤고, 소윤이는 안 잤다. 따로 낮잠 재우기는 힘들 텐데 소윤이가 괜찮을지(여러모로) 걱정이 됐다.


다른 친척분들은 모두 어제 오셨고 우리만 당일치기였다. 앉자마자 먹부림이 시작됐다. 무화과를 시작으로 빵, 약밥 등을 먹다 보니 점심시간이었다. 광어회, 전어회, 홍어회, 새우, 게장, 불고기, 샐러드 외 오만가지 반찬이 즐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밥 먹기 전에 간식을 많이 먹어서 별로 입맛이 없어 보였다.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였다. 소윤이는 아예 아내의 친척 동생 옆에 앉아서 먹었다. 철저한 감시망을 가동하는 나나 아내, 어떻게든 구슬려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시는 장모님의 반경을 벗어났으니 잘 먹었을 리가 없다. 그나마 시윤이는 아내와 내 근처에 앉았지만 외면했다.


대신 아내를 위해 열심히 새우를 깠다. 내가 먹을 거면 그 껍질 까는 게 너무너무 귀찮아서 그냥 통으로 먹을 텐데 아내를 위해, 롬이를 위해 쉬지 않고 껍질을 깠다. 아내가 엄청 잘 먹었다. 키토산 과다 섭취로 토끼가 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정작 나는 한 두어 개 먹었나. 물론 그렇다고 배불리 못 먹었다는 건 아니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어 열심히 젓가락질을 반복했다.


식사가 끝나자 아내는 얘기했다.


"아우. 배가 땡긴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새우 공급이 지나치게 원활했나 싶었다. 아내는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나도 그 옆에 눕고 싶었지만 그건 도리가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러 나가겠다고 했다. 트렁크에서 자전거와 킥보드를 꺼냈다. 배도 부르겠다 노곤하게 피로가 몰려왔지만 따라나섰다. 형님네 부부, 아내의 친척 동생 두 명도 함께 갔다. 이 친척 동생 둘이 엄청난 도움이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들을 좋아해서 아주 잘 따랐다.


최종 목적지는 바닷가였다. 1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시골길의 정취도 느끼고, 시골 마을의 감성도 느끼고, 서서 보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낮은 담벼락의 시골집도 보고, 햇볕이 반사되어서 눈부시게 빛나지만 고요한 바다도 봤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값진 풍경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소윤이, 시윤이만 아니었으면 아마 중간에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경치에 감탄하면서도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바람은 시원했는데 볕이 너무 뜨거웠다. 무엇보다 졸렸다. 이대로 수면 보충 없이 다시 운전대에 앉으면 졸음과의 사투를 벌일 게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쉬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바닷가에 도착해서도 한참(내 체감상) 놀았다. 아내의 친척 동생 두 명이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꽤 긴 여정을 마치고 다시 아내의 고모님 댁으로 돌아갔다.


여러 친척이 모인 자리인데다가 소윤이, 시윤이만한 아이가 없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관심과 집중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시윤이는 시기상 말이나 행동, 그 무엇이든 간에 한창 귀여움을 유발할 때라 더 그랬다. 이제 완연히 아기의 티를 벗은 소윤이하고는 차이가 났다. 내 눈에는 소윤이도 마찬가지로 보이는데.(라고 썼지만 아내가 말하길, 요즘 시윤이를 보는 내 눈에서 하트가 발사된다나 뭐라나)


시윤이를 향한 왜곡된 평가가 어느 정도냐면 어느 고모님 한 분이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옴마. 야가 진짜 순하다잉. 야도 울고 그라냐?"


네? 우냐고요?


"네. 저도 울고 싶을 정도로 울 때도 많아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이런 걸 평판관리라고 하는 거구나.


오후 네시쯤 짐을 챙겨서 일어났다. 막히지 않길 바랐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내려올 때랑 비슷하게 막혔다. 게다가 아내는 새우를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그냥 롬이가 힘들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죽으나 사나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했는데 너무 졸렸다. 운전대를 넘길 수도 없고, 대화 상대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


"아빠. 어린이 찬양 들어도 돼여?"

"아, 소윤아. 지금은 안 될 거 같아. 아빠가 너무 졸려서 노래를 들으면서 불러야 잠이 깰 거 같아"

"아빠. 그럼 어린이 찬양 같이 부르면 되잖아여"

"아, 그게. 어린이 찬양은 별로 신이 안 나서"

"왜여. 나랑 같이 신나게 부르면 되져"

"아니야. 아빠는 어른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거나 얘기를 해야 잠이 깨"

"아빠. 그럼 나랑 같이 얘기하자여"

"아, 소윤이랑 얘기하는 것도 좋기는 한데, 지금은 노래 듣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 미안해. 아빠가 이따 잠 좀 깨면 그때는 어린이 찬양 틀어줄 게"


두통과 배땡김으로 실신하듯 잠든 아내를 옆에 두고 난 졸음과 싸워 이기기 위해 나 홀로 콘서트를 개최했다. 소윤이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소음에 가까웠을 나의 노래를 묵묵히 들어줬다. 덕분에 잠을 떨쳐내고 안전 운전을 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휴식 겸 저녁을 해결했다. 다들 점심을 거하게 먹어서 밥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밥 대신 빵과 핫도그 같은 걸 먹었다. 나도 분명히 배가 불렀는데 엄청 먹었다. 잠깐 또 정신을 잃었나. 다 먹고 차에 타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더부룩하다. 이럴 거면 밥을 먹을 걸 그랬나 봐"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빠를 따라 연신 입에 뭘 넣었다. 휴게소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남은 길에는 정체 구간이 없길 바라며 다시 탔는데 역시 헛된 기대였다. 내내 즐겁게 오던 소윤이와 시윤이도 한계가 왔는지 조금씩 징징거렸다. 생각해 보면 차라리 운전하는 게 낫지 카시트에 결박되어서 몇 시간을 가만히 있는 것도 진짜 힘들긴 할 거다.


"소윤아. 소윤이도 힘든 거 알아. 너무 오래 탔지? 그래도 징징거리지 말고 조금만 참아. 징징거린다고 안 힘든 것도 아니잖아. 조금만 더 가면 돼"


출발한지 다섯 시간 만에 집에 도착했다. 왕복 열 시간의 이동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씻고 방에 들어갔다. 아내는 계속 머리가 아프고 속이 불편하다고 했다. 난 거실에 남았다. 집이 좀 애매했다. 엄청 더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그냥 두고 보기에는 거슬린달까. 설거지도 좀 있었고. 최소한의 조치(?)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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