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04(수)
시윤이는 어제랑 비슷했다. 열은 있는데 말하고 행동하는 건 아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침은 제법 했다. 온 집안에 기침 소리가 가득했다. 나 빼고 모두 기침을 달고 있었다. 아내가 아침부터 뭔가 기분이 안 좋은 듯 보이길래 혹시 어디가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냐고 물었는데 기침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아침이 꽤 늦었다. 밥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윤이 재울 시간이었다. 슬쩍 얘기를 꺼냈다.
"시윤아. 이제 들어가서 낮잠 자자?"
"누구양여?"
"아빠랑"
"엄마랑 자고 지퍼여"
"오늘은 아빠랑 자. 엄마가 이따 밤에 재워주시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앙"
격렬한 거부 반응이긴 했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대부분 그렇다. 잘 설득(때로는 압박)하면 금방 뜻을 접고 수긍한다. 시윤이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시윤아. 어디서 잘래? 침대? 바닥?"
"쨈대"
"아빠는 시윤이 옆에 누울까 바닥에 누울까?"
"아빠늠 바닥에"
"알았어"
시윤이는 매트리스에 눕히고 난 바닥에 누웠다. 잠드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나도 까딱하면 잠이 들 뻔했다. 겨우 정신일 차리고 나왔더니 아내는 소윤이와 함께 농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농협에서 무료로 가계부를 나눠주는데 그것도 받을 겸, 바람도 쐴 겸.
소윤이랑 시윤이는 자꾸 물어본다.
"아빠. 오늘은 어디 가여?"
"그냥 집에 있지"
"왜여? 왜 어디 안가여?"
"맨날 어디를 가야 하는 건 아니지. 그러기도 힘들고"
아내와 소윤이가 돌아오고 나서는 내가 잠깐 나갔다 왔다.
"아빠만 나가여?"
"어. 아빠 잠깐 갔다 올게"
"왜 아빠만 가여?"
"아빠 볼 일이 있으니까. 얼른 갔다 올게"
"아빠 가지마여어어"
차에 탄지 얼마 안 돼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
"어, 시윤아. 일어났어?"
"아빠 어디에여어?"
"아빠 어디 좀 가고 있어"
"어디여어?"
"그냥 누구 좀 만나러"
"누구여?"
"아빠 아는 친구"
짧은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풍경과 분위기가 아침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아내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런 아내 옆에 붙어서 옥수수를 먹고 있었다.
"아빠. 우리 오쭈주 먹구 이떠여엉"
"시윤아. 안 아파?"
"네"
"안 힘들어? 하나도?"
"네. 이제 안 아파여엉"
열은 여전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보통은 열이 나면 축축 처지거나, 처지지 않더라도 조금 기운이 있는 정도였지 이렇게 열이 나면서도 멀쩡한 적은 내 기억에는 없다. 이건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니고.
아내가 통화를 마치고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소윤이는 잤어"
"엥? 언제?"
"아니 아까 방에 들어가서 누워 있었는데 막 잠들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깨웠는데 못 일어나더라? 그래서 그냥 뒀지"
"혼자 누워 있다가 잠든 거야?"
"어. 나가자고 했더니 조금 더 누워있겠다고 하더니"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그 늦은 오후에 재우지도 않았는데 혼자 잠든 걸 보면. 더불어 아내는 매우 억울해 했다.
"와, 얘네 진짜"
"왜?"
"아빠 있을 때만 이렇게 좋고"
"무슨 말이야?"
"여보 나가고 나서 거의 바로 시윤이 깼잖아. 얘도 잠이 덜 깼고 소윤이도 아마 피곤했겠지? 그래서 엄청 예민했거든. 둘이 뭐만 하면 싸우고 울고"
"그랬어?"
"이렇게 좋아진 게 얼마 안 됐어. 여보 들어와서 그런 거야"
아빠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엄마만큼 입체적으로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 남편들.
아내 친구가 사골국을 끓였다면서 갖다 줘서 그걸 저녁으로 먹었다. 점심은 건너뛰었다고 했다. 밥을 세 명(아내, 소윤, 시윤)이 나눠 먹기에는 부족해서 소면을 삶고 만두를 넣어서 끓였다. 시윤이는 만두를 안 먹는다고 했고, 정말 안 먹었다. 애들은 밥을 말아서 함께 주고 아내는 밥 없이 만두와 소면만 넣어서 줬다.
날이 쌀쌀해지고 나서는 애들 샤워 주기가 매우 길어졌다. 샤워를 이렇게 오래 안 해도 괜찮은지 정말 궁금하다. 오히려 너무 자주 씻기면 건조해서 안 좋다고도 하던데, 우리 애들은 좀 건조한 편이다. '너무 자주'의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몸은 그렇다 쳐도 머리를 오랫동안 안 감긴 게 생각나서 간만에 샤워를 시켰다. 시윤이는 열이 나니까 다음으로 미루고 소윤이만.
이 모든 과정을 굉장히 서둘렀다. 수요일이니까.
소윤이의 늦은 낮잠이 아내의 조기 퇴근의 방해 요소였지만 일단 나는 내 도리를 다해야 했다. 나가기 전에 자기 전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다. 아내는 일단 들어가서 재워보겠다고 했다.
"여보. 그럼 오늘도 잘 안 자면 그냥 나와"
일부러 소윤이와 시윤이가 듣도록 아내에게 얘기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눕는 것까지 보고 집에서 나왔다.
축구 끝나고 집에 갔을 때는 아내가 깨어 있었다. 거의 잠들 뻔하다가 시윤이가 깨서 징징거리는 바람에 겨우 잠을 떨쳐내고 나왔다고 했다. 아내랑 재밌게 수다를 떨고 있는데 소윤이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아빠. 눈부셔여"
급히 거실 불을 끄자 소윤이는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봤다.
"소윤아. 엄마랑 아빠는 조금 이따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고 있어. 알았지?"
"네"
소윤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나와 아내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는 소윤이를 다시 한번 안아주면서
"어이구. 우리 딸 기특하네"
라고 얘기했는데 소윤이의 얼굴이 먼저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기 전, 소리가 나기 전에 특유의 흘러내리는 얼굴을 만들며 울음 시동을 걸더니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소윤이 왜 울어"
"엄마랑 너무 같이 들어가고 싶어서여어. 엉엉엉엉"
다 큰 거 같아도 울 때가 제일 아기 같다.
처음 잠들 때는 엄마나 아빠가 재워주지만 자다 깨서 나왔을 때는 엄마, 아빠가 함께 들어가지 않는 게 사전 합의된 사항이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는 권고에도 뜻을 굽히지 않길래 자꾸 그러면 처음 잘 때도 엄마가 재워주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서러움과 울음을 안고.
요즘은 들어가서 옆에 눕는 것도 아니고 매트리스에 누워서 떨어져 자는데,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몇 발걸음 사이의 거실에 있는 건데 그게 그렇게 슬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