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0(목)
아내는 오전에는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 저녁에는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기도 모임은 아이들과 함께, 친구 모임은 홀로 가는 거였다. 기도 모임에 가려면 아내가 차를 써야 했는데 그러면 나의 퇴근이 늦어지고 아내가 저녁 약속에도 늦게 되는 문제가 이어졌다. 아내는 기도 모임이 끝나고 파주로 와서 처가댁에 머물다가 퇴근 시간에 맞춰 날 데리러 왔다. 사실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친정에 간 김에 반찬도 얻어오고.
“소윤이, 시윤이 안녕”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울상이었다. 조금 전까지 울었는지 눈물 자국에 선명했다.
“얘네 왜 이래?”
“아, 몰라.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시윤이는 문을 자기가 안 닫았다고 그랬나 뭐라나. 소윤이의 이유는 기억도 안 난다. 아무튼 시덥잖은 이유였다. 소윤이는 내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물었다.
“아빠. 놀이터에서 조금 놀아도 돼여?”
“그럴까?”
한 방에 국면이 전환됐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아빠. 놀이터 먼저 갈 거에여? 밥 먼저 먹을 거에여?”
“글쎄”
“아빠 놀이터 먼저 가자여”
“글쎄. 아빠가 고민해 볼게”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가서 밥을 차려먹든, 밥을 먼저 먹고 나와서 놀든 번거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나마 덜 반거로우려면 역시 외식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머리로만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불을 지폈다.
“여보. 들어갈 때 햄버거 사 갈래?”
“갑자기 왜?”
“그냥. 여보 햄버거 좋아하잖아”
“그냥 밖에서 밥 먹어야겠다”
“아, 그럴래?”
“응”
“소윤아. 우리 밖에서 주먹밥 먹자”
“소윤이네(가게 이름)서여?”
“응”
“좋다여”
“아, 아니다. 꼬마김밥 먹자”
“좋아여”
햄버거를 먹기 위한 동선이 그게 더 좋았다. 김밥 가게와 햄버거 가게는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아내는 중간에 우리를 내려주고 잠시 집에 들렀다. 장모님이 싸 주신 반찬도 넣어 놓고 애들 옷이랑 스카프도 챙길 겸.
“엄마. 잘 갔다와여”
“엄마. 잘 가여어”
롬이를 가진 뒤로는 따로 자유시간을 가지지 않았으니 꽤 오랜만의 나홀로 외출이었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평일 퇴근 후의 나홀로였고.
꼬마김밥 한 팩을 사서 햄버거 가게로 갔다.
“아빠. 아빠는 왜 이거 먹어여?”
“그냥. 아빠는 햄버거 좋아해”
“아빠 감자튀김도 샀어여?”
“응. 소윤이랑 시윤이도 먹어”
꼬마김밥 한 팩은 두 녀석의 배를 충분히 채우기에 좀 부족한 듯도 했지만 홀로 둘을 볼 때는 아무래도 효율을 우선하게 된다.(대충대충 한다는 걸 좋게 포장하는 중) 아직 해야 할 일(저녁 식사, 놀이터, 씻기, 재우기)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왔을 때 이미 어둑어둑했다.
“소윤아. 놀이터에서 그렇게 오래는 못 놀아. 알지?”
“한 20분?”
“그래”
30분 정도 놀았다. 어제 쌍쌍바 사건(?)이 좀 미안해서 중간에 마트에 들러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 주려고 했다.
“아빠. 구슬 아이스크림이 없어여”
“어? 그러게?”
소윤이는 대신 다른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했지만 기침도 하고 밤이 되서 쌀쌀하니 다음에 먹자고 했다. 대신 텐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아빠. 뗀뗀. 뗀뗀”
역시 시윤이가 제일 좋아했다. 놀이터에서 실컷(내 기준이지만 애들도 충분히 만족스러워했다) 놀고 집에 들어갔다.
“어? 엄마늠 어디 갔지이?”
시윤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 곳곳을 살폈다.
“아빠. 엄마늠 어디 있떠여엉?”
“엄마? 엄마는 나갔지”
“아니야아앙. 엄마아아아”
“엄마는 이모들 만나러 갔어. 오늘 아빠랑 잘 건데 몰랐어?”
“엄마아아아아아아아”
정말 슬퍼서 우는 거였다. 집에 가면 엄마가 있을 줄 알았나 보다. 품에 안고 토닥거리면서 달래주다가 텐텐으로 관심을 끌었다.
“시윤아. 우리 이제 텐텐 먹을까?”
“뗀뗀 주데여어어”
텐텐 한 알에 엄마는 잊혀졌다.
텐텐 하나 먹을 때도 소윤이와 시윤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시윤이는 게 눈 감추듯 씹어먹고, 소윤이는 아직도 먹나 싶을 때까지 쪽쪽 녹여 먹는다.
“소윤아. 얼른 좀 먹어. 씻게”
“씹어 먹으면 이빨에 안 좋잖아여”
“먹으면 다 똑같아. 씹어 먹든 빨아 먹든”
시윤이가 30분도 채 안 자긴 했지만 늦은 낮잠을 잤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금방 잠들었다.
친구들과 만나 저녁을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긴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활동력이 있었다. 요즘 주로 삽으로 땅을 파서 거기에 들어가며 전화하는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땅 속에 있다가 막 뚫고 나와서 바로 전화한 느낌이랄까. 예전에 자유시간 누릴 때처럼 늦게 들어오지는 못했다. 아내는 롬이를 얻은 대신 체력을 잃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통화를 하던 아내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다.
체력은 잃었지만 수다력은 회복했다.
역시 예전(입덧 심화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고 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