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꽉 채운 금요일

19.10.11(금)

by 어깨아빠

얘네가 또 꼭두새벽부터 일어났다. 잠결에 본 첫 모습은 매트리스와 화장대 틈 사이(시윤이가 앉아도 꽉 찰 정도로 좁은 공간)에 앉은 시윤이었다. 거기 앉아서 엄지손가락을 빨고 있었나 보다. 잠결에


"시윤아. 손가락"


이라고 얘기했더니 나에게서 멀어진답시고 (그래봐야 방 안) 벽 쪽으로 붙어서 다시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렇게도 맛있니. 롬이가 생기고 나서 내가 주목하는 몇 가지가 있다.


1. 롬이는 과연 콩이(소윤이 태명), 온이(시윤이 태명)처럼 대머리일 것인가?

2. 롬이도 언니, 오빠처럼 [손가락빨러]가 될 것인가?

3. 롬이도 언니, 오빠처럼 보조개 보유자일 것인가?


섬뜩하다. 학창시절에 손톱을 깨물어 뜯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런 것까지 물려준 것 같아서. 유전자의 세계란, 진정 심오하다.


아무튼 둘 다 일찍부터 일어나서 설쳤다. 이런 날의 장점 (그것도 내가 차를 두고 출근하는 날에 한해)도 있다. 두 녀석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다는 것. (나의 커피와 아침 식량을 서로 나에게 건네겠다고 투닥거릴 때는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분간이 안 가기도 하지만.)


처치홈스쿨이 있는 날이니 퇴근할 때나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다.


"여보. 나는 지금 200번 버스 탔어"

"아, 우리는 잠깐 스타필드 가려고"

"아, 그래?"

"이따 대화역에 도착하면 언제쯤 도착하는지 연락 줘요"

"알았어"


삼송역에서 막 내렸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이건 타인(나 아닌 모든 인류)은 잡아내기 힘들지도 모르는 미묘한 느낌이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대략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아내는 빨리 나가고 싶은데, 애들은 협조하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 차에 탔더니 소윤이, 시윤이 모두 뾰루퉁(혹은 심드렁)했다. 이어지는 아내의 분노에 찬 한숨과 한마디.


"하아. 진짜. 내가 다시는 이렇게 오나 봐라"


아마 다시 이렇게 올 거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스타필드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아내의 분노가 담긴 표현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왜? 애들 말 안 들었어?"

"시윤이가. 또 고집부렸지 뭐"


다행히 나(아빠)의 등장으로 소윤이와 시윤이의 그전까지의 기분, 감정이 어느 정도 초기화(?) 되었다.


"아빠. 오늘 저도 아빠랑 교회 가도 돼여?"

"음, 소윤아.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거 같아"

"왜여?"

"우리가 내일 엄청 일찍 서천에 가야 하거든. 그래서 소윤이랑 시윤이 다 일찍 자는 게 좋을 거 같아"


소윤이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집에 도착해 장모님이 싸주셨던 (안 매운) 오징어볶음과 시금치로 저녁상을 차려줬다. 밥이 부족한 게 문제였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주고 나니 아내가 먹을 밥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밥을 하자니 내일은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었다. 아내는 고심 끝에 한살림에서 산 라면을 먹겠다고 했다. 요즘 너무 자극적인 걸 많이 먹어서 속이 안 좋은가 싶은 의심이 드는 찰나에 인스턴트 라면은 썩 개운치 않았지만 딱히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고 부지런히 저녁상을 차려주고 반찬 추가 요청에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갈 게. 잘 자고"


둘 다 낮잠을 푹 잤으니 일찍 잘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내가 나갈 때까지도 씻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내의 할 일이 많았다. 아내가 부디 빠른 퇴근을 하길 바라며 교회로 갔다. 나도 내일의 이른 기상과 장거리 운전을 대비해 평소보다 조금 빨리 돌아왔다.


집은 내가 나갈 때 모습 그대로였다. 누가 포토샵으로 아내와 아이들만 사악 지운 것처럼. 아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다 알 수 있었다.


나도 할 일 빨리 끝내고 집도 치우고 일찍 자려고 했는데, 할 일 늦게 끝내고 집도 제대로 못 치우고 늦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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