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9(주일)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소윤이만 안 보였다. 시윤이는 여전히 아내와 내 곁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두 번째 눈을 떴을 때는 나 혼자 있었다. 아내도 일어나서 나간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했다. 난 조금 더 누워 있다가 나갔다. 아침 준비가 거의 다 됐을 무렵이었다.
엄마, 아빠도 함께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오늘 평소보다 조금 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한계치를 넘어섰는지 불 위의 오징어가 됐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고 한숨을 뻑뻑 내쉬었다. 다행히 그 정도까지였다. 시윤이가 큰 고비를 맞을 뻔했지만 무사히 넘겼다.
예배를 마치고는 다시 어제의 반복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 소파가 딱딱한 카우치 소파라 아내가 오래 앉아 있기에는 좀 어려웠다.
"여보. 안방에 가서 한숨 자"
"아니야. 괜찮아"
그 뒤로 한 두어 번 더 권했더니 아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금방 잠들었다. 나도 무료했다. 무료했지만 싫지 않았다. 무료함이 얼마나 귀한 건지 최근 몇 주간 더 절실히 깨달았고 다음 주면 더 처절히 깨달을 거다. 거실 소파에 누워 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나도 잠들었다. 그렇게 길게 자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엄청 달콤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가자"
늦은 오후쯤이었다.
"벌써여? 더 놀고 싶은데"
"아빠아. 안 가꺼에여어엉. 너무 또금 놀아떠여어엉"
도대체 얼마나 놀아야 아쉽지 않은 걸까. 시윤이는 진심으로 가기 싫다며 선을 넘은 떼를 쓰기도 했다. 바로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다. 처가댁 식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걸 말해줬는데도 아쉬워했다. 어떻게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내) 엄마는 정말 하나도 안 힘들고 하나도 안 피곤할까 궁금할 정도로 쉴 틈 없이 애들이랑 놀았다. 언젠가 소윤이가 얘기했던 것처럼 파주 할머니는 먹이고, 씻기고, 만들어 주고, 딸의 노고를 줄여주기 위한 집안일에 집중한다면 신림동 할머니는 노는 시간에 할애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아내와 내가 베짱이처럼 빈둥대는 내내 엄마는 아이들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어제, 오늘만큼은 아내나 내가 '그래도 육아는 힘들다'라고 말하기가 좀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니 애들은 아쉬웠겠지.
신림동을 떠나 우리 동네의 식당에서 처가 식구를 만났다. 장인어른의 생신이었다. 소윤이는 만나기도 전부터 걱정했다.
"엄마. 우리 밥만 먹고 헤어져여?"
"글쎄. 카페 가서 커피 한잔하겠지"
"그러면 바로 헤어져여?"
"그럼"
밥 먹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크게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알아서 잘 먹었다. 적당히 까불면서 어른들에게 웃음도 줬고. 카페에 가서 시윤이가 조금 애를 먹였다. 계속 파주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물론 졸리기도 했겠지만 단지 졸려서 떼쓰는 느낌은 아니었다. 어제, 오늘 신림동에서 느낀 자유와 일탈(?)이 너무 달콤한 게 아니었을까. 소윤이도 파주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소윤이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아무리 졸라도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다음주 되면 할머니 집에 가서 실컷 있어야 돼. 당분간 엄마랑 롬이는 보고 싶어도 못 봐. 얼마나 보고 싶겠어. 안 그래?"
집에 오는 길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아직 실감이 안 나겠지.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난 벌써 걱정이다. 애들은 멀쩡할지도 모른다. 내가 애들이 그리워서 못 견딜지는 몰라도.
시윤이는 집에 와서 결국 터졌다. 씻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혼자 바닥에 드러눕더니 울음을, 정확히 말하자면 울음으로 포장한 짜증을 터뜨렸다. 아까 카페에서도 울었지만 그건 슬픔의 농도가 짙었고 이건 반대였다. 시윤이를 안고 방에 들어가서 물었다.
"시윤아. 왜 그래?"
"으아아아아앙. 파두 하머니 딥에 가고 디퍼어어어엉"
이때는 눈이 정상이 아니었다. 반뜬반감(반은 뜨고 반은 감은)이었다. 조금 진정시키고 일단 씻겼다. 소윤이는 멀쩡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요구를 모두 수용해서 메모리 게임 한 판, 보물 찾기 한 판, 숨바꼭질 한 판을 하고 책 두 권도 읽어주기로 했다. 메모리 게임은 즐겁게 마쳤다. 심지어 시윤이가 가장 많이 맞춰서 시윤이 기분도 좋았다.
"자, 이제 보물 찾기. 누가 숨기지?"
"아빠. 제가 숨길게여"
"그럴까?"
시윤이가 제동을 걸었다.
"내가. 내가"
"그래? 어떻게 하지?"
"아빠. 그런데 시윤이가 숨기면 너무 쉽게 숨겨서 재미가 없고 금방 끝나여"
"하긴 그렇긴 한데"
소윤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늘 소윤이 뜻대로 하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재미가 없고 김이 새더라도 시윤이에게 숨길 수 있는 권리를 공평하게 주고 있다. 다만 오늘은 분위기와 흐름상 시윤이가 소윤이에게 양보하는 게 맞았다.
"시윤아. 그래. 오늘은 누나한테 숨기자고 하자"
시윤이는 다시 폭발했다. 아까 그 짜증과 졸음의 연장선이었다. 시윤이를 배제하고 게임을 진행했다. 시윤이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소윤이는 그런 시윤이가 안쓰러운지 어떻게든 설득해서 같이 하려고 했다.
"소윤아. 그냥 둬. 시윤이는 하기 싫대"
소윤이랑 둘이 보물 찾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했다. 책도 소윤이가 고른 것만 읽어줬다. 내내 방에 있던 시윤이는 책의 중간쯤을 읽을 때 슬며시 나오더니 옆에 앉았다. 시윤이를 위한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다만 괜한 핀잔이나 면박을 주거나 차갑게 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다시 나왔다는 건 어느 정도 깨달았다는 거다. 그거면 됐다.
방에 들어가서 아내의 배에 손을 올리고 기도한 뒤 인사를 나눴다. 누워있는 시윤이에게 물었다.
"아빠랑 인사할 거야?"
"네"
"그래. 시윤아, 잘 자고. 내일 만나. 사랑해"
"아빠아. 따랑해여엉. 아빠. 이따 우디 옆에 누울 두 이뜨면 누어여엉"
아으. 이 퉁퉁한 아들내미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