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당일치기

20.03.05(목)

by 어깨아빠

원래 지난주, 그러니까 새로 출근을 하기 전에 가까운 곳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여행은 포기했다. 딱 여행 가기 좋을 때였는데 아쉬웠다. 섭섭한 마음으로 출근을 기다렸는데 출근도 미뤄졌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덕분에 시간이 좀 더 생겼다. 코로나 사태는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사는 동네까지는 아니어도 인접한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여보. 확진자 없는 곳으로 피해서 여행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농담을 주고받긴 했지만 그야말로 농일뿐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백수의 시절을 마치는 건 너무 아쉬웠다. 당일치기로라도 언제든, 어디든 가서 바람을 쐬고 오기로 했다. 그러고 났더니 날씨가 문제였다. 일기예보를 보면 이번 주는 추웠다. 내내 따뜻하다가 이번 주에 갑자기 추워졌다. 다음 주로 미룰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오늘 가기로 했다. 그래 봐야 영하도 아니니까. 장소는 가까워야 했고, 곳곳에 확진자가 분포된 곳이 아니어야 했다. 찾다 보니 '강화도'가 딱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준비를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리 말을 안 하고 오늘 아침에 얘기했다. 둘 다 어리둥절했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아빠아. 우디 어디 가여어엉?"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멀리 가는 외출'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여행'으로 명명했다. 기분이라도 내라고.


"우리 오늘 여행 가는 거야"

"여행이여? 어디로여?"

"강화도"

"강화도? 멀어여?"

"아니 가까워.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소윤이는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는 게 가능할 만큼 컸다. '카시트에 앉아서 가기에 너무 힘들 만큼 멀지 않은' 어딘가로 떠난다는 자체로 신났다. 시윤이도 뭐 분위기를 탔고.


아침도 나가서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 근처 분식집에서 주먹밥과 김밥을 샀고, 난 맥모닝을 먹기로 했다. 주먹과 김밥을 들고 맥도날드에 들어갔는데 맥모닝이 메뉴에 없었다. 시간을 보니 주문 가능한 시간이 막 지난 뒤였다. 아쉬운 대로 가장 싼 햄버거 하나와 가장 싼 커피를 하나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침부터 엄청 잘 먹었다. 어제 저녁밥을 조금씩 떠 줘서 그랬는지 둘 다


"너무 배고팠어여"


를 외치며 주먹밥 하나씩을 순식간에 먹었다.


목적지가 강화도이긴 했지만 그 안에서 어디를 갈 건지는 정하지 못한 채로 집에서 나왔다. 맥도날드에서 나와 차에 타며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 어디 가?"

"그러게. 어디 가지"


어제 자기 전에 급히 이곳저곳 찾아 놓긴 했었다.


한 카페가 첫 방문지였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이동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신나게 떠들었다. 처음 가보는 곳(물론 둘 다 처음은 아니지만, 기억에는 없을 거다)을 향한 기대와 설렘이 있었나 보다.


"아빠아. 마즈끄 떠야 돼여엉?"

"어"

"왜여? 코오나 이구 때문에에?"

"어. 마스크 계속 쓰고 있어"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딱 문 여는 시간에 간 거였다. (일부러 맞춘 건 아니었다.) 커피도 맛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사장님도 친절했고. 애들은 얌전하게 앉아 그림을 그렸고. (누누이 말하지만, 얌전했다고 정말 쥐 죽은 듯한 걸 상상하면 안 된다. '얌전'이라는 단어 앞에 '그 정도면'이라는 조건이 숨어 있다는 걸 늘 유념해야 한다.) 아, 시윤이는 한 번 울었다. 우유를 먹다가 자꾸 턱 밑, 옷으로 흘리길래 휴지를 하나 대줬다. 그랬더니 그게 싫다는 거다. 안 흘릴 거라면서 한사코 거부했다.


"뭘 안 흘려. 계속 흘렸잖아. 이거 해"

"간디러워여어엉"

"자, 이제 안 간지럽지? 하고 있어"

"간디러워여어엉. 으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울음이었다. 간지러운 건 핑계였고 아마 자기만 너무 애 취급을 하는 게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요즘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 애를 애 취급하는 건데 당하는 애는 그게 싫은가 보다. 그렇게 울 때 나한테 와서 안기면 대체로 슬픈 거고, 안기지 않고 소리를 더 높이면 그건 떼쓰는 거다. 오늘은 나한테 와서 강아지처럼 가만히 안겨 있었다.


그것 말고는 아주 평온했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소윤이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물었다.


"아빠. 이제 어디 가여?"

