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목)
[인적이 드문 야외면서 차를 타고 좀 가야 하는 곳]을 열심히 찾았다. 다음 주 출근을 앞두고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다. (내일은 아내가 낮에 혼자 카페에 좀 가겠다고 했고, 토요일에는 롬이 보러 가야 하고. 주일은 대망의 출근 전날이고.) 언젠가 교회 집사님이 애들이랑 가보라고 하며 추천해 줬던 곳이 기억났다. 여름에 무료 물놀이장에서 놀기가 좋다며 소개해 준 곳이었다. 여름에 물놀이장으로 붐비는 곳이면 겨울에는, 더군다나 요즘 같은 때는 더욱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아빠. 우리 오늘 어디 가여?"
"응"
"어디여?"
"그냥 공원 같은 곳"
"아빠. 공원 같은 곳은 뭐에여?"
"아, 공원이야. 공원"
"멀어여?"
"엄청 멀지는 않아. 맛있는 것도 먹고 공원도 가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은 아니어도 '여행의 기분'을 낼만한 외출을 할 수 있는 날은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아침은 집에서 먹고 가장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 출발했다. 40분 정도 달려서 도착했다. 난 오늘 처음 알았지만 유명하다는 만두 가게였다. 만둣국, 만두전골, 군만두, 비빔국수 등을 파는 곳이었다. 이런 종류의 음식은 애들이랑 함께 먹기 좋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입에 맞았는지 각자 그릇에 떠준 걸 끝까지 다 먹었다.
"소윤아. 맛있어?"
"네. 맛있어여"
난 소윤이가 맛있다고 하는 게 '모든 식사는 감사하게 먹어야 한다'라는 반복 교육 때문에 만들어진 작위적인 평가가 아닌지 늘 궁금하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본다.
"소윤아. 진짜 맛있어? 입에 맞아?"
"맛있다니까여. 아빠는 몇 번을 물어보시는 거에여 정말"
"아니, 그냥 맛있다고 하나 싶어서"
"아니라고여. 이 아저씨가 왜 이러실까 정말"
내가 본 것 중에 의심하지 않을만한 건 초코 케이크 정도뿐이다.
시윤이는 식사 지구력(?)이 떨어졌는지 중반 이후부터는 숟가락질이 게을렀다. 외식이니 자비를 베풀었다.
"자, 시윤아. 아빠가 먹여줄게. 얼른 먹어"
먹여주면 입은 부지런히 벌렸다.
공원은 식당에서 멀지 않았다.
"아빠. 여기는 커여?"
"글쎄. 아빠도 처음 와 보는 곳이야"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진짜 하나도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 수식을 붙여도 무방할 정도였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아직 잔디가 자랄 계절은 아니라서 갈색이었지만 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바로 옆에는 놀이터도 있었는데 일단 나만 봤다. 이걸 애들한테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에 (가자마자 얘기하면 곧장 놀이터로 갈 테고 잔디밭보다 놀이터가 손이 많이 가니까) 소윤이도 발견하고는 외쳤다.
"아빠. 저기 놀이터도 있어여. 저기도 가 볼래여"
"그럴까? 그래. 가 보자"
놀이터가 조금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보지 못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모래 놀이터였다.
"윽. 여보. 이것 봐. 모래야"
"아, 진짜?"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들이 복장이었지 놀이터 복장은 아니었다. 차라리 쏟아진 물을 주워 담는 게 더 쉽지 그제서야 "아, 모래라 안 되겠다"라고 말하며 놀이터 출입을 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보. 어쩌겠어"
대신 애들한테 당부했다.
"소윤아, 시윤아. 모래 놀이는 하면 안 돼. 우리 아무것도 준비를 안 해 왔어. 알았지? 놀이 기구에서만 놀아"
놀이터 자체는 동네 놀이터보다 훨씬 재밌었다. 짚라인 같은 것도 있었다. 놀이터의 전체적인 난이도나 높이가 소윤이한테도 조금 버거울 정도였다. 소윤이는 무서워하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으면 웬만한 곳은 다 가능했는데 시윤이는 그렇지 않았다. 내 손을 놓지 않는 아기가 됐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아빠아. 아빠아. 옆에 이떠여엉"
이러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리를 옮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내와 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를 쫓아다녀야 하는 데다가 다른 사람도 하나, 둘 늘어나서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저쪽으로 가서 킥보드 타자. 우리 여기서 계속 있을 건 아니라서"
"아빠. 저거(짚라인) 딱 한 번만 더 타구여"
한 대여섯 번은 더 탔다. 다시 잔디밭으로 가서 킥보드를 탔다. 아내와 나는 잠시 엉덩이도 붙이고. 애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아내와 나는 확실히 잔디밭에서 더 재밌었다. 상황극 애호가인 소윤이의 엉뚱한 상황극 덕분에 많이 웃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얻은 유익이 있다면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일 거다. 예전 같으면 그냥 물티슈로 대충 닦고 말았을 텐데 이제 그러지 못한다. 귀찮더라도 (사실 좀 귀찮은 게 아니다. 너무너무 많이많이 귀찮다) 꼭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손을 씻기는 습관(까지는 아니고 의무 행위)이 생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전혀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잊으면 손을 씻어야 한다고 얘기해 준다. 역시 애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이 문제지.
