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1(금)
평일 낮에 가면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양주의 어느 식물원 카페를 가려고 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하룻밤 사이 코로나 사태가 많이 심각해졌다. 아무리 인적이 없고 뻥 뚫린 야외라도 섣불리 돌아다니기가 두려운 상황이 됐다.
"하아. 그럼 오늘은 뭘 해야 하지"
"그러게"
오늘은 금요철야예배도 나만 가기로 했다. 평소에도 '어쩌다 보니' 집에만 머문 날이 종종 있지만 원래 못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고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더 답답했다.
"여보. 우리 원래 거기 가려고 했으니까 그 돈으로 어디 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을까"
"그래, 그러자. 어디라도 나가자"
"그럼 카페 갔다가 저녁 먹고 들어오면 되겠네"
"그러자. 어디로 가지"
고민하던 차에 아내의 올케이자 아이들의 외숙모에게 오늘 일을 쉬는데 만날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함께 보기로 했다.
요즘 자주 그러듯 오늘도 점심이 애매하게 지나갔다. 애들도 애들이지만 아내와 내가 배가 고팠다. 김밥과 만두를 사서 나와 아내는 소윤이, 시윤이 외숙모를 태우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먹었다.
"엄마. 우리도 너무 배고파여"
"너희는 이따 숙모 집에 가면 숙모 내려오시는 동안 차 안에서 줄게"
"왜 우리는 지금 못 먹어여?"
"차 안에서 먹으면 흘릴지도 모르니까"
다행히 소윤이는 왜 엄마, 아빠는 되고 우리는 안 되냐고 되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약속대로 주차장에서 숙모를 기다리며 만두와 김밥을 좀 먹었다. 그야말로 간단히 요기만 할 생각이어서 몇 개 되지는 않았다.
먼저 카페에 갔다. 별도의 공간이 있는, 자주 가는 카페로 갔는데 오늘은 다른 손님들이 계속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때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만 조금 움직였다. 숙모는 소윤이의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다. 정확히 어느 나라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국 어느 나라의 아이들(?)이 직접 만든, 책처럼 생긴 연습장이었다. 제본도 끈을 이용해 직접 했고 표지나 내지에서 수제작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흔하지 않은 게 정말 선물의 느낌이었다.
"뚝모. 저늠여엉? 데 꺼늠여엉?"
"어, 미안해. 오늘은 시윤이껀 없어"
시윤이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잠시 얼굴에 담았다.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다. 형식적으로라도 항상 균형을 맞췄으니까.
"시윤아. 시윤이는 이게 선물이래. 우와 이게 뭐야"
역시나 숙모가 가지고 온 거였다. 물론 선물은 아니었지만. [안심해요 육아]라는 제목의 사교육 없이도 아이를 잘 키우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아주 좋은 내용의 소책자였다.
"우와. 시윤아. 책인가 봐. 시윤이도 좋겠다. 선물 받아서"
시윤이는 금세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내게 책을 건네며 말했다.
"아빠아. 읽어두데여엉"
"아, 시윤아. 이건 지금 못 읽어"
"왜여어엉"
"아, 여기 카페라서 책 읽어주기가 좀 그래"
시윤아, 미안해. 내용이 좋긴 해도 너에게 읽어주기에는 좀 그렇더라.
시윤이는 그걸 엄청 소중하게 챙겼다. 내용도 모르면서 이걸 보라며 책을 펼쳐 들고는 자랑을 했다.
그래, 너도 커서 아이들 열심히 키우려면 지금 좀 봐 둬.
저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칼국수 가게로 먹으러 갔다. 식사 태도가 썩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어찌 됐건 각자 먹어야 할 양은 충분히 다 먹었다.
소윤이는 숙모에게도 메모리 게임을 보여주고 싶은지 (아니면 같이 하고 싶은지) 밥 먹고 집에 들렀다 가라고 계속 졸랐다. 숙모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불구덩 아니 우리 집에 가기로 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내가 교회 가는 길에 숙모를 데려다줘야 했기 때문에 내가 교회 가는 시간이 곧 숙모가 떠나는 시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단 들어가자마자 씻겼다. 교회에 가고 나면 최대한 아내가 할 일이 없도록 양치까지 다 했다. 그러고 나서는 곧바로 숙모와 메모리 게임을 시작했다. 난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마침 숙모 덕분에 아이들에게서 잠시 분리가 가능해서 그랬나.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내도 아마 애들한테서 좀 떨어졌던 거 같다. 아마 숙모가 없었어도 졸았을 거다. 그냥 너무 졸렸다. 소파에 앉아서 엄청 달콤하게 졸았다.
"소윤아. 이제 아빠 교회 가셔야 돼. 그만하고 다음에 또 하자"
제법 의젓하게 아빠와 숙모를 보내줬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서 아내랑 영화를 봤다. 한창 재밌게 보고 있는데 소윤이가 잠에서 깨서 나왔다. 거실의 모습을 빠르게 훑는 소윤이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내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눈웃음을 지었다. 거실 바닥에는 빈 과자 봉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소윤이가 못 봤을 리 없다. 그렇지만 소윤이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모른 체했다.
소윤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혼자 잘 잤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랑 수다를 떠는데 이번에는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엄청 울면서. 아주 서럽게 울면서.
"시윤아. 왜 울어. 왜?"
"으헝헝헝헝헝. 엄마가 하앙항항항. 없더더헝헝헝헝헝"
시윤이의 서러운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요즘은 잠에서 깨도 볼 일을 보고 혼자 들어가서 자는 게 대부분이지만 가끔 이럴 때도 있다. 반복된 연습과 훈련으로 잠재워졌을 뿐이지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건 본능이니까. 갓난 아기처럼 헐떡거리며 우는 시윤이를 보며 아내와 나는 서로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눈 사이를 잔뜩 찌푸리면서 주름을 만들어 내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 있는 그런 표정을 교환했다. 요즘 아내와 내가 시윤이를 보며 자주 짓는 표정이었다. 물론 소윤이 몰래.
아내는 시윤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