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1(화)
항상 아침에는 애들을 깨우고 싶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깨워서 얼굴은 보고 싶지만 쭉 재우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선택하라면 굳이 깨우지 않고 더 자게 두고 싶은데 아내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웬만하면 깨운다. 오늘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옆에 누워서 만지작거렸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만 했다.
"소윤아. 아빠 이제 갈게"
"시윤아. 아빠 간다"
비몽사몽간에 대답과 끄덕임을 하더니 현관에 나가 신발을 신고 다시 인사를 하자 소윤이가 달려 나와서 안겼다.
"아빠. 잘 갔다와여"
시윤이도 뛰어나왔다.
"아빠아. 앙녀엉"
아내와 아이들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잠이 다 깼기 때문에 다시 잠들지는 못했을 거다. 누워서 빈둥거리는 시간이라도 길어지길 바라면서 출근했다.
아내는 오후에 애들이랑 외출했다면서 사진을 보냈다. 사진 속의 소윤이와 시윤이만 보면 마냥 즐겁기만 한 것 같지만 당연히 아니었다.
[고되다ㅎㅎ]
ㅎㅎ대신 ㅠㅠ 를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귀여워]
물론 이것도 진심일 테고. 너무 힘들지만 사랑스럽고, 너무 사랑스럽지만 한없이 고되고. 이것이 놀라운 육아의 신비 아니겠는가. 집에서 밥 세 끼만 잘 챙겨줘도 아니 그것조차도 못한다 해도 종일 육아의 쓴맛은 마셔본 자만이 논할 수 있다. 어느 보육 형태를 막론하고 '종일반'이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외출을 마치고 온 아내는 목욕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다.
난 오늘 회식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정되었던 회식이라 아내와 아이들한테도 미리 말해뒀다. 자율이지만 자율은 아니고 자율이 아니지만 자율인 이사님과의 대화도 아내에게 전해줬다. (강대리 저녁에 약속 있나? 아니요. 저녁 먹고 갈래? 네 그러겠습니닷)
막 사무실에서 나와 회식 장소로 향할 때쯤 아내는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회식의 종반부를 향해 갈 때쯤 아내는 아이들과 누웠다고 했다. (회식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회식을 마치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아내는 잠든 듯했지만 집에 가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 두 잔을 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바닐라 카페오레. 핸드드립만 취급하는, 얼마 전에 발견한 카페인데 남자 직원이 일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함께 일하는 여자 직원이 끊임없이 뭔가를 지적했고 남자 직원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왠지 '아이스 바닐라 카페오레를 주시되 얼음은 빼고 달라'는 나의 요구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듯했다. 남자 직원이 잠시 뭘 가지러 간 사이에 여자 직원에게 조용히 얘기했다.
"아이스 바닐라 카페오레는 얼음 빼고 주세요"
"아, 얼음 빼고 드릴까요?"
역시 전달되지 않은 게 맞았다. 그 뒤로도 남자 직원은 내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여자 직원의 가르침을 경청했다.
아내는 깨어 있었다. 내가 건넨 커피를 받아든 아내가 얘기했다.
"나 저녁을 못 먹어서 일단 밥을 좀 먹어야겠다"
"어? 아직도? 왜?"
"그냥. 애들 챙겨주다 보니까"
"애들은 뭐 먹었는데?"
"닭다리 구워줬어"
"여보는 뭐 먹으려고?"
"라면이나 먹을까 하고"
"내가 끓여줄게"
아내는 출산하면 먹지 못할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면, 아이스크림, 커피 등등. 아내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나도 소파에 앉았다. 평소에도 애들 재우고 어영부영하다 보면 아내랑 얘기 나눌 시간은 고작 한두 시간이지만 그 '고작'을 무시하면 안 된다. 애들 얘기, 재정 계획(이라고 쓰고 얼마나 돈이 없는지 확인하...), 여러 가지 결정해야 할 일 등이 주제로 오른다. 오늘은 아내가 나에게 필요한 옷을 봐뒀다며 보여줬고 과감히 지출 집행까지 결정했다. 이 시간을 잘 이용하면 자다가도 옷이 생 아니 아내랑 보내는 1분 1초가 옷 사줘서 너무 좋 아니 소중하다.
다음 주부터는 이 고작도 누리기 힘들어질 거다. 하악.
'힘들지만 사랑스러운'의 극단을 경험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