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카페

20.03.08(주일)

by 어깨아빠

오늘도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교회에서 발송한 [온라인 예배 안내] 영상에서는 온라인 예배라고 대충 시간 되어서 영상이나 틀지 말고, 모여 드리는 예배에 준하는 마음가짐을 갖추라고 권면했다. 안타깝게도 아내와 나는 늦잠을 잤다. 급히 아침을 해서 먹이고 예배를 준비했다. 옷 입히고 짐 챙기는 과정이 사라진 덕분에 원래 정해진 시간에 맞추는 건 가능했다.


소윤이의 생일은 어제로 끝났지만 미역국은 영원했다. 오늘 점심도 미역국이었다. 모름지기 사골국과 미역국은 두고두고 먹어야 제맛이다.


아내는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밖에서 돈 주고 사 먹는 커피]를 말하는 거였다. 아내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에 한 잔의 커피만 마시고 있는데 집에서 마시는 캡슐 커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런 게 있다. 아내를 위해 잠시 카페에 다녀오기로 했다.


외출과 야외 활동에 늘 목마른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단 어디라도 나간다고 하면 두 손을 들고 반긴다.


"카페는 좀 지겹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여"


대신 좀 멀리 있는 곳에 가기로 했다. 그래 봐야 파주였다. 날씨는 기가 막혔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당장 어디라도 떠났을 법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축구를 하러 갔겠지만.) 거기에 따뜻하기까지 했다. 복장은 아직 겨울인데 차 안으로 내리쬐는 볕이 생각보다 뜨겁다 보니 카시트에 앉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덥다는 민원을 넣었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켤 정도는 아니고. 창문을 열어서 바람을 좀 통하게 했는데 바람과 함께 햇빛도 더 강렬하게 작열했다. 덕분에 시윤이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다. 소윤이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오늘은 소윤이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아내와 나의 간청에 기꺼이 의지를 내 시윤이에게


"시윤아. 우리 뭐하고 놀까?"


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졸음에 취한 시윤이는 매몰차게 거절했다.


"시더어. 나 지금 돌리니까(졸리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애?"


건방진 녀석. 누나한테 저런 태도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살갑게 다가오는 누나를 아무 이유 없이 차갑게 대한다거나 누나에게 무안함을 줄 의도를 가지고 누나를 조롱하거나. 우리 집에서 가장 엄히 다스리는 게 [폭력]인데, 이 또한 그에 준하는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태도다. 졸리니까 말 걸지 말아 달라고 친절하게 얘기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기껏 자기를 배려해서 다가오는 상대를 향해 짜증을 가득 담아 책망하듯 말하는 게 문제지.


"시윤아. 누나한테 친절하게 말해"


친절하게 말하라는 말을 친절하지 않게 얘기하는 누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는 커피 두 잔과 빵 두 개를 사 왔다. 치즈 뭐시기 하는 빵을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는 것과 초코 머핀, 이렇게 두 개였다. 아내가 빵을 자를 때부터 소윤이와 시윤이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나마도 자기들이 포크를 들고 먹겠다는 걸 조금 가라앉힌 거였다. 소윤이 한 입, 시윤이 한 입 번갈아 가며 주는데 감히 내 입도 섞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따끈한 빵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니 누가 먹어도 천상의 맛일 환상의 조합이었지만 씹지도 않고 삼키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먹고 입을 벌려대는 두 녀석 덕분에 내 입은 조용히 다물었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니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아내도 넣

어서 한 조각씩 넣어 줬다.


아내와 나의 커피가 아직 한참 남았을 때, 이미 빵은 동이 났다. 다 먹더니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리에 앉고 나서도 수시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휴지 가지러, 물 가지러. 생리 현상에다 대고 "오줌이 왜 마려워, 왜" 라고 하면 안 되니까 밖으로 나가려는 큰 숨을 크게 삼키고 태연한 척했다.


"그래, 가자. 아빠랑 갔다 오자"


그래, 바지에 안 싸고 미리 얘기해 준 게 어디냐. 그래, 한 명 데리고 갔다 왔더니 나머지 한 명도 가겠다고 얘기 안 하고 동시에 말해 준 게 어디냐. 그래, 멜빵바지 아니고 그냥 쑥 내리면 되는 바지인 게 어디냐. 그래, 똥 아닌 게 어디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성서의 구절을 되뇌며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러고 나서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요즘 이 그림이 아주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색연필과 연습장 덕분에 앉아있는 시간이 30분은 늘어났다.


소윤이는 저녁으로 동물(모양의 면)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집에 파스타 소스 남은 게 있어서 파스타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제품 소스가 있으면 파스타는 라면 수준으로 간편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니까.) 풍미를 높이기 위한 일체의 과정을 생략하고 오로지 면 삶기와 소스 투하, 이 두 과정만 밟기로 했다. 아내와 나도 냉동실에 있던 돼지 목살을 처리하기로 했다.


소윤이는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딜레마에 시달린다.


"아빠. 이제 저녁 먹으면 바로 자여?"

"시간이 그렇게 됐네?"

"아빠. 못 놀아서 너무 아쉬워여"

"뭘 못 놀아. 카페 다녀왔잖아"

"그렇기는 한데 집에서 아빠랑 못 놀았잖아여"


사실 하루 종일 같이 보낸 아빠와 딸 사이에 나눌만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소윤이가 뭘 말하는 건지 그 심정은 이해가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먼저 먹이고 아내와 나의 저녁을 차렸다. 아내와 내가 저녁을 먹는 동안 둘이 잘 놀았다. 둘이 숨바꼭질을 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주로 시윤이가 웃음 유발자였다. 술래가 됐을 때는 누나를 찾지 못하고 특유의 꺼벙미를 뽐내며 헤매는 모습으로, 숨을 때는 자기 눈에 안 보이면 누나도 못 볼 거라는 순수한 몸짓으로, 간만에 아내와 나를 크게 웃게 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자진해서 노는 시간을 늘려줬다.


"어. 시윤아. 긴 바늘 8에 갔다. 이제 그만이야"

"아니야. 몇 판만 더 해"

"왜여?"

"그냥. 싫어?"

"아니여"


엄청 선심 쓴 것처럼 말했지만 고작 10여 분이었다. 내가 야박한 게 아니라 내 몸의 한계가 그 정도였다. 오늘도 아내와 아이들이 자러 들어가고 나서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졸다가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