"음, 글쎄. 아직 고민 중이야"

"아빠. 일단 숙소에 가고 싶어여"

"숙소? 오늘 안 자고 간다니까"

"아, 그래여? 저는 여행이라서 숙소가 있는 줄 알았어여"

"아, 숙소는 잘 때만 예약하지. 보통"


소윤이에게 [여행 = 숙소]였나 보다. 소윤이 말대로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어디 숙소를 잡고 왔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나오니 앞에 자그마한 공터 같은 게 있었는데 설명을 보니 강화 성터였다. 생각 보다 날씨가 따뜻했다. 어제처럼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잠시 공터에 풀어줬다. 잘 뛰어다녔다.


"여보. 이제 또 어디 가지?"

"그러게"

"점심을 먹어야 되나?"

"일단 그럴까?"


식당도 엄청 많이 찾아놨었다.


짜장면을 엄청 싸게 파는 중국 음식점으로 갔다. 짜장면 두 개와 짬뽕, 탕수육 하나를 시켰다. 짜장면이 싸다는 이유로, 또 요즘에는 소윤이든 시윤이든 짜장면을 엄청 잘 먹었으니까 큰 고민 없이 애들 몫의 짜장면을 한 그릇 더 시킨 거였다. (보통은 짜장이든 짬뽕이든 두 그릇을 시키고 탕수육을 시킨다.) 맛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토록 찾기 힘든 '정말 싸고 맛있는' 집이었다. 다만 시윤이가 짜장면에 손도 대지 않았다. 탕수육만 먹었다. 소윤이도 처음에는 탕수육만 먹더니 나중에서야 짜장면을 좀 먹었다. 평소처럼 두 그릇에 탕수육 하나 시켰으면 딱 좋았을 날이었다. 평소에도 늘 내가 제일 많이 먹지만 오늘처럼 잔반이 발생하는 날에는 양이 더 늘어난다.


"아우. 배불러"


다들 잘 먹긴 했는데 내가 제일 배가 불렀다.


"여보. 우리 이제 어디 가?"

"음, 그러게. 드라이브라도 할까?"

"그럴까? 어디로? 그냥 아무 데나?"

"동막 해변 쪽으로?"

"그래"


시윤이는 잠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뒤에 앉아서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댔다. 요즘은 쿵짝의 엇박자를 주로 시윤이가 내는 편이다. 누나한테 버릇없이 군다거나,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린다거나, 자기 멋대로만 하려고 한다거나. 물론 소윤이도 특유의 욕심과 집착을 보일 때가 있지만 주로 피해자고, 시윤이가 가해자일 때가 많다. 오늘은 박자가 아주 잘 맞았다. 쿵짝이 잘 맞을 때는 얘네 노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다.


매일을 휴일처럼 보내고 있어서 가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상실하지만 오늘은 평일 낮이었다. 강화도 해변에 사람이 많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 느낌은 아니었다. 사람은 적당히 있었고, 갈매기는 엄청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새우깡을 던지고 있었다. 갈매기떼는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일이십 마리 정도가 아니라 백 마리는 족히 넘을 정도의 수였다.


"저기요. 이쪽에서 던지지 말아 주세요"

"얘들아. 저쪽에서 던져 줄래?"


어느 젊은 커플에게, 어느 아이들에게 그렇게 요구했다. 가까이 몰려드는 갈매기떼가 반갑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래 놀이를 하고 싶어 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아무것도 준비해 온 게 없기도 했지만 설령 준비를 했더라도 털퍼덕 주저앉아서 하는 모래놀이의 후폭풍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때문에, 아마 똑같이 안 된다고 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서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유인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게 싫으면 우리가 해변을 벗어나야 할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별로 달갑지 않은 생물체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구경하게 됐다. 보다 보니 장관이었다. 엄청 신기했다. 새우깡 주변으로 마구 몰려들던 갈매기들이 갑자기 창공을 향해 떼로 날아가더니 다시 새우깡을 향해 일제히 돌진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봤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다소 차갑게 양해를 구했던 커플과 아이들이 떠올랐다.


'미안합니다'


나중에는 나도 애들도 막 환호성을 지르며 구경했다.


"오오오오오!!! 저것 봐!!"


뜻밖의 갈매기 에어쇼 덕분에 해변에서 제법 알차게 보냈다.


"소윤아. 진짜 재밌었다. 그치?"

"맞아여. 너무 재밌었어여"

"아빠아. 새드이 엄쩡 마나떠여엉"


다시 차에 탔다. 시간이 어느새 많이 흘러 있었다.


"여보. 이제 또 뭐 하지?"

"음, 그러게. 저녁 먹기에는 아직 너무 배부르잖아"

"맞아. 저녁은 좀 더 있다가 먹어야 될 거 같아"

"그럼 어디를 가야 하나"

"일단 카페 또 갈까?"

