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6(주일)
요즘 자꾸 아침을 아내에게 떠넘긴다.
"여보. 놔 둬. 내가 할게"
입은 아내한테 놔두라고 하는데 정작 내 몸을 그대로 두고 있으니 아내가 먼저 움직이는 거다. 빠릿하게 일어나서 아내를 밀쳐내고 주방을 차지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 때 소윤이와 시윤이가 내 등과 침대 사이에 풀을 바르는 게 아닌가 싶다.
"아빠. 눈이 와여"
창밖으로 거센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소윤이, 시윤이와 나가서 눈사람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 교회를 가느라 못 만드니 아쉽다거나 오랜만에 만난 눈이 참 반갑다거나 그런 생각을 누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오늘 축구할 수 있으려나'
였다.
겨우내 제대로 된 눈 한 번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보니 위안이 됐다. 바람이 많이 불고 제법 눈발이 굵어서 내리는 모양새만 보면 금방이라도 쌓일 듯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내려도 쌓이지는 않았다.
요즘 아내와 나는 주일에 늦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덕분에 오늘은 가는 길에 은행까지 들렀음에도 제시간에 도착했다. 소윤이는 내 친구네 부부가 올지 안 올지를 궁금해했지만 아침에 전화를 받지 않은 걸 보면 못 일어난 듯했다.
"소윤아. 오늘은 영주 삼촌 못 오시나 봐"
"왜여?"
"글쎄. 아침에 전화를 안 받는 거 보면 못 일어났나 봐"
"그래여? 아쉽다"
교회에 가자마자 배가 아파서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새싹꿈나무 예배에 데려다주고. 그래, 생각해 보면 매주 주일 아침마다 화장실 시기가 겹쳤다. 거기서 꽤 시간을 많이 까먹었다. 늦는데 적잖은 공현을 한 거다.
일기예보에서 눈은 잠깐 오고 만다길래 안심했는데 교회에 도착하니 눈발이 더 거세졌다. 예배가 끝났을 때도 여전히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흩날렸다. 쌓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정도 눈으로 축구가 취소되지는 않겠지만 난 화창한 날씨에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부디 그치길 바랐다.
늦잠 자서 못 온 줄 알았던 친구네 부부는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연락이 됐을 때에야 그걸 알고 로비에서 만났다. 아내는 먼저 교회 식당에 가 있었다. 친구네 부부에게 식당에 가면 아내가 있을 거라며 먼저 들어가라고 얘기하고 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갔다.
"소윤아. 영주 삼촌이랑 은지 이모가 오셨더라"
"진짜여? 어떻게여?"
"음, 그냥 전화만 못 받은 건가 봐. 지금 식당에서 기다리고 계셔"
"와, 신난다"
아이들과 함께 다시 로비로 내려갔더니 아내와 친구네 부부가 식당에서 나와 있었다. 친구네 부부가 밖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친구네 부부가 좋아하고 아내도 먹을 수 있으며 아이들이 먹을 것도 있는, 필요 이상으로 비싸지 않은 음식으로 칼국수가 당첨됐다. 갑자기 추워진,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에도 잘 어울리고.
칼국수 세 개와 만둣국 한 개, 만두 한 판(다섯 개)을 시켰다. 애들은 공기밥도 추가해서 먹이고 하면 그리 부족할 거 같지는 않았다. 만두는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이 하나씩 나눠 먹었다. 아내가 애들이랑 만둣국을 나눠 먹었고 칼국수는 친구네 부부와 나, 아내가 함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은근한 먹성을 보이며 꽤 많은 양을 먹었고 결과적으로 3인분의 칼국수를 네 명이 나눠 먹은 거다. 친구네 부부는 양이 부족했는지 국수를 한 그릇 더 시켜 먹었다.
"아빠. 오늘도 밥 먹고 카페에 갈 거에여?"
"소윤아. 음, 오늘은 아빠가 바로 목장 모임에 가야 해서 못 갈 거 같아"
"왜여? 잠깐만 가면 되잖아여"
"아, 그런데 오늘은 식당에서 밥을 먹느라고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 오늘은 도저히 갈 시간이 안 되고 다음에 가자"
"아빠. 그래도 밥 다 먹고 혹시 시간 되면 그때 생각해 봐여"
"음, 소윤아. 그럴 가능성이 없어. 이미 지금도 많이 촉박해서 밥 먹고 바로 헤어져야 돼. 알았지?"
"알았어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새싹꿈나무 예배가 끝나고 나를 만났을 때 쿠키를 만들었다며 손에 쥐고 흔들었다.
"아빠. 우리 쿠키 만들었어여"
"아빠아. 나도 만드여떠여엉"
"소윤이는 두 갠데 왜 시윤이는 한 개야?"
"아, 시윤이는 아까 하나 먹었어여"
"아빠. 저늠 하나 먹어떠여엉"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아빠. 저는 엄마, 아빠한테 이거 나눠줄 거에여. 그러니까 꼭 먹고 가여. 아빠"
"알았어"
"아빠. 저도 나너둘거에여엉"
"그런데 시윤이는 한 개 밖에 없잖아"
"음, 아니에여어엉"
"뭐가 아니야. 아까 하나 먹었다며"
"아니이. 그거늠 내가 마디 있는디 없는디 먹은 거에여엉"
소윤이와 시윤이의 차이. 소윤이는 미래를 위해 아끼는 걸 잘 한다. 먹는 건 물론이고 스티커나 색종이 같은 소모성 장난감도.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를 집에 데려다 놓고 곧장 교회로 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신다고 해서 왠지 아내도 더 평안해 보였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혹은 믿어야만 하는 나의 심정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르고.
오늘은 축구가 끝나고 바로 일이 또 있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가서 샤워만 빠르게 하고 다시 나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형님(아내 오빠)이 집에 있었다. 스치듯 인사만 나눴고 소윤이와 시윤이하고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 앞에서 포옹과 뽀뽀를 주고받았다.
"소윤아, 시윤아. 잘 자. 우리 내일 보자"
처치홈스쿨에서 사용할 의자와 책상을 중고로 구했는데 그걸 가지러 가야 했다. 교감 선생님(일반 학교의 교감처럼 나이 많은 건 아님. 나보다 몇 살 많은 형이지만 직책상 교감)과 함께 신도림에 가서 직거래를 하고 그걸 처치홈스쿨 하는 교회에 갔다 놓고 왔다. 밤이라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서 시간은 얼마 안 걸렸다. 다만 배가 고팠다.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울고 있었다. 아이패드를 보면서. 정확히 말하자면 남조선에 불시착한 리정혁 동무를 보면서.
"여보. 울었어?"
"어"
"사랑의 불시착 봐?"
"응. 지금 엄청 슬프단 말이야"
아내는 덧붙였다.
"여보. 지금 내가 밥을 못 차려주겠다. 미안해. 오빠가 가지고 온 국 있으니까 그거랑 먹어"
사랑의 불시착을 시청하는 아내 곁에 불시착한 오징 아니 어깨 동무는 아이패드 리정혁 동무를 보며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늦은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