"아빠. 이제 우리 어디 가여?"
"잠깐 카페에 가자"
"카페 갔다가 집에 가고?"
"응. 저녁 먹을 거 사서"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다.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코로나 사태가 한창인 평일 낮인데도 붐볐다.
'진짜 잠깐만 있다가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얘기해 보니 아내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자리에 앉아 아내가 주문하고 오는 걸 기다렸다. 주문을 마친 아내가 돌아와서 말했다.
"여보. 여기 별관도 있고 지하도 있대. 거기 한 번 가볼래?"
"아, 그럴까?"
시윤이를 데리고 탐방에 나섰다. 먼저 별관. 사람은 꽤 있었는데 조용했다. 앤트러사이트 서교점과 똑같은 분위기였다. 배경 음악 없고 대화는 속삭이듯 조용히 하고. 애들이 없었다면 당장 거기에 자리를 잡았겠지만 우리는 애가 둘이었다. 물론 조용히 시키면 얼마든지 그곳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아이들이었지만 그걸 위해서 '조용히 해라, 가만히 앉아 있어라' 얘기하는 게 오늘은 피곤했다.
"시윤아. 여긴 안 되겠다"
"왜여엉?"
"아, 여기는 엄청 조용히 있어야 하는 곳이래"
지하에 가 봤다. 거기가 딱이었다. 1층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은 데다가 각 좌석은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차단과 분리가 되어 있었다. 마침 앉아있던 커플이 일어서는 게 보였다. 바로 자리를 잡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지하로 와"
아내도 그 자리가 없었으면 아마 엄청 금방 나갔을 거라고 얘기했다. 좋은 자리 덕분에 제법 앉아 있었다.
저녁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포장을 했다. 그 시간에 먹기에는 아직 배가 부른 것도 있었지만 이미 어제 아내랑 얘기할 때부터 포장을 하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애들이 먹을 게 하나도 없는 식당이었는데 아내와 나는 그게 먹고 싶었다.
"그럼 우리는 그거 포장해와서 집에서 먹고 애들 것도 뭐 사서 오자"
아내는 엄청 졸렸다. 졸렸지만 자지 못했다. 시윤이도 졸렸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정말 듣기 싫었던 격언이 있었는데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라는 말이었다. 아내가 딱 그랬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깨우면 꿈을 이룬다]였다. 아내는 오늘도 '이른 육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잠을 물리치고 시윤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도 정신을 차리기 어려워 보였는데 아내가 신혼시절 갔었던 '괌 여행' 이야기를 해주자 멀쩡해졌다. (아들을 깨우기 위한 한 엄마의 처절한 낮아짐, 망가짐의 과정은 굳이 쓰지 않았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 간단히 정리만 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여보. 난 좀 누울게"
아내와 나는 아직 배가 불러서 일단 애들 저녁을 먹여서 재운 다음, 우리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내는 금방 잠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난 애들 저녁으로 볶음밥을 준비했다.
"아빠. 밥 먹으면 바로 자야 돼여?"
"잘 시간이긴 하지. 벌써 7시가 넘었으니까"
"아빠. 메모리 게임 조금만 할까여?"
"메모리 게임이 그렇게 하고 싶어?"
"네"
"그래. 그럼 딱 세 판만 하고 자자"
옆에서 시윤이도 끼어들었다.
"아빠아. 아빠아. 나늠 메모이 께임 말고 다른 거여엉"
"다른 거 뭐?"
"어, 어, 뭐냐믄. 어, 어, 둠바껍질이여엉"
"숨바꼭질?"
"네"
"알았어. 그럼 메모리 게임 세 판, 숨바꼭질 세 판. 됐지?"
퇴근을 코앞에 두고, 하루의 고단함이 쌓이고 쌓였을 때라 체감상으로는 엄청 긴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육아는 항상 이런 싸움이다. 체감에만 의존하면 야박해지고 실제만 근거로 삼으면 금방 지친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총 여섯 판의 게임 덕분에 행복 지수가 거의 끝까지 다다른 상태에서 잠자리에 누웠다.
이게 뭐라고. 이게 힘들어서 평소에 자주 넉넉함을 잃는 아내와 나도 이해가 되고, 이게 그렇게 좋아서 어떻게든 몇 판, 몇 분이라도 더 즐기려는 애들도 이해가 되고.
어쨌든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누리지 못할 일상이라는 걸 기억하면서.