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에

20.03.30(월)

by 어깨아빠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중간에 깨서 화장실도 다녀오고 물도 마시고. 난 쉴 새 없이 꿈을 꾸고. 6시간의 수면 시간이 서너 토막으로 나뉜 듯한 기분이었다. 아내도 나랑 비슷했다고 했다.


아침에 애들은 깨우지 않았다. 주말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노느라 잠이 많이 부족했을 거다. 나의 아침을 함께하기 위해 일어났던 아내도 다시 방으로 들여보내고 출근했다.


"여보. 더 자. 알았지?"


아내나 애들한테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정말 안 깨고 쭉 잔 건지 아니면 깼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지만 아마 쭉 자는 거 같았다. 깼는데 아빠가 없는걸 알았으면 바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9시가 거의 다 됐을 때 전화가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어디에여?"

"아빠? 회사지"

"언제 갔어여?"

"아까. 소윤이랑 시윤이 자고 있을 때. 오늘은 일부러 안 깨웠어. 너무 피곤할까 봐"

"저는 지금 일어났어여"

"진짜? 계속 잤어?"

"네"


"아빠아"

"어, 시윤아"

"머하구 이떠여엉"

"아빠 일하지"


깨우지 않고 출근한 보람(?)이 있었다.


점심시간쯤 아내가 웃기다며 보내준 애들 영상을 받은 거 말고는 하루 종일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퇴근하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음, 나 이제 북로 JC 근처. 왜?"

"그럼 얼마나 걸리지?"

"한 30분?"

"그럼 이따 중간에 연락해"

"왜?"

"오늘 밖에서 밥 먹자"

"아, 그래? 알았어"


뭔가 아내의 목소리에 힘도 없고 우울한 기운이 느껴졌다. 게다가 평일 저녁에 밖에서 밥 먹는 건 내가 출근한 뒤로는 처음이었다.


'나에게 더 이상 밥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으니 밖에서 먹을 거야'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고 해 봐야 애들이랑 씨름하는 거겠지만)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옆에 동승자가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동승자가 내리고 다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이제 원흥역이야"

"아, 그래? 아직 애들 옷 입히고 있어. 여보도 그냥 주차하고 같이 가자"

"그래. 근데 괜찮아?"

"어"

"아까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었어?"

"아, 누워 있다가 일어났어"

"그랬어? 갑자기 왜 밖에서 먹자고 했어?"

"아, 나 국수나무 알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랬구나. 알았어"


다행히 나의 예감과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힘들었겠지만 극한의 상황은 아니었던 거다. 지쳐서라기보다 욕구의 충족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까 차라리 다행이었다.


어젯밤에 만나고 다시 오늘 밤에 만난 아이들은 참 반가웠다. 두 녀석도 나를 반겼다. 아직 아내는 옷을 갈아입기 전이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있었다. 애들을 데리고 먼저 나가서 쓰레기를 버렸다.


"아빠. 손잡자여"

"안 돼. 아빠 아직 손 안 씻었어"

"어차피 우리도 밖에 같이 있잖아여"

"아니야. 그래도 아빠는 일하고 바로 와서 손 안 씻었잖아. 더러워서 안 돼"

"아빠랑 손잡고 싶은데"


소윤이랑 시윤이도 그렇게 완연한 밤에 나오는 건 오랜만이었다. 밤 외출이 주는 설렘과 분위기가 따로 있다. 애한테든 어른한테든. 낮에 나왔을 때랑은 또 다른 활력으로 신나게 뛰어다녔다.


"아빠. 이따가 내가 자전거 타는 거 보여줄게여"


소윤이는 며칠 전에 성공한 자전거 타기를 직접 보여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얘기했다. 놀이터에 가자고도 계속 얘기했는데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 자전거 때문이었다. 나한테 성공의 순간을 꼭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음식은 국수와 돈까스였다. 소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시윤이도 그랬다. 국수랑 돈까스 조금 떠 놓으면 자기가 알아서 후룩후룩대며 잘 넣었다. 덕분에 아내도 나도 편안하게 식사를 했다. 그러다 식사의 끝자락쯤에 시윤이가 갑자기 졸기 시작했다. 꾸벅꾸벅, 꿈뻑꿈뻑, 흔들흔들.


"시윤아"

"......"

"졸려?"

"(끄덕끄덕)"

"더 먹을 거야?"

"(끄덕끄덕)"

"그만 먹어도 돼"

"(절레절레)"


시윤이는 돈까스 한 조각을 더 먹었다.


"시윤아. 아빠랑 먼저 나갈까?"


잠에 취해가는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하늘로 몇 번 던져줬더니 금방 잠에서 깼다.


바로 옆에 있는 빵집에 들러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쿠키를 사줬다. 그냥 뭔가 사주고 싶었다. 오랜만의 밤 외출에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여보는 안 사?"

"나도 사주게?"

"어, 사"


소윤이는 집에 가는 길에 놀이터에 들러 자전거에 올라탔다. 소윤이는 호언장담을 했다.


"아빠. 10바퀴만 돌고 가자여"


페달을 쉬지 않고 굴러야 앞에 있는 화면(?)에 불이 꺼지지 않는 그런 자전거 기구였다. 소윤이가 한 바퀴도 채 돌기 전에 자꾸 화면이 꺼졌다. (소윤이의 페달질이 멈췄다는 얘기다.) 여러 번 그랬다.


"하아아아아아아악"


소윤이는 사자후 같은 외침으로 안에 쌓이는 스트레스를 발산했다. 그리고 다시 또 시도했지만 결국 오늘은 한 바퀴를 넘기지 못했다.


"아, 안 된다"


소윤이는 순순히 포기하고 내려왔다.


집에 돌아가니 9시였다. 시간은 늦었지만 전혀 슬프지 않았다. 전혀 슬프지 않았지만 더 늦어지는 건 싫었다. 서둘러 잘 준비를 하고 애들을 눕혔다. 오늘은 책도 아내가 누워서 읽어준다고 했다. (나라도 얼른 퇴근하라는 아내의 배려였다.)


아직도 월요일이라는 끔찍한 사실을 잊게 만들 만큼 즐거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