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0(목)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을 먹자마자 어제 편의점 갔을 때 사다 놓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겉도 초코, 속도 초코. 온통 초코인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둘 다 어찌나 잘 먹는지. 아내와 나는 보통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먹게 하려고(몸에 좋지 않은 걸 덜 먹이려고)'라는 이유로 일부러 한 입, 두 입 얻어먹는다. 오늘 아내의 모습은 의심스러웠다.
'그냥 자기가 맛있어서 달라고 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기꺼이 자기 것을 내어주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기특하다.
원래 미술 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신변의 변화로 인해 지난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되어 버렸다. 아침 먹고 잠깐 선생님에게 가서 인사를 할 생각이었다.
"여보. 오늘은 바로 올 거야? 어디 갔다 올 거야?"
"음, 오늘은 잠깐만 있다 올게"
"알았어"
안 그래도 곧 일상이 될 남편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아내에게 너무 자주 '나 홀로 육아'의 시간을 선사하는 거 같아 좀 미안했다. 할 일이 있어서 나가는 것이긴 해도 남은 이의 수고를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선생님께 드릴 약소한 선물을 사서 갔다. 한 30분 정도 앉아서 이야기를 하다가 나왔고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 괜찮아?"
"응. 괜찮아"
"여보. 이따가 스벅으로 나올 거면 나 스벅으로 나올 생각 있으면 여기 도서관에 있다 갈게. 어떻게 할까?"
"그래? 글쎄. 어떻게 할까. 고민되네"
"여보가 결정하는 대로 할게"
"그럼 일단 이쪽으로 와. 어떻게 되든"
"오키"
일단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로 갔다. 아내는 떡볶이(점심)를 먹고 있는 애들 사진을 보냈다. 아내의 그릇도 놓인 걸 보면 아내도 함께 먹는다는 얘기였다. 사진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제법 훈훈했다. 진짜 정신이 없거나 마음이 쪼그라들었을 때는 그런 사진 찍어서 보내지도 못한다. 조금 안심하고 내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 정도 지나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올 건지 아닌지를 물었다.
[계획은 그런데 할 일 하다 보니 벅차네. 15분 정도 있다 나갈게용]
육아가 힘든 건 육아 그 자체만으로도 꽤 고난도의 노동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육체와 정신의 수고가 필요한 여러 일이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애들만 '보는' 육아라면 편하겠지만 이 세상에 그런 육아는 없다.
아내는 30분 정도 후에
[휴 이제 출발]
라며 카톡을 보냈다. 잠시 후 아내는 애써 미소를 띠며 등장했지만 지친 기색을 모두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 강시윤. 진짜"
"왜?"
"몰라. 또 나오려고 할 때 괜히 옷 안 입겠다고"
"졸린가?"
"응. 엄청. 아, 열받아"
소윤이는 오자마자 뭔가를 먹고 싶다면서 졸라댔다. 바깥바람을 쐬어주는 게 목적인 외출이었다.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귀가하는 게 우리의 남은 수순이었다. 다만 너무 빡빡하게 굴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너무 서운할 테니 조금 더 앉아 있다가 가기로 한 것뿐이었다.
"소윤아. 우리 조금만 앉아 있다가 갈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뭐 안 먹어"
소윤이는 조금 징징거렸다. 아내는 스콘 하나와 커피 한 잔을 사 왔다. 점심을 굶은 나를 위한 조치였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각각 세 번의 포크질을 허락했다. 나머지는 아내와 내가 나눠 먹었다.
"저녁에는 뭐 먹지?"
"오늘 김치찌개 하려고"
조금이라도 바깥에 머무는 시간을 늘려주기 위해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가고 난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니 들어가는 내내 메모리 게임을 하자고 했다. 그러자며 수긍했는데 소윤이는 집에 들어서서 옷을 벗기도 전에
"아빠. 이제 얼른 메모리 게임 하자여"
라며 나를 채근했다.
"소윤아. 아빠 아직 옷도 못 벗었어. 아빠가 한다고 했잖아. 숨 좀 돌리고"
소윤이는 이런 말에 풀이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윤이는 잠시 쉬는 나의 옆에 앉아서 낮에는 어떻게 메모리 게임을 했는지 얘기해줬다.
"아빠. 아까 낮에는 제가 시윤이한테 같이 메모리 게임하자고 했는데 시윤이가 싫다고 하는 거에여.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여?"
"어떻게?"
"제가 토야랑 했어여"
"토야랑? 어떻게? 소윤이가 혼자 토야 역할도 하면서?"
"아, 어떻게 했냐면여. 봐봐여"
소윤이가 거의 그대로 재연을 했다. 메모리 카드를 깔아 놓고 자기도 앉고, 토야(인형)도 앉힌 다음 자기가 두 장을 뒤집고는 자기가 토야의 손을 잡고 카드를 집어서 두 장 뒤집고. 소윤이는 엄청 신나서 얘기했는데 뭔가 안쓰럽고 짠했다. 아마 내가 다시 출근하고 나면 자주 벌어질 일일지도 몰랐다. 심지어 토야는 토끼 인형이라 손이 뭉뚝해서 카드가 잘 집히지도 않는다.
"소윤아. 아빠랑 메모리 게임하자"
"다 쉬었어여?"
"어. 다 쉬었어. 얼른 가지고 와. 아빠랑 하자"
아내가 김치찌개를 비롯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소윤이와 메모리 게임을 했다. 시윤이는 같이 하려는 듯하다가 금방 나가떨어졌다. 자기도 같이 놀고 싶기는 한데 아직 메모리 게임에 그만큼 흥미가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오히려 잘 됐다. 완전히 소윤이의 박자에 맞춰서 함께 놀 수 있으니까. 사실 따로 맞춰 줄 필요도 없다. 소윤이랑 메모리 카드를 하면서 내 뇌가 많이 낡았다는 걸 깨닫고 있다. 소윤이의 싱싱한 뇌가 훨씬 더 기능을 발휘할 때도 많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3월이 되면 아빠가 이 시간에도 안 오시겠지? 흑흑"
풍성한 반찬이 차려진, 네 명 모두 각자의 자리에 앉은 저녁 식탁에서 아내는 오늘도 1일 1토로를 실천했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생각이 나고 그리울까.
"소윤아, 시윤아. 아빠도 이 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왜여?"
"왜긴. 소윤이랑 시윤이랑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 한 세 달 동안. 그러니까 엄청 보고 싶을걸"
"맞아여. 저도 그럴 거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