"그러지 뭐"


역사 박물관, 우주체험센터 등등 평소였다면 가 볼 만한 곳이 좀 있었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생각보다는 따뜻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몇 시간이고 밖에서 놀게 둘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한 30-40분 놀면 볼이 발그레 트고, 콧물이 찔끔 흐르기도 했다.


처음 갔던 카페가 동네의 아기자기한, 흔치 않은 느낌의 카페였다면 두 번째 카페는 강화도에 엄청 많은 전망 좋은 대규모 카페였다. 그 큰 카페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제법 많은 종류의 빵도 함께 파는 곳이었다. 아내는 깜빠뉴와 딸기 생크림 페스츄리(?)도 샀다.


난 여전히 배가 불러서 커피만 홀짝였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앉자마자 빵을 흡입했다.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엄청 맛있고 즐겁게 먹었다. 아내는 계속 나에게도 먹으라고 했지만 난 정말 배가 불렀다. 아내도 배가 부르다고 했는데 빵은 또 먹었다. 두 개의 (제법 큰) 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빵이 사라지자 집중력이 분산된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소 산만해졌다. 막 돌아다니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러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둘 다 뭔가 기분 좋은 흥분 상태였다. 잠시 더 엉덩이를 붙여 놓을 요량으로 과자도 하나 꺼내줬다. 그것도 엄청 잘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배 안 불러?"

"네"


처음 갔던 카페에서처럼 얌전히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아내와 나도 차분히 앉아 있기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다. 무엇보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계속 웃으며 종알댔다. 같이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여보. 아무래도 저녁은 당장은 못 먹겠다"

"맞아. 일단 그냥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내와 내가 숱하게 찾아 놓은 맛집이 다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었다. (외출에 가까운) 여행의 마지막 저녁이 아쉬워서 억지로 밥을 먹기에는 다들 너무 배가 불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집으로 간다는 소식에 적잖이 아쉬워했다.


"아빠. 그럼 저기 카페 밖에서 딱 10분, 20분, 30분만 놀고 가면 안 돼여?"


선심 쓰듯 제시하는 시간치고는 격차도 크고 짧지도 않았지만 수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서 숨바꼭질을 했다. 감쪽같이 숨은 누나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시윤이의 모습, 누나가 숨었던 곳을 쫓아서 숨지만 어설퍼도 너무 어설픈 시윤이의 모습을 보며 또 한참을 웃었다.


둘이 노는 게 너무 재밌어서 가자는 말을 언제 해야 하나 고민도 안 하고 있는데 누나에게 발각된 시윤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여보. 쟤 오줌 쌌나?"


아내는 바로 표정을 읽었고 난 선별 진료를 시작했다.


"시윤아. 오줌 쌌어?"

"(끄덕끄덕)"

"진짜?"

"(끄덕끄덕)"


그러더니 시윤이의 왼쪽 다리와 신발 위로 물이 흘렀다. 확진을 판정하고 아내에게 통보했다.


"여보. 시윤이 오줌 쌌다"


다행히 아내는 여벌 옷을 챙겨왔다. 오늘 아내가 둔 신의 한 수였다. 챙길까 말까 고민하다가 챙겼다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히고 차에 태웠다.


"아빠. 이제 집에 가는 거에여?"

"어"

"저녁은여?"

"저녁? 글쎄. 너네 배고파?"

"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먹었는데 배가 고프다니. 일단 집에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소윤아, 시윤아. 그래도 오늘 재밌었지?"

"맞아여. 너무 좋았어여"

"조아떠여엉"


놀랍게도 시윤이는 집에 가는 길에도 자지 않았다. 그냥 자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엄청 쌩쌩했고 기분도 좋았다. 소윤이의 공이 컸다. 목청을 높여가며 시윤이와 장난을 쳤다. 그동안 낮잠 안 잔 게 나름 적응이 되고 익숙해졌나 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를 씻겼다. 샤워를 해줬다. 그동안 아내는 애들 저녁으로 먹일 계란밥을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애들이 별로 배가 안 고플 거라고 얘기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도 엄청 잘 먹었다. 요즘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이유가 다 있다. 10시에 아침 먹고, 12시에 우유랑 빵 먹고, 2시에 점심 먹고, 5시에 빵이랑 우유, 과자 먹고, 7시에 저녁 먹고.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먹었는데 언제든 잘 먹었다.


아내와 나는 마지막 여흥을 충분히 즐기고 싶어서 애들이랑 같이 먹지 않았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나가서 떡볶이를 사 왔고, '씁씁하하'를 반복하며 정신없이 먹었다.


"하아. 여보 맛있다. 역시 애들 재우고 먹는 게 꿀맛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