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7(월)
지난밤에 아주 조금은 눈이 쌓였을 정도로 눈이 온 건 물론이고 아침까지도 눈발이 흩날렸다.
"아빠아. 눈이가 오고 있떠여어엉"
기온이 굉장히 낮았지만 눈발이 가늘어서 그런지 수북하게 쌓이지는 않았다. 베란다 창으로 내려다보니 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은 군데군데 쌓인 곳이 있기는 했다. 기온도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져서 간만에 겨울다운 날씨였다. 언제 볕이 나서 녹을지 모르니 그전에 나가서 눈이라도 밟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여?"
"그러게. 눈이 녹지 않으면 만들 수 있기는 할 텐데 녹을지 안 녹을지 모르겠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론이고 나도 초조했다. 요즘 날씨를 보면 이런 기회가 다시없을지도 몰랐다. 얼른 먹이고, 치운 다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니 분주해졌다. 그때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남옥 언니한테 연락 왔어. 하람이랑 같이 만나서 놀자고"
"아, 그래? 잘 됐네"
여러모로 잘 된 일이었다. 애들에게도 나에게도. (아내에게는 아닐지도 모르고) 아내와 아이들은 바쁘게 나갈 준비를 했다. 날씨가 꽤 많이 추웠다. 거기에 눈도 만지며 놀아야 하니 평소보다 더 따뜻하고 두껍게 입혔다. 옷 입히다가 벌써 체력의 반을 쓰는 느낌이다.
"여보. 밖에서 놀다가 따뜻한 차도 한잔하고 와"
"안 그래도 그러려고"
아내와 아이들이 나가고 난 뒤 설거지만 하고 나도 나갈 채비를 했다. 물론 아내와 아이들에게 갈 생각은 아니었다. 잠깐 카페에 가려고 했다. 아내는 나가는 길에 들러서 애들 노는 걸 보고 가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는지 내가 나가기도 전에 눈사람 만들기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응. 여보. 어디야?"
"우리? 카페"
"아, 그래? 어디로 갔어?"
"투썸"
아내랑 아이들만 있으면 모를까 하람이네도 함께 있으니 같은 카페는 피해야 했다. 난 스타벅스로 갔다.
한 두어 시간이 지나고 아내에게 곧 귀가할 예정이라고 카톡이 왔다. 혹시 집에 가서 하람이랑 더 놀지는 않을 건지 물었는데 안 그래도 그럴까 하다가 505호 사모님이 그냥 집에 가야 할 거 같다고 해서 접었다고 했다. 덕분에 하람이는 매우 울고, 소윤이도 울먹거리고 있다며 상황을 전했다. 아내에게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함께 귀가해도 된다고 얘기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있는 카페로 왔다. 아주 잠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와 집에서 함께하는 육아인에게는 매 끼니 사이의 공백 시간에 다음 끼니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게 중요한 과업이다.
"여보. 저녁에는 뭐 먹이지?"
"하아. 그러게"
"집에 밥은 있나?"
"해야 될걸"
"반찬은?"
"글쎄. 뭐 밑반찬 있지"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듣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면, 맥칸?"
"맥칸? 갑자기?"
"그냥 제안해 본 거야. 결정은 여보가 해"
"그럴까"
저번에 갔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가 엄청 잘 먹기도 했고 그 뒤로 몇 번이나 또 가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다.
"소윤아.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저녁에?"
"음, 치킨?"
"그래, 가자. 맥칸 가자"
소윤이가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치킨을 얘기한 건지 아니면 정말 순수한 욕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치킨으로 결정했다. 다시 아이들 옷을 입혀서 나갔다. 시윤이는 이른 기상, 바깥 활동, 추운 날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무척 졸려 했다. 치킨 집으로 가는 길에 거의 잠들었다. 억지로 깨우긴 했는데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집에서 먹을 걸 괜히 나왔나'
다행히 시윤이는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잠이 좀 깼는지 점점 좋아졌다. 두 마리를 시켰다. 프라이드 한 마리, 닭강정 한 마리. 한 마리는 너무 부족하니 두 마리를 시키긴 했지만, 두 마리는 또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저번에 와서 두 마리를 시켰을 때도 아이들이 많이 먹긴 했지만 아내와 나의 착각이 좀 섞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아내가 딱 한 조각 먹은 것 빼고는 프라이드는 모두 아이들이 먹었다. 소윤이, 시윤이 둘이서 한 마리를 먹은 셈이다. 양이 적은 것도 아닌데. 아내와 나는 새삼 놀랐다.
"여보.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
"그러게. 엄청 잘 먹네"
소윤이와 시윤이가 진심으로 맛있어하며 먹는 게 느꼈다. 졸려서 어쩔 줄 모르던 시윤이도 먹으면 먹을수록 정신을 차렸다. 살코기를 발라주는 속도가 시윤이 먹는 속도를 못 쫓아갈 정도였다. 소윤이는 살코기를 따로 발라주지도 않았다. 자기가 손으로 들고 뼈를 골라내며 먹었다. 그것도 꽤 야물차게. 아내와 나는 오늘 확실하게 알았다. 이제 한 마리로는 택도 없다는 걸.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야만 하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빠. 우리 치킨 먹고 바로 집으로 갈 거에여? 어디 카페 같은 데라도 잠깐 가고 싶은데"
소윤이의 바람대로 잠깐 카페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왔다. 밥 배, 디저트 배 따로 있는 건 모든 인류의 공통점인가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렇게 먹고도 또 뭔가를 바랐다.
"아빠. 우리는 아무것도 안 먹어여?"
아니, 자기가 오자고 해서 온 건데 마치 억울하다는 그 말투는 뭐지. 또 거기에 설득 당해서 마카롱을 하나씩 사 준 나는 뭐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마카롱도 닭다리를 뜯어 먹는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