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서프라이즈

20.02.25(토)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상 시간이 갑자기 앞당겨졌다. 지난주쯤부터 그랬다. 다음 주부터 찾아올 변화를 미리 연습이라도 하려고 그러는지 딱 그 시간이었다. 오늘도 일찌감치 일어나더니 소란을 떨었다.


장인어른 회사 쪽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 우선 아내하고 얘기를 끝냈고 아침에 장인어른께 전화를 해서 괜찮은지 여쭤보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비밀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깜짝 놀래주고 싶어서 그랬다. 아내가 아침에 장인어른과 통화를 했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엄마. 우리 오늘 어디 가여?"

"음, 밖에서 점심 먹으려고"

"어디서여?"

"비밀이야"

"왜여?"

"그냥 소윤이 놀래 주려고"

"누구 만나는지도 비밀이에여?"

"응. 궁금하지"

"네"


장인어른의 회사는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소윤이는 궁금한 듯 어디인지, 누구를 만나는지 계속 물어보긴 했는데 나름 즐기고 있었다. 소윤이의 추리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신림동 할머니, 파주 할머니 정도를 후보로 언급했다. 할아버지는 아예 생각도 못 했다.


장인어른과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1층으로 올라갔다. 장인어른은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셨다.


"소윤아. 저게 누구시지?"

"으잉? 할아버지?"


소윤이의 얼굴에 반갑고 놀라운 미소가 번지긴 했는데 막 방방 뛰면서 좋아하지는 않았다. 소윤이의 다음 질문으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할아버지. 근데 할머니는여?"


아마 할아버지가 있으면 당연히 할머니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정확한 상황 파악이 아직 덜 된 듯도 했고.


"소윤아. 할머니는 안 계시지. 여기 할아버지 회사 근처야. 우리 할아버지 만나러 온 거야"

"아, 그래여? 그럼 할머니는 뭐하고 있어여?"

"글쎄. 집에 계시겠지"


색다른 경험이었을 거다.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다.


"할아버지. 가지 마여. 좀 더 놀아여"

"할아버지 일하다 나오신 거야. 점심시간이 끝나서 이제 들어가셔야 돼"


소윤이는 할아버지랑 헤어지는 게 아쉬운 듯 붙잡다가 할아버지랑 헤어지고 바로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는 말에 금방 할아버지를 놓아드렸다.


장인어른은 회사로 가시고 우리는 후암동으로 갔다. 나중에 소윤이가 자기 애들 데리고 나 일하는 곳에 와서 밥 사달라고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상상에 사위는 없었...)


평소에 온라인으로 옷을 몇 번 샀던 적이 있는 옷 쇼핑몰의 쇼룸이 후암동에 있었다. 근처에 간 김에 둘러보려고 갔다. 워낙 작은 규모라 오래 있지는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또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 왔다. 아까 카페에서도 그랬고. 가는 곳마다 영역 표시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가는 것도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닌데 두 번, 세 번씩 가자고 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갈 때도 있다. 오늘은 그러지 않았지만.


저녁에는 가지 튀김을 했다. 집에 가지가 좀 있어서 처리를 하고 싶었다. 가지나물, 가지밥, 가지 튀김 말고 다른 요리가 혹시 있나 열심히 검색해 봤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그나마 애들이 잘 먹을 거 같은 가지 튀김으로 선택했다. 집에서 튀김을 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오히려 돼지고기 구울 때보다 후폭풍이 덜했다. (기름이 덜 튀었다.) 다만 과정은 복잡했다. 속 만들고, 반죽 만들고, 튀기고.


다른 반찬은 없었다. 밥, 가지 튀김, 김치.


"우와. 맛있다"


소윤이의 첫 반응에서 약간의 작위적인 향을 느꼈다. 애써 만들어낸 감상이었다. 시윤이는 행동에서 드러났다. 가지 튀김을 한 입 먹더니 더는 손을 대지 않았다.


"시윤아. 맛없어?"

"네"

"왜 맛없어?"

"이거(가지)가 마디 없떠여엉"

"그럼 이거는?"

"마디떠여엉"


남은 속을 김에 넣고 김말이처럼 튀긴 것도 있었는데 그건 잘 먹었다. 소윤이에게도 다시 물어봤다.


"소윤아. 맛없으면 안 먹어도 돼. 괜찮아"

"안 먹을래여"


아직 가지는 애들한테 무리인가 보다. 애들이 먹지 않았는데 가지 튀김이 거의 다 사라졌다. 아내가 엄청 잘 먹었다. 원래도 가지를 좋아하는데 튀김이 잘 됐는지 아주 잘 먹었다.


"여보. 난 너무 맛있다"


롬이가 가지를 좋아하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기 전에 책을 읽어줬다. 한 권씩 골랐는데 둘 다 각자의 책 중에서 가장 긴 책을 골라왔다. 시윤이 책을 먼저 읽었다. 열심히 목소리 변조도 해가면서 최선을 다해 읽었다. 그다음이 소윤이 책이었는데 한계에 부딪혔다. 너무 졸렸다. 자꾸 헛소리를 한다거나 멈추고 졸았다. 급기야는 2문장에 한 번꼴로 졸거나 헛낭독을 했다.


"소윤아. 진짜 미안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읽으면 안 될까. 아빠가 너무 졸려"

"그래여. 그럼 내일 읽어주세여"


저번에도 이 책을 읽다가 너무 졸려서 포기했었다.


백수가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닌가 백수라서 이렇게 피곤한 건가. 아니면 겉만 백수고 실상은 육아 노동자라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