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여도 롬이는 봐야지

20.02.24(월)

by 어깨아빠

코로나 때문에 온 나라가 위축되었다. 주변의 사람도 반응이 여러 가지다. 은둔형, 무시형 등등. 아내와 나는 적어도 은둔형은 아니다. 그렇게 살지도 못할 거고. 오늘도 롬이를 보러 가는 날이었는데 온 가족이 함께 갔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내 혼자 보고 오는 건 너무 쓸쓸하다. 아내에게도 남은 우리에게도.


"소윤아. 과연 롬이가 머리를 아래쪽으로 돌렸을까?"

"그러게여. 궁금하다여"

"그치. 우리가 기도한 대로 돌았을까"


롬이를 보러 나가기 전까지는 집에 콕 박혀 있었다. 조금 일찍 나가서 산부인과 근처의 카페에 잠시 들렀다. 우리가 앉은 옆자리에 교회 주보를 들고 계신 것도 그렇고 뭔가 목사님 부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중년의 부부가 앉으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면서 계속 미소를 보내시다가 나에게 물으셨다.


"애가 둘이에요?"

"네. 맞아요"


아내의 뱃속에 셋째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말해야 하나 0.5초 고민했지만 오지랖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아니에여엉. 데 명이에여엉"


시윤이가 나를 대신해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했다.


"아, 그러시구나. 아이구 대단하시네"

"아, 네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메이플 시럽으로 만든 사탕을 하나씩 주셨고, 아내에게는 고디바 초콜렛을 하나 주셨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손을 박박 씻었다. 애들 손도 씻겨주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제 안다.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왜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지.


"아빠. 마스크 벗으면 안 되져?"

"응. 계속 쓰고 있어야 돼. 답답해도 조금 참아"


앞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금방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롬이는 돌지 않았다.


"소윤아. 롬이가 그대로네"

"그러게여. 왜 안 돌았지?"

"저게 좋은가 보지 뭐. 그래도 다음에 올 때까지 돌지도 모른대"

"저도 들었어여"


최대한 병원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내가 수납하는 동안 먼저 차에 가서 애들을 태웠다. 저녁은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병원 오는 날은 집에 가서 먹기가 좀 부담스럽다. 너무 늦어진다. (밖에서 먹는다고 빨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너무 자세히 파고들지는 말자.)


"자, 한 명씩 먹고 싶은 거 말해 봐. 소윤이부터"

"저는 파스타여"


"시윤이는"

"더는 찌낀"


"여보는"

"난 아무거나"


파스타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다가 원흥역 근처에 있는, 평이 좋다며 아내가 진작부터 찾아 놓은 분식집에 가기로 했다. 역시나 화장실부터 데리고 가서 손을 씻겼다. 바깥에서 애들 손 씻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나마 소윤이는 키에 맞는 세면대가 종종 나오지만 시윤이는 거의 없다. 한 팔로 안아서 허벅지로 받친 채 공중에 띄워서 씻겨야 하는데 나나 되니까 하는 거다. 아내는 힘들어서 못한다. 가끔은 소윤이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도 손 씻기가 최고의 예방책이라고 하니 열심히 닦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 다 졸려서 밥 먹는 게 영 시원찮았다. 그래도 소윤이는 끝까지 다 밀어 넣었지만 시윤이는 실패했다. 사실 소윤이도 이미 허용된 범위(?)를 넘어섰지만 자비를 베풀었다. 시윤이가 문제였다. 사실 식당까지 가는 동안에도 거의 잠든 걸 억지로 깨웠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밥 먹는 태도가 너무 불량했다.


"시윤아. 시윤이는 이제 밥 그만 먹어. 내일 점심때까지 간식 못 먹는 거야. 알았지"


요새는 간식 금지의 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말은 안 해도 이런 느낌이다.


'네, 그러세요. 간식 좀 안 먹으면 되죠. 뭐'


약이 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귤을 사야 한다고 했다. 집 근처 과일 가게 앞에 잠시 세워달라고 했다. 귤이 없는 건지 사장님하고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더니 가게에서 나왔다. 바로 차로 오지 않고 나에게 어떤 몸짓과 입모양을 보냈다. 해독해 보니 그 옆 빵 가게에서 빵을 사겠다는 말이었다.


"어, 엄마 왜 저기 가시지?"

"엄마가 빵 사 오신대"

"왜여?"

"엄마가 드시고 싶으니까"

"귤은여? 없대여?"

"그런가 봐"


아내는 빵 봉지를 허리춤 뒤로 감추더니 조심스럽게 걸어왔다. 차에 탈 때도 애들한테 안 걸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여보. 뭐해. 소윤이 다 봤어"


아내는 은근히 허당미가 넘친다. 결국 귤도 다른 가게에서 샀다. 애초에 귤은 미끼고 빵이 목적이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물론 아내는 아니라고 잡아뗐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자려는데 시윤이가 물었다.


"오느든 땍 이글 주 있나여엉? (책 읽을 수 있나요?)"

"아니, 오늘은 책 못 읽어"

"왜여어엉?"

"밥도 제대로 안 먹었으면서 책은 무슨 책이야. 오늘은 책 안 읽고 잘 거야"


뭐 썩 바람직한 연결은 아니었다.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얄미우니까. 시윤이도 더는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가는 아내가 화장도 안 지우고 씻지도 않았다. 씻고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말하려다가 그러면 분명히 안 자고 나올 거라고 답할 거 같아서 하려던 말을 삼켰다. 시윤이만큼이나 머리만 대면 잘 것처럼 피곤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잠이 들었는지 소식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나도 한 시간 정도를 졸았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얼마 안 돼서 아내도 나왔다.


"잠들었어?"

"응. 여보는? 뭐 했어?"

"나도 여기 앉아서 졸았어"


순간 직감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이번 주가 다음 주보다 나을 거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