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8(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다. 오늘도 아내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여보. 오늘도 나간 김에 시간 좀 보내다 올게"
"알았어"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오늘은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며 인사를 건넸다.
일을 보고 나니 점심때쯤 되었다. 마침 근처에 친구네 집이 있어서 연락을 했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친구였다. 만나서 같이 점심 먹고 차나 한잔할까 했다. 일단 친구네 집으로 갔다. 결혼을 한 친구였기 때문에 제수씨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렇게 막 방문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친구는 상관이 없다고 했다.
점심도 친구네서 먹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마침 밥도 해놨고 반찬도 있다길래 그렇게 됐다. 뭔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평일 대낮에 결혼한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다니. 커피도 집에서 마셨다.
"위닝 한판 하러 갈까?"
그 시간에 문을 여는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았다. 게다가 우리 말고도 게임하러 오는 사람이 꽤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고 혼자 와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임을 끝내고 다시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나니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가고 난 뒤였다.
친구와 만나기 전에 아내랑 통화하고 카톡 할 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전해줬고 아내가 좀 훌쩍였던 거 같다. 도무지 엄마가 왜 우는지 이유를 알 턱이 없는 소윤이지만 아내에게 다가와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내를 토닥여줬다고 했다. 원래는 혼자서 시간 좀 보내다 가려고 했는데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곧장 집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도 사고 싶어서 아내가 좋아하는(더불어 애들도 좋아하는) 동네 과자점에 들렀다. 정기 휴무였다. 다른 곳으로 갔다. 빵이며 쿠키며 다 나가고 없었다. 쿠키슈 하나만 남아 있었다. 아내를 위한 얼음을 넣지 않은 아이스 라떼와 쿠키슈 하나를 샀다. 집 앞 빵집에 가서 치즈 치아바타와 뱅오쇼콜라를 추가로 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둘 다 아빠를 반겼다. 아니면 양손 가득 들고 있는 '내용물이 빵으로 추측되는' 봉지를 반긴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든 상관없었다.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 큰 힘이자 위로라는 게 새삼 각별하게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데 소윤이가 골라온 책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책이었다. 읽다가 자꾸 울컥했다. 한 방울이라도 눈물이 흐르면 발사된 시윤이의 오줌처럼 멈추지 못할 거 같아서 간신히 참아내고 끝까지 읽었다. 오늘따라 내 마음이 좀 말랑해져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아내가 얘기했다.
"난 저번에 애들한테 그거 읽어줄 때 울컥했잖아"
약 3개월 정도 일을 쉬면서(자의는 아니었다) 아내, 아이들과 참 시간을 많이 보냈다. 조만간 변화가 찾아올 거 같다. 아내는 기쁘면서도 슬펐다. 아무리 신앙인이라도 신의 가호만을 바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남편의 무노동, 무수입 상황이 끝나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었다. 대신 3개월 동안 육아의 피로와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나마 멀어지고, 옅어지고, 무뎌질 수 있었는데 이제 다시 옛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건 아쉬울 법했다.
"여보. 나 이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또 적응할 거야. 걱정하지 마"
"그렇긴 하겠지. 그래도 두렵다"
"미리 예행연습을 해야 하나"
남은 한 주를 알차게 보내야 할 텐데 코로나가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