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 없는 거 같지만 안 한 게 없는 하루

20.02.26(수)

by 어깨아빠

코로나 사태의 기세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 인근에서도 확진자가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오늘만큼은 몸을 사리기로 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요즘 소윤이가 꽂힌 메모리 게임도 하고, 너무 반복하니 지겨워서 내가 새롭게 개발한 보물 찾기(메모리 카드 몇 장을 집 안 곳곳에 숨겨놓고 찾는)도 하고. 책도 엄청 읽었다. 소윤이 수준보다는 조금 낮은 성경 이야기 시리즈 책을 모두 읽었다. 읽어 달라고 하는대로 다 읽어줬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는데 공기는 엄청 좋았다. 날씨가 화창한 건 물론이고 미세먼지 수치도 [최고 좋음]이었다. 저녁 무렵에는 모두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뭐 나름 집에서 즐겁게 보냈다고는 해도 바깥 공기가 한 번도 들이마시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직장이 힘드냐 육아가 힘드냐는 무의미한 논쟁을 매우 싫어하지만 [육아가 힘들다]쪽에 서서 토론을 해야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할 거다.


"니네는 바깥 바람이라도 쐬잖아. 우린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었어!"


매일 그런 건 아니어도 가끔씩 창살없는 감옥이 되는 이유가 다 있다.


아내와 나는 느즈막히 바깥 바람을 쐬기로 했다. 밀폐된 장소는 좀 꺼림칙하니까 그냥 산책을 하기로 했다. 대신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게 했다. 왕복으로 30-40분 정도 걷고 킥보드를 탔다. 아주 짧은 외출이었지만 그것마저도 나오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하면 나름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모두 어느 정도의 갈증은 해소한 느낌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살림에 들렀다가 소윤이와 시윤이의 쭈쭈바도 하나씩 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애들을 씻기고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을 다 차려주고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쉬었다. 그러다 졸았 아니 잠이 들었다. 희미하게 아내와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기는 했다. 얕은 잠을 자다가 깼는데 시윤이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내와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 개입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언제나 비슷하다. 특히 이 시간대에는.


아내의 지시 혹은 상시 규칙을 어기고 자기 고집을 부리는 거다. 대체로 터무니 없거나 말이 안 되는 것들이고. 나의 개입에도 시윤이는 그대로였고 결국 강력한 훈육의 시간을 가졌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1분 1초를 치열하게 살았는데 끝나고 나면 한 게 없는 거 같다. 집에만 있었던 날은 그런 착각이 들 때가 많다. 눈을 뜨자마자 아니 눈을 뜨기도 전부터 아이들의 소리로 시작해서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아이들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는데.


우리 네 식구 모두,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살았다. 비록 집에만 있었지만.


아내의 불안 증세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오늘은


"이제. 진짜 끝이네. 나 진짜 어떻게 하지. 눈물이 날 거 같아"


라고 얘기하더니


"금요일에는 점심 때 외식하자"


라고 덧붙였다.


"왜?"

"그냥. 여보 있을 때 평일 점심에 외식하게. 그리고 그날은 아침에 나 혼자 카페에 갔다 올게"


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러 들어가면서 이렇게 인사했다.


"그동안 행복했어. 안녕"


누가 보면 나 어디 해외에 가는 줄 알겠네. 아내한테는 코로나보다 무서운 게 따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